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어느때나 불행하고 불행함으로써 비로소 행복하여지는지 모른다. 깊은 실의속에서 희망을 캐내는가. 용서는 사랑의 복수이더냐.
고독한 예술가 리스트는 그의 절친한 친구 바그너가 죽었다는 소식을 접했을때 그는 책상앞에서 무엇인가 열심히 쓰고있다가 꼼짝하지 않았다. 침묵이 흐른뒤에 혼자서 이렇게 중얼거린다.
『그것이 어쨌단거냐』한참 있다가 『나도 몇번이나 매장을 당했단 말이야』하고 바그너가 죽은줄로 아니듣고 몹쓸 놈들한테서 또 얻어맞은걸로 알았다. 신동 리스트의 연주를 듣고 감동한 베토벤이 무대위로 뛰어올라가서 끌어안고 그 얼굴에 마구 입을 맞추지 아니하였던가. 누구나 화려한 생애라면 그만큼 외로운 것이다. 농부는 외롭게 저 밭을 갈고있다. 아이는 외롭게 혼자 보리밥을 떠먹고 있다. 아내는 외롭게 벽을 향하여 잠을 자고 있다. 나는 외로이 뚜벅뚜벅 산등성이를 넘어 집으로 걸어간다. 산비둘기 구슬픈 저소리는 외로운 노래일까 그렇게 듣고있는 내가 정작 외로워서 일까.
「우선 멈춤」의 표지를 바라본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하여 우선 파란 불빛이 켜지기 전에 빨강 불빛을 기다린다. 그것은 일단 불신의 신호등이다. 목을 두리번하여 확인을 한다. 앞을 나아가면서 자주 뒤돌아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택시를 몰면서 연방 백밀러를 통하여 뒷좌석 손님의 동태를 주시한다. 이것은 호기심보다 안전핀의 심리이다. 밤택시를 세우고「상리동 갑시다」하면 산골짜기를 가는 나를 거의 의심하고 나를 거절한다. 으슥한 산모퉁이 나의 행선지에서 택시강도가 생겼기 때문이기도 하다. 별 수 없이 나는 하차하고 만다.
어머니의 젖은 자식에서 물려주는 가장 값지고 가장 믿을 수 있는 선물이자 자연의 생명수이다. 이제는 그만 그 어머니의 젖맛을 모른다. 젖을 먹일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나 양유를 마셔본다. 어머니의 젖맛이 이랬던가. 우유를 마셔본다. 과연 모유가 이랬을까. 이제 나의 어머니는 껍질만 남아 젖을 멈췄다.
완전히 한 개체가 독립하여 살아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누가 이 신선한 젖을 의심했겠는가. 그러나 인간의 역사가 시작한 이후로 한번도 이러한 질문이 던져진 일이 결코없던 비정의 의문이 생겼다.
-「갓난아기에게 나의 젖을 먹여도 좋습니까?」한다. 이 도대체 무슨 뚱단지같은 소리인가. 이 말만은 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모태에의 신앙마저도 깨뜨러버리고 만다. PCB(Polychloriruted Byphenel)즉 유해공업용 화학물질의 하나인데 열에 강하고 산에 그리고 알카리에 견뎌내고 금속을 부식시키지 않고 물에도 녹지않으며 기름 알콜 따위에도 녹지않으며 열을 가하거나 얼리거나 해도 성질이 변치않아 인류가 만들어낸 최근의 이상적 합성물질이라고 자만했던 것이 무서운 공해가 돼 순환식물의 과정을 거쳐 모유에 흘러들어가서 그의 화가 덮치게 된다. 불멸의 합성물체가 인체에 집적되기 때문이다. 「합성과 분해」로 생명체는 살고 죽는 천리를 좇아가지만 여기에 이변이 나타난 것이다. 불행한 기적이다.
