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구제위원회(CRS) 한국지부장 프란치스 X. 칼린씨가 인도네시아 가톨릭 구제위원회 책임자로 영전되어 15일경 한국을 떠난다.
67년 한국에 와서 일하다 도중 2년간 인도 가톨릭 구제위원회로 전임되어 한국을 떠났던 기간을 빼면 6년간 있은셈이다.
그러나 본인은 굳이『한국에 8년간 있는거나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그만큼 한국과 한국인에 정이 들었다는 뜻이리라. 『그동안 여러분과 같이 일하며 많이 배웠습니다. 떠나게 될 것은 예상했지만 막상 떠나야 한다니 섭섭합니다』ㆍ「나누어주기식」원조에서 자립 협동을 통한 개발사업으로 전환한 60년대 후반 이후 CRS원조의 운영권을 한손에 쥐고 막강한(?) 실력을 행사했던 그인지라 사업계획서를 들고 CRS의 문턱을 몇번씩은 넘어야했던 사람들과 미운정 고운정을 고루 나누었었다.
칼린씨의 전출은 CRS의 한국활동이 대폭 축소되었기 때문.
CRS는 작년말로 종래의 개발구호 사업을 모두 중지하고「양부모 결연」사업만을 유지하면서 CRS 활동을 유지하면서 CRS활동을 이어받을 수 있는「한국 까리따스」창립에 마지막 정력을 쏟고있다.
『재임중 가장 보람을 느꼈던 사업은 강원도 성군에 세운 시범영양 농장과 나환자 정착촌의 자활을 돕는 지원사업들입니다. 이 사업들은 CRS가 앞장을 서지않고 주민 지방관서 그 곳 교회들이 합심해서 계획을 세우고 이룩한 것입니다. 우리는 주민들이 필요한 사업을 깨닫고 협동함으로써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데서 보람을 느껴야하니까요』
CRS의 활동과관련 재임기간중 느낀 한국교회의 자선 및 개발사업에 대해 칼린씨는 60년대 후반 이후 상당한 활동이 있었지만 이러한 활동들이 체계화되지 못한데서 상당한 노력의 손실이 있었다고 본다면서『이제라도 한국교회의 힘을 과적으로 사용할수 있는 기구가 설립되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이런 제언과 함께 칼린씨는 일반적으로 한번 실패한 일이 있는 개발 및 구호사업엔 다시 손을 대지 않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실패를 거울삼아 다시 시도해보려는 노력과 사회사업의 전문지식 배양 특히 경영면의 연구가 아쉽다는 떠나는 사람의 충고도 덧붙였다.
사귄 친구들의 우정을 잊지 못하여 다시 한국에서 일하게 되기를 바란다는 칼린씨는 한국 까리따스 설립작업이 진행중이고 까리따스를 통해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때에 떠나게 된 것이 못내 서운한 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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