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그만 기다리슈!』
그리고는 더 재빨리 망치질을 했다. 웃음소리가 났다. 각본을 재암기하고 있는 체칠리아가 쳐다보고 있다.
그녀의 웃음은 나의 급격해진 마음을 더욱 충동질했다. 발표회가 모두 끝나면 나는 그녀에게 한번 만나달라고 요청할 작정이었다. 만나서는『그대의 선천적인 재질에 한없이 감사드립니다』하고 칭찬을 늘어놓을 터였다.
무대의 세터가 세워지는 동안 실히 오분쯤은 흘렀으리라. 분장실에서도 무척 바쁘게 서두르고 있었던지 원아들이 숨도 제대로 못쉬고 부데꼈다.
이런 상황속에 본당 회장님이 나타났다. 그는 관람석에 팔짱끼고 앉아있었으나 워낙 졸갑스럽게 관객들이 소란을 피우는 통에 무대 뒷켠으로 달려나온 것이었다.
나는 세터를 다 세우고 있었으므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는 회장님의 출현에 꾸벅 절을 했다.
『회장님 어려운 걸음하셨습니다』
회장님은 대단히 흥분하고 있었으므로 덥썩 나의 손을 잡아줬다. 그것도 잠시였다. 나의 손을 놓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체칠리아와 나를 번갈아보고는
『토마스, 저 소리 안들려, 어서 끝내라 어서』
유독 나에게만 재촉하는가 싶었다. 그러나 그렇지는 않았다.
『모두들 어서 끝내요. 이러다간 날 새갰소 날!』
화장님은 팔목시계를 이사람 저사람 보이며 가만있질 못한다.
관람석에선 더욱 소리를 질러댄다. 자칫 데모가 벌어질 판이다. 사회는 그제야 마이크에 대고 알린다.
『조용해주시오. 아이들이 놀라지 않게 조용해 주십시오. 무대장치와 분장이 거진 완료되었습니다』
관객들 중에 점잖은 몇몇 고성이 울렸다
『우리 좀 조용히 합시다. 좀 조용히 하잔말이요』
주로 초대권도 없이 들어온 사람들이 형편없이 굴고있는 모양이었다. 나는 그들에게 모조리 경멸의 생각을 가졌다. 그래봤자 무슨 소용이 있으랴.
분장실에서 비로소 분장을 끝냈다고 알려왔다. 무대 세터도 다 세웠다. 녹음장치까지 모두 완료된 바로 이때 쿠왕!
사회자 옆에 대기하고 섰던 징 두드리는 자가 힘껏 징방망이를 친 것이다. 관객들이 깜짝 놀랐으리라.
모두 숨소리까지 죽이고 있다. 끼르륵 끼르륵 도르래가 돌면서 막이 올라갔다.
관객들 전부가 입을 아 벌리고 눈이 휘둥그래진다. 나는 무대 뒷켠에 서있었기에 관객들 전부가 확대경에 비춘듯이 보였다.
나는 마술가마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비록 산호조각은 떼버렸지만 가마만큼은 내가 만들지 않았는가? 나는 침착해지려고 마음먹었다.
녹음테이프가 돌아가면서 숲속의 아침을 알리는 새소리가 흘러나왔다. 영사실에서 이와 성격을 같이 한 엷은 오랜지 빛깔의 조명이 비쳐왔다. 요정으로 분장한 꼬마 넷이서 마술가마를 떼메고 음악에 맞춰서 춤추며 무대밖으로 나갔다.
마술가마가 요동할 때마다 짤랑짤랑 방울소리가 난다.
관객들의 눈은 꿈속에 잠긴듯이 홀연해지고 있다.
폭포수가 흐르는 계곡쪽에서 갑자기 비명소리가 났다. 요정 넷은 깜짝 놀라며 그쪽으로 달려갔다. 음악은 위태롭게 선율을 긋고있다. 곧 계곡쪽으로 달려간 요정은 심하게 부상을 입은 공주를 부축하고 나왔다. 부상당한 공주의 머리엔 순금으로 된 관이 씌워져있다. 공주는 의식을 잃고있었다. 요정 넷은 노래로서 대화를 나누다.
『이 아가씬 공주아녀요』
넷 중 하나가 노래하자
『머리에 순금관을 쓰셨네 어느나라 공주일까요』
셋이 응답의 노래를 한다.
또 다시 선창자가
『어찌다가 이런 계곡에서 헤매셨을까요』
셋은 또다시
『사냥 나가신 왕자님을 찾아 헤맸겠죠』
『아이 쯧쯧 가엾어라 공주님』
『우리가 공주님을 마술가마에 태워줘요. 그러면 공주님은 깨어나셔요』
넷은 함께 공주님을 마술가마에 태웠다. 그리고는
『공주님을 우리들의 집에 모셔요. 꽃사슴과 백합화를 선물드려요』
넷은 잠시 감미로운 음악에 맞춰 춤추고는 마술가마를 떼맸다. 그런가 했더니 뿌직하고 소리가 나면서 마술가마가 바닥에 내동댕이 쳐졌다.
나는 날벼락에 맞은것처럼 머리를 움켰다.
저런! 하고 여기저기서 놀라운 외마디가 튀어나왔다. 나는 무엇에 들킨 것처럼 반사적으로 몸을 날렸다. 가마에 탄 아이가 엄마! 하고 진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나는 극장밖으로 내달았다. 나를 수상쩍게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들의 눈은 무대에 쏠려있었고 나는 비상구를 찾아냈던 것이다.
아 어쩜 좋단말인가. 나의 목구멍소리가 절규가 되어 튀어나왔다. 극장밖으로 나오긴 했지만 정말 어쩜 좋단 말인가. 모든게 내겐 절망이었다. 시커먼 공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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