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듯 박 신부님이 보여주신 신념과 박애 정신에 끌려 젊은 남녀들은 그분처럼 생활하기 위해 성직자로 수도자로 지원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요사이도 그렇지만 지금부터 40년 전에 선교 방법 중의 하나가 교우들과 젊은이들과 함께 어울리며 그 생활 속에 뛰어들 때 얼마나 많은 문제를 해결하며 그들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겠는가는 쉽사리 이해가 가고도 남는다.
수녀들은 때때로 수도 규칙을 내세워 꼭 행해야 할 이웃 사랑도 마다할 때가 있다. 이를 보신 신부님께서 하루는『수녀님! 사랑이 먼저입니까? 규칙이 먼저입니까?』하고 물으시어 얼굴이 붉어졌던 일이 있다.
신부님이 이렇게 물으신 것은 편협한 방식으로 전교하는 수녀들에게 일깨움을 주시기 위한 것이었다.
박 신부님은 6ㆍ25 사변이 발발했을 때 누구보다도 먼저 수녀들을 보호하기에 극력 수고하셨다.
하루는 인민군 패잔병이 성당에 들어와 루르드 성모상을 내려다 부수려고 했을 때 그의 손이 떨려 석고상에 손을 댈 수 없어 내리지 못하고 바라보니 성모님 눈에서 눈물이 줄줄 흘러 그냥 모상에 대고 총을 쏘았더니 총탄이 성모상에 구멍만 내고 탄알 7개가 그대로 성모상 안에 들어가 박혀 있다는데 그 성모상은 지금도 매괴성당의 수호자로 모시고 있다. 또 왜정시대에 파출소 순사가 수차에 걸쳐 매산 입구에 신사를 짓겠다고 본당 신부님께 으름장을 놓으며 청을 했다. 번번이 굳세게 거절해온 신부님은 더 이상 버티지 못하게 되었을 때 이를 허락했다.
그리곤 어린 소녀(지금은 수녀가 되었다)에게 성모 은사패를 그 산턱에 몰래 묻도록 했다. 오로지 성모님의 가호를 빌었던 것이다.
드디어 인부들이 신사 기공을 하려는 찰라 별안간 먹구름이 덮이고 뇌성벽력을 치니 일할 사람들이 겁에 질려 일을 하려 들지 않았다. 그래서 신사를 지으려던 사람들은 이것이 본당 신부의 진정한 허락이 아니며 더구나 하느님이 싫어하시는 일이라 하여 매산의 신사 건축은 취소되었다. 또한 벼락으로 그곳이 펑퍼짐하게 넓은 광장이 되어 성체대회 때는 3천여 명의 신자들이 모여 미사를 드리고 성체거동을 하게 되는 시발점이 되었다.
나는 장호원 분원 책임자로 있으면서 성당 일을 돌보며 매일 국민학교 어린이 교육에 여념이 없었다.
전교하는 수녀가 따로 있기에 직접적인 전교는 못 나가고 대신 어린이를 교육하는 중에 주님의 사랑과 현존에 대한 것을 강조하였다. 혹시 수업 중에 피치 못할 일이 있을 때 어린이들에게 과제를 주고 자리를 비워도 그들은 예수님이 보고 계시다고 모두들 제 자리에서 다소곳하게 주어진 과제를 하곤 했다. 또 성당 분위기에서 지내는 탓인지 무슨 일을 시키든 어린 아이들이 꾀를 부리지 않고 성실하게 해내곤 했다.
이처럼 장호원이란 땅은 그 당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심기에 아주 좋은 토양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계속 성직 수도 성소가 이어지고 있는 것 같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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