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오랫동안 사순절은 보속의 시기라고 가르치고 신자들로 하여금 갖가지 속죄행위로써 지은 죄를 극복하도록 요구한다. 이것이 과연 올바른 가르침이요 요구인지 한번 반성해 볼 시기가 된것 같다.
죄의 본질은 하느님으로부터 독립하려는 인간의 의지에 놓여있다. 인간이 하느님 앞에서 자기의 자율(自律)을 주장하는 것이다. 죄는 그것이 백원어치에 해당되느냐 만원어치에 해당되는냐가 아니라, 크게 혹은 작게 하느님께 섬기기를 거부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을 등진 인간이 자기 힘으로는 절대로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없다. 그런데도 죄인은 하느님께 무엇을 좀 드림으로써 그와 화해하고 호의를 얻으려고 노력한다. 수많은 선행과 극기를 하고 막대한 금액을 성당에 기부했다고 해서 죄를 극복하고 하느님과의 화해를 이룰 수는 없다. 오히려 이런 행위는 인간이 자신을 하느님과 대등한 존재로서 그를 상대로 거래할 수 있는 존재임을 내세우는 거만의 표시다. 인간이 가진것 중에 하느님의 것이 아닌 게 없는데도 마치 자기의 소유인것처럼 행동하는 오만이다. 예수님은 회개는 요구하셨지만 한번도 속죄행위를 명하신 일은 없다. 인간이 무엇을 바치는 것으로 하느님과의 화해가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전적으로 받는 자이지 주는 자가 아니다. 그래서 성서는「하느님은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 세상과 화해하셨다」(꼬린후 5장19절)고 한다. 죄인들은 우리가 자진해서 하느님께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이 솔선해서 크신 자비와 저 어리석은 사랑으로 찾아오셔서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 이 자비와 사랑을 감사하게 받아들이는 것이 우리가 한 일이다. 이 은혜를 받는것이 경신행위요 의화의 길이다. 속죄의 개념은 이렇게 바뀌었다. 그래서 속죄 보속으로써가 아니라 회개 회심으로써 그리스도교적 실존은 새로운 방향을 가져야 한다.
회개는 무엇인가? 회개는 전인격을 바꾸는것, 생활 전체의 방향을 바꾸는 것이다. 계속 하느님을 거스리면서도 자신의 힘으로는 하느님께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인간이 근본적으로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전에는 죄인이었던 자가 지금은 하느님의 사랑에 모든것을 맡기는 아버지께 전인격을 위탁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과거에 지은 몇 가지 죄를 통회하고 많은 선행한다고 회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이 같은 행위들은 죄인이 무엇을 좀주는 것은 되겠지만 자기 자신을 주는 것은 아니다. 회개는 표면적이 아닌 깊은 인격적 차원에서 행해져야 한다. 하느님을 항거하던 근본적 결단을 바꾸어서 자신의 모든것을 하느님께 바치는 것이다. 그러나 회개 역시 하느님의 은총 없이는 불가능하다. 그리스도의 은총은 죄인이 다시 자신을 바꿀 수 있도록 하고 반항심을 극복하도록 한다.
회개의 결과는 새로운 인간 영적 인간이 되는 것이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새롭게 된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고 하느님과 반대되는 갖가지 경향을 거스려서 생활의 방향을 정해야 한다. 자기가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을 감사하고 생활로써 그것도 사랑의 구체적인 행위로써 (코린전13ㆍ4-7)입증해야 한다.
우리는 여기서 죄는 근본적으로 하느님을 거스리고 회개 역시 근본적으로 하느님께 방향을 전환하는 것이지만 이것이 구체적으로는 피조물에 대한 우리의 태도로 결정 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이렇게 되면 우리는 결국 선행으로 다시 돌아오지만 이것은 속죄로서의 선행과는 전혀다른 동기로 행하는 선행이다.
끝으로 사순절과 회개와의 관계를 보면 하느님의 은총이 있을 때 인간의 회심은 언제나 가능하지만「은총의 시기에 나는 네 청을 들어주었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와주었노라」(이사야 49ㆍ8) 말씀하신 바로 이 은총의 시기 구원의 날이 사순절이다. 어떤사람에게는 피정이나 꾸르실료가 은총의 기회인것처럼 사순절은 전체교회를 위한 은총의 시기다. 바오로의 권고대로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말고 성세예비자와 신자들은 받은 은총의 분량대로 자신들을 새롭게 할 거룩한 시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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