어떻게 할까? 어떻게하면 인간을 천연 그대로 보호할까? 어떻게 하여 인간이 인간을 믿고 의지하고 사랑하게될까. 인간에게서 인간의 대접을 받을까. 이것처럼 어리석은 일, 또한 억울한 일이 또있을까. 「이것, 저것」한다. 「하나, 둘, 셋」이다. 이 초라한 대명사앞에 원고이자 피고인 인간이 항의한들 별수없는「그것」이다. 인간을 대신할 인간은 없지만 사실 많은 인간의 부분은「이것과 저것」이고 희한한 부호로 처리되고 있다.
병원의 카르테에는 지극히 간단한 표시로 기록한다. 각하일지라도 장관이나 장군일지라도 수컷이면 ♂이고 암컷이면 ♀이다. 유태교인의 무덤위엔 다비드의 별을 달고 기독교인의 무덤위엔 십자가를 꽂는다.
무명의 용사무덤엔 총검을 거꾸로 세우고 구멍뚫린 철모를 씌워둔다.
대구시의 시민인 나를 무엇으로 표시하는가. 이 나를 대신할 어지러운 아라비아 숫자가 있다. Na190220-111162는 대한민국의 국번이고 좋든 싫든 나는 이것이고 이것없으면 이제 살 수 없게 됐다. 이 엄청난 숫자의 마법에서 벗어날 절대 자유는 허용되지 않는다.
내 앞이 누구며 내 뒤가 누구인지 모르며 알 필요성도 없다. 혈액 AB형 1932년 3월 13일생 이것만 알지 한번도 내 번호를 외울려고 마음먹어보지도 못한채 나는 유별나게 수의 관념에 약하여 이 가물가물한 국번에 영락없이 매달려 산다. 그리고 주민등록 기록카드 내 어슬픈 양 엄지손가락의 지문도 등록돼있어서 어느날 내가 무슨 범죄라도 저질렀다면 범인의 지문으로 나는 체포될것이다. 생각하면 서글프고 초라하고 억울하기 짝이 없다. 어떻든 나의 자유는 박제품이다. 진실로 이웃할 마땅한 이웃은 없다.
주택가의 대문은 굳게 닫혀있고 거기에 사나운 개마저 매어놓았다.
개가 사람을 지킨다는 것 개가 사람을 문다는 것이 우습다. 바프로흐는 「라이카견」에서 조건반사를 발견하였다.
물론 이 원리를 인간에게 적용하여 고도의 신경계통의 의식적 메카니즘에 가져와 인간을 지배하지만 똥개가 인간에게 조건반사를 건단 말이다. 똥을 먹고 뼉다귀 먹고 썩은 갈치내장을 먹고사는 짐승이 사람을 지키고 있다.
문을 닫아 걸은 문이라 하여 문 좀 열어달라고 함부로 두드려서는 아니되고 조심조심 부자를 눌러야한다. 때로는 설레이는 가슴으로 노크한다.
그것도 단지 한두번이다. 두 세번씩 마구 눌러봤다간 절대로 문은 열리지 않는다. 이런 이웃이 타자이다. 남의 집에 가보고서 새삼 내 집을 자각하는 타자가 나의 이웃이다.
혹 문이 열려 있다면 자칫하면 그곳이 함정이기도 하다. 소정의 입장료를 물어야한다. 긴급한 용변일지라도 그냥 볼수는 없다. 5원 동전을 치루지 아니한다면 바지가랭이에 그냥 내흘리고 말것이다.
이 타자와 나의 위치는 어디쯤될까. 「인사이더」밖의「아웃ㆍ사이더」이다. 그렇다고 죽음은 아니다.
아무도 나를 있는 그대로를 믿어주지 않는다. 우선은 금줄이 쳐 있다. 낯선 사람의 출입을 막는다. 바깥 쪽에서 큰 기침 몇번하고 누굴 불러본다. 안쪽에서는「게 누구야!」소리 칠 것이다. 그런데 나를 누구라고 설명할까. 무슨 수로 내가 나를 누구이라고 일러 주어 믿게할것인지. 대개는 어거지로 나는 이러하고 저러하고 뭘하는 사람이며 당신을 아는 그 누구도 내가 잘아노라 한다. 이렇게 하여 나는 다소간 알려진다. 반갑잖은 시시한 인물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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