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생활을 지배하는 기조는 속도와 긴장과 변화이다. 이것은 어느듯 일반화됐다. 여기에 하나 더 첨가되는 것은 가짜만큼 흔한「대신」이다. 대신은 그만큼 우리의 생활을 쉽게 편리하게 만들어주고 그것은 곧 문명의 계단이다. 유서 대신 녹음테이프, 수제비 대신 라면, 그리고 모든 식료품의 인스턴트, 생화 대신 조화, 플래스틱 제품의 모든 용기, 물 대신 콜라, 모유 대신 분유 그리고 고무 젖꼭지, 처 대신 대리처(자유부인 첩 그렇고 그런사이의 동거 여자), 남편 대신 기둥서방(왔다 갔다하는 남자, 샤르트르와 보바르같은 계약부부, 약속으로 언제나 살짝 만나는 적당한 파트너) 호모와 레스비안(꼭 끼고 다니는 사람들) 가발과 정형가 의치, 눈물 대신 침이나 주전자의 물, 치마 대신 바지, 그 흔하디 흔한 가짜일수록 솜씨는 더욱 좋고 훌륭하고 편의하다
좀 유심히 살펴보면 사람은 인간끼리 류의 정의속에서 이토록 비슷하게 상사일까 하고보면 놀랍게도 개개인은 서로 닮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쌍동이의 외모는 엇비슷하지만 실상은 판이하다. 식성과 개성과 재능과 생리가 다른것이다. 인간의 도정은 요원하다. 끝없는 투쟁이고 행려자이다. 그 인간은 시련을 받으며 사상으로 훈육되고 있다.
마르코스의 유물론적 병증법 공산주의와 그리스도교, 사회주의의 내셔널리즘 그리고 실존주의 등 우리는 남의 사상으로 줄곧 살고있다. 또한 생각과 행동은 남의 지식으로 가득차고 학문이란 남의 지식을 울겨먹는 과정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난 다음 남의 흥분으로 감동하고 분개하고 동조하고 찬성한다. 제 흥분만 믿고서는 되지 않는다. 왜 남은 저렇게 열을 올리고 비분강개하는지 알아야 한다. 끝내는 자그마한 일이나.
월부책 외판원의 끈질긴 상혼에 휘말려「철학ㆍ문학명언ㆍ속담ㆍ인물」대사전을 장만하게 되고 일년내가야 한번도 펼쳐 볼까만 그래도 흐뭇하게 생각한다.
소를 팔아 밭을 산다. 농작물을 팔아서 TV수상기를 산다. 그것은 월부다. TV수상기를 팔아서 전축을 산다. 그것도 월부다. 얼마를 쓰다가 다시 월부로 최신형 전축을 사들인다. 즉 월부에서 월부의 순환생활이다. 한 두가지랴. 전기솔 다리미 커피셀 화장품 그리하여 접방살이 하듯 내 것이 아닌 남의 것으로 살고있다. 월부가 끝나면 새로운 월부가 시작한다. 로저 애스컴의 말은 이렇다-『우리는 오랜방황이라는 경험을 통해서 비로소 첩경을 발견하는 법이다』
그렇다. 오랜 방황이다. 정착지도 없는 기항의 포구도 없다. 쫓기고 살며 쫓으며 산다.
일본의 미네추어 베아링 주식회사(여기서 만든 부속품이 아폴로 우주선에 사용했다)에 고용된 사람은 750명인데 그 수에 비하여 사무원이래야 고작 남녀 4명뿐 헬리콥타 파이롯 1명 외 수위와 운전수는 아예 없다고 한다. 인지는 날로 비약하고 인간성은 어디에서나 천대받고 수난을 당하고 점차로 퇴화일로에 놓였다. 추방당하는 인간, 박해받는 인간 살륙되는 인간 끌려가는 인간 원한의 총성 테러리스트의 흉계 독제자의 광란 죽음의 행렬 아비규환의 전쟁 이렇게 인간이 인간을 도살하였다. 그 다음에는 우렁찬 박수갈채를 받게된다.
사라예보의 한발의 총알은 제1차 세계대전의 도화선이 됐다. 세르비아의 한 청년이 쏜 탄환은 황태자 페르디난트태공과 태자비 쇼틱을 쓰러지게 했지만 수많은 생명을 죽이는 전쟁이 됐다. 30개국의 참전으로 인류 공전의 참화를-『소피! 소피! 죽어선 안돼! 애들을 위해서도 살아야 해!』황태자의 마지막 애달픈 말이었다.
한국동란은 그 얼마나 많은 동포들이 아우성쳤는가? 피의 강토 시신의 덤이었다.
