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부장은 상무가 세무서 직원들에게 점심을 사는데 자리를 같이하고 들어오는 모양이었다.
언제나 세무서 관리가 오면 어김없이 벌어지는 행사로서 큰돈을 들여 점심 대접을 하곤 했었다.
김 부장은 여전히 술만은 거절한 모양인지 얼굴에서 취기를 찾아볼 수 없었다.
-녀석들 돈을 먹고 사는지 돈만 보면 만사 오케이라니까.
김 부장은 이쑤시개를 재떨이에 내던졌다.
-세상에 깔린 돈을 누가 먼저 더 많이 줍느냐、이게 문제라니까. 이 세상에 돈이 아닌 게 어디 있어. 이 빌딩도 돈이요、굴러다니는 자동차들도 돈이요 바닷가의 물고기조차 돈이야. 허기야 사람 몸뚱이도 결국 돈이 아니랄 수 없는 일이지. 쳇 더러운 것들.
김 부장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었다. 배가 불러 나른한 그의 눈에서 어떤 비애가 스며나왔다.
세상에 쫙 깔린 돈. 결국 우린 그것을 줍기 위하여 하루의 바쁘고 지친 일과에 순응해 가는 것이 아닌가. 돈이 아니라면 무슨 필요성 때문에 서로 아귀 다툼을 하며 서로 억누르고 슬프고 하는 일상(日常)을 계속 한단 말인가.
사실 따지고 보면 이제 우리 세상에 돈이 아니랄 게 없는 셈이다.
수천 수백 년 동안 흘러내려 쌓인 자갈조차도 돈덩어리고、웅덩이에 고인 썩은 물도 돈이 있어야 살 수 있으니 더 이상 돈이 아닐 것이 무엇이겠는가.
형화는 점점 말라들어가는 오징어를 바라보았다. 저것도 돈이겠지….
그렇다고 저걸 먹는 우리는 돈을 먹는 거다.
형화가 오늘 점심에 이경민과 마주 앉아 먹었던 그것들도、하물며 콜라나 보리차까지도 돈을 먹은 거나 다름이 없다. 김 부장이 세무서 직원들과 늘어지게 먹었을 점심 식사의 어느 것도 돈이었을 것이다. 어떤 죽은 짐승의 살점도 돈으로 팔려나갔을 것이 분명한 일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의 살은 돈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인가. 돈을 먹고 사는 살들이 돈 이외의 어떤 것일 수 없는 일인 것이다.
형화는 김 부장의 비애스런 표정에서 돈의 모습을 보았다.
돈을 위해 각고의 일을 하고 일은 곧 돈이다. 그러니 그는 돈을 먹고 돈을 뱉는 돈주머니인 것이다.
형화는 문득 돌돌 말려지도록 구워진 오징어가 부러워져왔다.
그는 돈을 먹지 않을 텐데.
그럼 무엇을 먹고 사는가.
물을 먹고 살지.
물만 먹고 어찌 살아.
물속엔 오징어가 살아갈 만한 영양분이 있으니까.
영양분이라니?
그때 형화는 생물시간의 황정태 선생을 기억했다.
그는 물이 세상의 어머니라고 항상 힘주어 말하곤 했다. 물이 모든 것을 살린다. 세상은 그의 은총 속에서 살아간다고 말하면서 물의 신비론자처럼 강조를 했던 것이다.
-황 선생님은「플랑크론」이 물속에 분산되어 있다고 하셨지. 오징어는「플랑크톤」을 먹으며 살아왔겠구나.
뜨거운 불 위에 얹어져 뱃가죽을 뻥뻥 튀겼을 오징어는 돌돌 말린 채 이경민의 입 속에서 씹혀졌지만 그러나 그는 우리들과 같이 돈을 먹고 살아오진 않았을 것이다.
그는 물에 순응해서 물의 영양분을 흡수하며 살고 죽었을 것이다.
여기서 형화는 사람이 돈 이외의 양분을 먹고 살아야 하며 이 세상에는 그 양분이 우리들 모르게 어딘가에 숨겨져 있으리라는 걸 생각했다.
과연 그것은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지조차도 않는 것일까.
아니다. 그것은 꼭 있어야만 하는 것일 꺼다. 어딘가에 숨어 있건 존재하건 그래야만 우리의 희망이 살아있는 것일 것이다.
형화는 엽서를 계속 써 내려가면서 생각에 잠겼다.
엽서는 간혹 수신자 불명이란 이유로 되돌아온 것도 몇 장 있었다. 그것은 수신자가 이주를 했거나 또는 사망을 했기 때문인 것도 있었다.
형화는 사망인 이유의 되돌아온 엽서를 확인하고 나서 쓰레통에 구겨 집어던졌다.
쓰레기통 속의 엽서는 또 비애스러웠다. 그리고 그것은 김 부장의 나른한 표정 속의 비애와 닮은 점이 있는 것 같았다.
구겨진 비애의 모습이었다.
형화는 여기서 희망을 느꼈다.
무언가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그 비애스런 모습 이외에 숨겨져 있는 희망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것은 있어야만 하는 것이라고 형화는 다짐했다.
형화는 쓰레기통 속에 쓸 데 없는 엽서 몇 장을 더 써가며 계속 주소를 적어 내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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