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크라테스는 현인을 말하여 무지를 자각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실상 자기가 어느만큼 무지한지조차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가, 정말 반성해볼 문제입니다. 아는 체 하는 자는 모르는 자이며 모르는 것을 아는 것처럼 가장하고 있는 한 지혜가 들어갈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지혜를 담기 위하여 지혜가 들어갈 자리를 비워 두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에 지혜가 들어갈 여지를 만드는 것을 소크라테스는「무지의 자각」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받으려면 없어야 하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공자는 그의 제자의 물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가난하면서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아니하는 것은 군자로서 지킬 만한 것』이라고. 사실 우리가 바라는 것은 그것만은 아니지만 아첨과 교만은 흔히 있는 일이기에 경계하여 말했던 것입니다.
또 한 가지 겸손의 모형이 있습니다.『누구든지 내게 올 때에 자기 부모나 처자나 형제자매나 심지어는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루까 14ㆍ26)고 하고『여러분 가운데 누구든지 나의 제자가 되려면 먼저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버려야 합니다』(루까 14ㆍ33)고 하였습니다.
전자에 있어서는「미워해야」하고 후자에 있어서는「버려야」한다고 했습니다. 이것은 사랑의 원리에 입각해서 보면 예수의 제자가 된다 함은 예수의 사랑을 받는다는 뜻이요 예수의 사랑을 차지하자면「미워해야」하고「버려야」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도대체 무엇을 미워할 것이며 무엇을 버려야 한단 말입니까?
미워한다 함은 자기의 욕망에 차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러나 자기 자신까지 미워해야 한다 함은 자기 자신이 자기의 욕망에 차지 않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욕망을 보다 높은 차원의 이상을 지향하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까닭입니다. 이 이상은 바로 하느님의 나라요 그것은 곧 하느님의 세계인 것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뜻과 하느님의 세계에 미치지 못함을 미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그리고「버린다」함은 곧 자기 안에 있는 허망된 욕망들 즉 악의 요인들을 버리고 허심탄회하게「없는 상태」「가난의 상태」에 이르러 겸손을 나타내게 될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찌꺼기로 가득 찬 항아리에 보석이 담겨질 여지라곤 없습니다. 나의 마음이란 항아리에 사랑이라는 보석을 담자면 그 안에 담겨진 찌꺼기를 부어내고 보석이 들어갈 여지를 만들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는 일도 받을 여지가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겸손은 대강 위와 같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다시 하나 꼭 생각해 둘 것이 있습니다. 받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서 구해야 하고 없어야하고 그래서 구하는 자세와 없는 모습이 겸손으로 나타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겸손은 기도라는 형태에서 가장 순수한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을 부가해 두지 않으면 안 됩니다.
사랑을 요청하는 행위 가운데서 가장 정신적으로 순화된 것이 이 기도인 것입니다. 기도는 사랑의 구함의 종류만큼이나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의 종류만큼이나 다양한 것입니다. 그 순수하고 간절한 기도 안에는 반드시 겸손이 따르게 됩니다. 혹은 경건이란 말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기도 자체가 요청을 주 내용으로 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그것이 받는 보상에까지 연결되기 위하여는 정신화 되기 전의 행위의 진실과 자각적 통회가 필수적인 것입니다. 기도란 자기가 자기를 초월하려는 의지와 자기에 대한 통회와 미래에 대한 결의가 전체되는 것이며 그래서 현재를 초월한 자기가 타인에게 봉사하고 헌신하려는 보다 숭고한「겸손」을 요청하게 되는 것입니다. 동시에 거기엔「없음」의 고백과「가난과 약함」의 자각이 따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진실한 기도에는 사욕(私慾)이 없는 것입니다. 죽음에 직면한 자기비판이나 회오(회悟)는 그 사람 일생에 있어서 가장 값있는 진실일 수 있으며 이때의 인간은 누구나 약하며 그래서 사랑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죽음 앞에 겸허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장 불완전합니다. 그래서 그 회오와 자각은 사랑 받기에 충분하게 됩니다. 유언을 순수하게 받아들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으며 사형수의 진실을 듣는 이유도 또 종부성사를 주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제4話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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