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마구 발걸음을 옮겨놓으면서 무대위에서 벌어졌을 사태를 머리속에 떠올리며 몸서리를 쳤다.
나는 예감할 수 있었다. 회장님의 가구에서 쫓겨나리라는 것, 그리고 요한나 수녀님과 체칠리아의 책망, 아, 하느님 나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밤의 흑한 따위는 이미 감각밖의 것이었다. 도대체 왜 그처럼 쉽게 멜대가 부러졌을까? 왜 그처럼 말이다.
나는 멜대를 재단할때 라왕중에서 가장 여문것으로 골랐다. 더구나 부러지는 걸 염려해서 대패 다이에 걸쳐놓고 발로 지끈지끈 밞아보기도 했다.
때문에 어른이 타도 까딱없을 마술가마라고 나는 확신했다 그런데 왜 부러졌을까? 나는 절망에서 차츰 의혹에 빠져들었다. 뭔가 곡절이 있음이 틀림없었다.
나는 근처의 대풋집앞에서 우뚝섰다. 술을 좀 마시고 싶어졌다. 술에 취해서 우선 불안감을 좀 떨치고 싶었다.
짙은 화장냄새를 풍기며 여자가 나왔다. 나는 여자의 체취에도 유혹의 그림자가 일렁대고 있다고 교리시간에 내 나름대로 터득했던바
『술만 가져다주십쇼』하고 바로 쳐다보지는 않았다. 나의 종교관념이 암암리에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무슨 술 드세요?』하고 묻는다. 묻는투가 아직 애송이군요 였다.
나는 엄책의 눈 이를테면 추파를 던져서 뭇사내들을 유감속에 빠뜨리지 마시오 하는 엄책의 눈으로 쳐다보며
『대포줘요』했다.
여자는 까르르 웃는다.
『숫총각이시군요. 서비스로 기분좀 맞춰드리기로 하죠』
여자는 오지독에서 바가지로 술을 떠내어 주전자에 붓는다.
나는 사뭇 당황해졌다. 여자가 술을 따뤄주고 가슴팎에 머리를 기대오고하는 장면이 퍼뜩 떠올랐다.
나는 단단히 정신을 가다듬었다. 가슴 한 구석이 간질간질해오긴 하지만. 이윽고 여자가 다가왔다. 둥근 탁자위에 다 가져온걸 차려놓는다. 나는 가만히 지켜보고 있었다. 여자는 익숙하게 술잔을 채우고는
『자요 드세요』하고 잔을 들어 입에 갖다 대준다. 여자의 다른 한손이 가만히 나의 등허리에 얹혀졌다. 나는 순간 감전된 것처럼 몸을 움찔 떨었다.
여자가 까르르 웃어제낀다.
『누가 잡아먹는 답니까. 어서 드시라구요』
나는 이순간 몹시 번민했다. 잔을 그대로 받아마신다면 유혹에 걸려 자빠지는 것이 된다. 물리친다면 나는 유혹에 이기는 것이 된다. 마실까? 물리칠까?
『이 총각? 남의 팔 힘을 알아보려나 아이 참 어서마셔요』
나는 여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여자는 한쪽 눈을 찡긋한다. 이른바 윙크였다. 여자의 입술에 번지르르 물기가 비쳤다. 그것이 암시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없다. 나는 가슴속에서 간질거리고 있는게 욕구라는 것을 문뜩 깨달았다.
나는 돌연히 한 행동을 취했다. 왼손을 가슴에얹고 오른손으로 성호를 그은것이다.
여자는 추춤 물러선다. 그리고는 대뜸 소리친다.
『이 총각 미쳐도 단단히 미쳤군. 이봐요 사람과 사람도 구별못하세요. 이렇게 화장을 하고 술을 따루니까 형편없이 보는군』
나는 여자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여자의 말이 조금도 사리에 어긋나지 않잖은가?
나는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것 같았다. 나는 여자에게 사과할 마음이 되었다.
『화내실 것 없습니다. 유혹이라는 것을 저는 두려워하니까요』
나는 술잔을 집어들고 꿀꺽꿀꺽 마셨다. 여자는 왠만큼 지식도 쌓고있다는듯
『이해할만해요. 총각은 첫인상 그대로예요. 아주 순진하셔요』
하고 부드럽게 말을 건넸다.
나는 부인하지 않았다.
『네, 주위 사람들이 곧잘 그런말을 들려줍니다』
여자는 다시
『한가지 배워두세요. 세상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직업이있어요. 제가 가진 직업도 그 중 하나예요. 그리고 직업은 선이에요』하고 말했다.
나는 반론할 충분한 밑천이 있었다. 예비자 교리에서 견진교리에 들어서기까지 나는 무척이나 배웠던것이다.
『물론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다 선입니다. 그러나 선에는 악이 붙어다니기 마련입니다. 가령 어떤 물체를 불빛앞에 가져놓으면 그림자가 생기듯이 말입니다』
이 말은 본당 신부님으로부터 들은 선악의 공론이었다.
여자는 심심했던 차라
『물체의 그림자가 어떻게 악이 될 수 있어요』
하고 따지고 들었다.
나는 기가찼다.
『누가 그걸 악이라고 했습니까? 쉽게 설명해서 그렇다는 겁니다』
여자는 잠시 생각하듯 하더니
『좋아요. 이 세상의 모든 것은 하느님께서 창조하셨죠』
하고 물었다.
『잘 아시고 계시군요』
나는 되받아 넘겼다.
여자는 신랄해졌다.
『하느님의 창조물은 모든게 선 아녜요』
『선이구 말구요』
『그러면 악은 왜 그속에 포함시키지 않은거예요?』
나는 여자의 질문이 좀 어렵게 들렸다.
『무슨 뜻으로 묻는겁니까?』
『세상 모든 것 중에는 악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생각되지 않으세요?』
나는 대충 짐작가는게 있어서 이렇게 잘라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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