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이번주에 우리의 지 주교님께서 석방되신 것을 무한히 기쁘게 생각합니다. 지 주교님은 고통을 통해 스스로 우리들에게 가르치신 것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요즘 교회인은 기도나 하라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저 비는 버릇이 있으니 빌기나 하고 기도 아닌 다른 문제는 간섭하지 말라는 뜻인지, 어색하게만 들린다. 이것은 기도를 하거나 교회를 가거나 개인의 습관에 불과할뿐 사회인으로서의 실생활과는 관계가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공산주의 국가에도 형식상으로는 종교의 자유가 법적으로 보장돼있고 개인적인 신앙생활을 할 수 있다. 종교의 자유가 있으니 종교인은 기도나 하라는말은 이런점에서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겠다. 「기도하는 교회」에 관해서는 우리 자신부터 올바른 생각을 해보아야 한다. 그래서 이 자리를 통하여 기도는 어떤 것인가 실생활과는 관련이 있는가, 그리고 기도는 개인적이고 사사로운 것에 그칠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사람은 한없이 나약하다. 그렇기 때문에 무언가에 의지할 필요성이 생기고 기대기 위해 기도하게 된다고 한다. 그것이 기도라면 정말 진정한 의미의 기도가 될 수 있을까? 천만에, 결코 아니다. 기도하는데 그런 마음이 포함된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전부라면 참된 기도를 모독하는 것이다.
우리는 부모님을 모시고 태어나 자식된 도리로써 부모를 공경한다. 그러나 마음이 외로워서 어디에 의지해 보려고 효도를 한다든지 어떤 이익 때문에 효도한다는 법은 없다. 이런 것은 효도가 아니다. 기도는 하느님께 효도하는 것이다. 그분의 존재를 전제로하고 그분이 삶의 목적이기때문에 삶의 의미를 깨닫는 행위가 바로 기도인 것이다.
기도는 하느님을 가운데 두고 사는 삶의 핵심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것을 현실적으로 어떻게 이해 하면 좋을까? 기도가 현실도피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기도는 현실을 도피하는 방법이 아니다. 오히려 하느님의 존재를 포함한 모든 현실문제를 사실적으로 파악하는 실제문제이다. 기도하는 가운데 생활의 시작과 맺음을 충실히 한다면 현실도피가 결코 될 수 없다.
우리의 스승이신 예수께서는 수시로 기도를 드렸다. 언제나 중요한 일은 기도를 통해 결정하셨다. 그만큼 기도중에 생활계획을 짜셨다는 말이다. 또한 예수께서는 기도할 줄 몰랐던 제자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실생활 속에 실제로 받들며 사는 기도방법을 가르치셨다. 이처럼 기도는 실생활을 도피하는 것이 아니며, 참된 기도를 통해 신자다운 생활을 할수있는 것이다.
여러분의 기도생활은 어떤가? 기도시간은 충분히 마련하는가? 하루의 모든 생활이 기도하는 가운데 이루어 지는가?
기도하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좀 더 쇄신하여야 할 것이다. 우선 성직자부터 반성해 보아야 한다. 예수의 모든 생활이 기도중에 짜졌다면 우리 성직자는 어떠한가? 정해진 시간중에 기도했다고 과연 기도가 될까? 기도하는 사람으로서 하느님을 부르면서도 하느님 나라가 될 이 사회를 잊은적은 없는가? 잘못 바쳐진 기도때문에 기도와 생활이 붙일치되지는 않는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또한 신자들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신자들의 생활의 기둥은 기도인가? 기도하는 가운데 신자의 위치를 찾는가? 요즘 우리는 감당할 수 없을만큼 빠르고 많은 뉴스와 복잡한 사회생활로 인해 생각할 여유조차 갖지못하는 사회구조가 되었다. 이런 사회여건이 막바지로 끌고가는 현시점에서의 신자 입장은 시간이 없을수록 기도시간을 고수해야 한다. 현실과 자꾸 타협하지 말고 십분이라도 묵상하는 시간을 가져야 할것이다. 우리가 주님앞에 와있는 시간을 마련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어느 성직자가 감사기도에 관하여 이렇게 말한적이 있다. 『항상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건널목에서 차를 아슬아슬하게 피했을때는 무사함의 감사를, 너무나 평범한 하루를 보냈을때도 무사함의 감사를, 때로는 마음이 평안함에 감사의 기도를, 때로는 자녀들이 건강함에 감사의 기도를, 이세상 모두를 감사드릴 수 있고 기도드릴수 있다』언제나 조용한 시간을 마련하고 자기를 정리하고 성령께서 마음을 움직이실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하도록 하자. 그럴때는 분명히 삶을 보는 눈이 달라질 것이다.
결론적으로 우리들은 기도나 하라고 말하는 자들은 아마 기도가 무언지 몰라서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늘 기도하라』고 말씀하셨다. 이렇게 우리 교회는 늘 기도하는 교회, 모두 다 기도하는 교인이 되어 우리의 일거일동 모든생각 가정생활 직장생활 사회생활이 기도로 시작되고 귀결되어야 한다. 하느님을 우리생활 가운데 두고 살아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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