꾸르실료는 이제 모방의 차원을 넘어서야 한다는 문창준 회장님의 말씀은 정말 적합한 말씀이라고 생각하며 평소에 느껴온 몇 가지 소신을 말씀 드리겠습니다. 가톨릭 교회를 통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우리들 각자는 한국인이며 한국 문화와 한국 풍토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내가 율법이나 예언서의 말씀을 없애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오 5ㆍ17)고 말씀하십니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복음을 한국 민족과 문화를 완성해주는 복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러므로 한국 천주교회가 가톨릭이 되기 위해서는 한국 민족과 문화와 전통을 버릴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하게 가꿔야 합니다. 이런 경지에서 우리 꾸르실료 운동부터 개선해야 되겠습니다.
10년 전 우리는 다급하니까 스페인의 꾸르실료를 그래로 받아들여 그런 대로 해나갔고 많은 성과와 공적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이젠 재정비할 때가 됐습니다. 꾸르실료 운동은 40여 년 전 스페인의 교회와 사회 여건에서 가톨릭 신앙인이 알아야 할 기본교리를 압축해서 가르치며 그리스도의 사랑과 봉사정신을 체험하게 하는 것이 없습니다. 그로부터 40여년이 흘렀고 그동안 교회와 사회는 과거 수백 년의 변화를 능가할 만큼 많이 변했습니다. 따라서 꾸르실료도 한국적인 여건에 부합하게끔 변화시켜야 합니다. 꾸르실료의 기본 정신을 더 확고히 간직하면서 한국 교회와 한국 사회의 요구하는 한국 신앙인을 길러내는 교육을 실시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15개의 강의를 재조정하고 내용도 오늘의 사회가 요구하는 걸로 바꿔야 합니다.
꾸르실료에는 또 불필요한 외래어가 너무 많습니다. 우선「데꼴로레스」노래는 우리의「고향의 봄」과 비슷하기에 우리에겐 그것이 더 적합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톨료」「데꾸리아」「빨랑까」「렉타」「오픈닝」「끌라우수라」「마냐니따」등등의 용어도 그대로 써야 하는지 생각해 봐야 할 것입니다. 우리 민족성 속엔 남의 전통을 지나치게 고집하는 성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의 전통을 중국보다 더 고수하다 수많은 순교자를 냈고 북한 공산당은 세계 어느 공산당보다 더 철저한 공산주의를 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꾸르실료도 스페인보다 더 전통적이어야 가톨릭이냐,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실학과 함께 우리나라에 들어온 복음은 당시의 사람들에겐 희망과 기쁨이었으며 알아들을 수 있는 복음이었습니다. 그러기에 박해를 받으면서도 재산ㆍ명예ㆍ권력ㆍ생명을 빼앗기면서도 믿었고 신자 수는 늘어만 갔습니다. 그러나 신앙의 자유를 얻으면서 우리 교회는 한국 사회 속에서의「복음의 사명」에 부응하지 못했습니다. 마음 놓고 기도할 수 있다는 안일에 빠져 천당 갈 생각에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 그때 예수께서는『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와 네 자녀들을 위하여 울어라』고(루까 23ㆍ28) 하셨습니다. 또 예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는 동안 제자들이 하늘만 쳐다보고 있자 흰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나타나 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고 말했습니다. (사도 1ㆍ10) 우리 순교자들은 사회의 복음화를 위해 빛과 소금이 되었는데 신앙의 자유를 얻은 다음의 신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동정하며 눈물을 흘리거나 하늘만 쳐다보는 사람으로 전락하였습니다.
교회는 장례식장이나 결혼식장이 아닙니다. 천당 보내주는 여행사나 관광 안내소도 아닙니다. 교회는 민족의 구원과 일치를 이뤄주는 교회라야 합니다.『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눈 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까 4ㆍ18~19) 우리는 바로 이것을 해야 합니다. 민족의 해방과 빛이 되는 사도로 활동해야 합니다.
2차대전 때 폭격 당한 독일의 어느 성당엔 두 팔이 떨어진 십자가가 그대로 걸려 있습니다. 그 밑엔 신자들이 예수님의 팔 구실을 하겠다는 글귀를 써 놓았습니다. 우리의 양팔기도도 주님의 팔을 대신하려는 것입니다.
만약 2천 명의 꾸르실리스따들이 모두 교회가 되어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활동한다면 2천 개의 본당이 있는 셈이 되어 성당을 지으려고 고생할 필요도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사회, 이 민족을 사랑합시다. 세상이 병들어 간다면 병들지 않게, 타락해 간다면 타락하지 않게, 소금과 빛과 누룩이 돼야 합니다.
정치인은 정치 풍토를 개선해야 하고 기업인은 기업 풍토를 개선해야 하며 군인 교육자 공무원 모두가 각자가 처해 있는 그곳을 정화하고 개선하는 데 복음화의 사명이 있습니다. 이것이 하느님이 사랑하는 세상을 우리도 사랑하는 것이며 이것이 애국이요 반공이며 이것이 나라를 튼튼하게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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