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칠십을 헤아리게 되었다. 50여년의 수도생활을 학교 교사로 시작해서 본당의 전교수녀로 있으면서 방방곡곡을 누비며 주님의 말씀을 심느라 온갖 노력을 기울여왔다.
지금은 서대문 교도소에 나가 사형수들과 대화를 나누며 하느님을 알게 하는 데 온 정력을 다 바치고 있다. 가끔 힘이 진한다는 생각을 할 때가 있으나 그래도 부족하나마 내 나름대로 힘껏 하느님 나라 확장을 위해 남은 생애를 바치리라 다짐하고 있다.
이제 그 많은 세월이 흘러간 지금 특히 전교생활을 하며 느낀 점 잊지 못할 점을 간단하게 기술하고자 한다.
내가 14년 동안 근무했던 충북 장호원 본당은 불란서인인 임 신부님께서 창설한 본당이다. 그분은 대동아전쟁시에 일시 은퇴하셨다가 해방이 되자 다시 복귀하시어 그곳에서 사제로서 일생을 마치신 그야말로 장호원 본당의 터줏대감이셨다.
그분은 하느님께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복음을 전하는 데 남다른 정열이 있으셔서 성당을 중심으로 한 그 일대의 주민들을 거의 성당에 나오도록 만드셨고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굳건하게 다지시어 이 본당에서만도 신부 수녀들을 무려 백여 명이나 배출하였다.
또한 그분이 계실 때 이룩해 놓으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지만 두드러진 것만 말해도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계속되는 장호원 성체거동은 바로 임 신부님이 시작하신 행사이며 매년 성체축일을 기하여 성체 안에서 계시는 천주를 현양하는 것으로 충청북도 내의 각 본당에서도 모여와 매산 산상봉을 돌아 올라가고 내려오는 광경은 볼 만하다.
어느 외국 신부님의 말씀처럼 세계 어느 나라에도 그 예가 없으리 만큼 장엄하고 아름다운 행사다.
임 신부님은 특히 성모님께 대한 사랑도 뛰어나시어 성당 주보도 학교 이름도 뒷산 이름도, 매괴성당 매괴학교 매산이라고 성모님을 상징하는 칭호를 붙이셨다.
그분의 생활은 아주 검소하셔서 식사는 언제나 염소젖과 기울이 섞인 면류이고 육식은 교회 축일에만 하시는 등반석 같은 굳은 신앙심에다 희생을 곁들여 그분의 사제생활은 수도자뿐 아니라 신자들에게도 행동으로 주님을 보여 주시곤 했다.
우리나라에 대한 사랑도 크셨다. 글 모르는 사람에게 한글을 가르쳐 주셨고 왜정시대에 일본인에게 짓밟히는 생활 속에서도 남모르게 우리나라 태극기를 장 속 깊숙히 보관하셨다가 일본인이 물러나고 해방이 되었을 때 태극기를 꺼내 주심으로 隘城郡 內에서 칭송이 자자했고 그 태극기를 여러 곳에서 빌려가곤 했다.
내가 장호원에 갔을 때 임 신부님은 이미 돌아가신 후였다. 그분이 살아계셨을 때 나를 장호원에 불러주셨고 함께 일하게 되려니 했는데 먼저 하느님께 가셔서 정말 서운했다.
그러나 보좌로 계셨던 박방지거 신부님도 인애가 깊으시고 성덕이 높으신 분이어서 신자는 날로 늘어 3천여 명으로 배가하였고 그 많은 신자들을 혼자서 넉근히 돌보시며 신자들의 착한 목자 자애로운 아버지가 되어 주셨다. 특히 박방지거 신부님은 남다르게 운동을 좋아하셔서 신부님과 함께 축구를 하려고 청년들이 여가에 모여들어 예비신자는 속속 늘어만 갔고 젊은이나 늙은이나 한결같이 신부님을 하늘 같이 모시며 기쁘게 지내는 광경은 나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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