『여보! 죽어서는 안돼! 여보-』
『엄마! 우리는 어쩌라는거요 엄마 죽지마』
과부와 고아는 그 얼마였나.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가? 무엇이 우리를 못쓰게 뒤죽박죽으로 헤쳐놨는가. 누가 우리를 전쟁터로 몰았는가. 인간은 절규하여도 듣는 자는 없다. 죽음의 농선에서 산 딸기가 영근다. 피를 토한 자리에 이름모를 약초가 피어난다.
스탈린그라드 전선에서 병사들이 남긴 최후의 편지속에 이런것이 있다.
『나는 평화시 마지막해 쾌청한 여름나절을 회상하고 있습니다. 그때 당신과 함께 꽃이피어 흩어진 골짜기를 걸어왔었지요. 마음과 마음의 소리없는 얘기를 나누었지요. 그 소리는 사랑과 행복의 소리가 되었었지요. 우리는 두 사람에 관한 얘기를 나누고 장래의 일을 이야기하곤 했지요, 이젠 화려한 융단은 없읍니다. 여름철의 저녁나절도 꽃피는 골짜기도 없습니다.
두 사람은 이젠 함께 있질 않습니다.
융단 대신 무한히 펼쳐진 흰 황야 여름은 지난지 오래고 겨울뿐 적어도 내겐 장래가 없으며 상사에게도 없는 셈입니다. 사람들은 이 싸움이 독일을 위한 싸움이라고들 말합니다. 하지만 이 무의미한 희생이 국가를 위해 보람있는 일이라고 믿는 자는 이곳에선 극소수에 불과합니다』또『마가렛트여 스탈린그라드의 전국이 탈출로도 허락지 않는 절박한데까지 이르고 말았소. 나는 왼손 새끼손가락을 잃었고 오른편 가운데 손가락 셋을 동상으로 잃어버리고 식기를 엄지손가락과 새끼손가락으로 들고 있소. 그런대로 능숙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총의 방아쇠 당기는 일 뿐이오』
어떤 이는 붉은광장 가까운 골목길에서 내동댕이친 그랜드피아노로 베토벤의「정열 소나타」(아파쏘나타)를 쳤다고 편지에 썼다. 도처에서 포성이 울리고 있는데도 아무도 그 연주를 방해하려 않았다고 한다. 「전쟁과 피아노」참으로 어울리는 인간 최후의 낭만이 아니겠는가. 승자와 패자에게도 다같이 나라와 국민을 위한 충성을 맹세한다. 사람을 위하여 죽는다. 그러나 인간은 철저하게 고독에 빠진다. 누구나 고독하니 고독자와 아무리 벗하여 연줄을 달아봐도 통교되지 않는다.
주의와 조직과 제도가 연대성을 강요하는 것이지 인간이라는 족속이 그렇고 그런상태에 과연 누가 누구한테서 구원을 청할가 그 구원자는 없다. 그도 머지않아 고독에로 추방되지 아니하면 열외자이니 말이다.
진실로 어느만큼 인간을 믿을 수 있는 동물인가. 살아있는 신을 부정한다면 반드시 우상신을 만들고 노동을 신성하다 해 놓고 노동자들을 가혹하게 부린다. 신을 배격하는 공산주의는 프롤레타리아트를 새로운 선민으로 삼는 현대의 신화를 만들었다. 인간을 집단화 시키는데는 승악감이야말로 가장 적합한 수단이고 선전하는 자의 의지와 힘 그리고 거기에 히스테리의 열도에 따라 대중의 열광도도 높아진다.
민족주의의 절대균등은 다수주의가 정치의 횡폭으로 나타난다. 유태인과 아리아인과의 투쟁에서 유태인은 동물이다. 「이종의 단백질은 독이다」그래서 인간은 혈관내에 동물의 피를 일체 받아들이지 않는다. 유태인은 동물보다 더 나쁘다(한스ㆍ셈) 로센베르크의「20세기의 신화」에서는「오늘날 새로운 신앙의 눈이 트인다. 그것은 피의 신화이고 인간 일반의 신적 본질을 피로 지키고자 하는 신앙이다」
1963년 8월 28일 미국수도「워싱턴」에서 검은사람의 물결이 밀어 닥쳤다. 그 속의 플래카드에는「일체의 흑인 차별을 배격한다」「이제야 자유를!」「관헌의 잔학행위를 즉시 중지하라」「공민권법을 즉각 무조건 통과시켜라!」1963년 여름의「워싱턴」대행진 등등 인간의 피 맺힌 절규는 인간을 불신한다. 앞으로도 믿을 수 없을것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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