『지 주교님 나오신다』누군가 뒤를 향해 외치는것과 함께 아침부터 영하의 추위에 떨면서도 애써 가라앉혀온 흥분이 활화산처럼 터지고야 말았다. 『지 주교님 만세, 지 주교님 만세』17일밤 8시57분 서울구치소의 철문이 열리고 지학순 주교가 김 추기경의 부축을 받으며 모습을 나타내자 마중나온 8백여 명의 성직자 수도자 신자들은 존경하는 목자(牧者)와 다시는 헤어지지 않으려는듯 일제히 내달았고 그리고 힘주어 감싸안았다. 작년 7월 6일 외국여행 입국길에 김포공항에서 구속된후 2백26일만의 만남이었다.
『민권의 기수 지 주교 만세』『반독재 투쟁의 영웅 지 주교 만세』라고쓴 10여 개의 프래카드가 구치소 정문앞에 원형으로 세워지고「복자찬가」와「우리승리 하리라」합창이 10여 차례 반복되어도 소식이 없던 지 주교가 20여분 후 나온다는 교도소 측의 귀띰이 있는지 15분쯤 지나 김 추기경과 함께 걸어나오자 구치소앞은 완전히 환성과 열광의 뜨거운 분위기에 휩싸였다.
흰명주 한복에 구치소에서 내준 검정고무신 차림의 지 주교는 수염이 텁수룩이 자란 약간 창백한 모습이었으나 시종 미소를 잃지않고 환영인파에 답례를 보냈다.
한 여신자가 드린 꽃다발을 든 채 나오던 지 주교는 보도진과 인파에 막혀 움직일 수 없어 원주교구 기획실장 김인성씨의 등에 엎혀 30여m 떨어진 곳에 대기한 승용차에 오르는데 20여분이 걸렸다.
15일 구속자 석방발표가 있고나서 지 주교의 석방시간을 초조하게 기다리던 원주교구의 신부들과 서울시내 수녀, 버스를 대절해 상경한 원주시내 본당신자 1백여명 등은 이날 오전 9시부터 구치소 문 앞에 대기하면서 석방을 기다렸다.
오후 2시경 대법원 심리가 일단 끝났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환영객들은 점심도 굶은채 구치소 문을 지켰다.
명동주교관에서 석방시간을 기다리던 김 추기경 윤공희 대주교 김재덕, 황민성, 나길모, 이문희 주교가 오후 6시쯤 구치소에 도착, 6시20분쯤 김 추기경은 구치소 소장의 안내로 소장실에 대기하다 지 주교를 맞았다.
이날 지 주교가 가지고 나온 물건은 그동안 읽었던 책 30여 권. 수감후 차입한 내의 담요 등은 다른 수감자들에게 주고 나왔다. 지 주교는 그동안 면회는 물론 다른 수감자와 접촉이 일체 금지된채 독방에서 지내면서 삼국지와 현대신학 특히 해방신학에 관한 서적을 주로 읽었다고 말했다. 구속후 처음 3ㆍ4일간 잠을 재우지 않아 고통을 당했고 구치소에서는 오른팔의 신경통이 악화되자 이번 겨울에 특별히 연탄난로까지 설치해주는 등 친절히 대해주어 감사한다고 말했다.
『걱정했던 당뇨병은 이제 나은것 같고 특히 두 발의 무좀은 깨끗히 나았다』는 지 주교는『신경통에도 불구하고 안에서는 아픈줄을 몰랐는데 나오니 더 힘든것 같다』고 하면서 하루의 일과는 오전 7시에 일어나 8시쯤 아침을 먹고나서 빨래를 하고 점심후에도 책을 읽었으며 오후 7시30분이면 잠자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잠은 실컷잘 수 있었다고 했다.
운동은 구내 스피커에서 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하는 맨손체조가 전부였다고 말했다.
식사는 처음에는 관식(官食)을 먹었으나 영양이 좋지않아 어지러움을 느껴 하루 한끼만 동생 지학삼씨가 넣어준 사식을 먹었다고.
동생 지학삼씨는『세 끼 사식비를 넣어드렸는데 한 끼만 잡수시고 두 끼는 다른수감자들에게 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
석방소식을 듣고『으례 나갈 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담담했다』는 지 주교는 김 추기경 방에서 윤형중 신부와 지 주교 구속후부터 석방때까지 이발 면도 않기로 해 히피처럼 텁수룩한 원주교구 꼴룸바노회 신부들과 기념촬영을 하기도.
수감후 한번도 목욕을 못했다는 지 주교는 주교들과 저녁식사를 마친후 건강진단을 위해 마련된 성모병원 4백21호실로 돌아가 오랫만에 목욕을 했으며 18일 오전 10시부터 2시간동안 통증이 심한 오른팔의 첫물리치료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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