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께서 원하시며 우리가 건설해야 할「일치된 교회」라는 오늘의 주제를 염두에 두고 내가 지금까지 네 차레에 걸친 강연에서 의식적으로 피해왔던 단어가 있다. 그것은「가톨릭」이라든가「성당」「신부」「강론」등과 「목사」「프로테스탄」따위의 용어다. 또한 성경구절의 인용도 공동번역 신약성서에서 발췌했다. 이 모두가 오늘 말하고자 하는 교회의 일치문제를 위한 의도였음을 밝히려 한다.
우리는 우선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를 호칭함에 있어서도 무어라 불러야 될 지 어색하고 우스꽝스런 답답한 심정을 겪을 때가 많다. 같은 하느님을 믿는데도「가톨릭」또는「프로테스탄」이라고 부르며「구교」또는「신교」라고 부르기도 한다.
교회의 분열에 관하여 성바오로 사도께서 꼬린토전서 1장에서 하신 말씀을 우리는 되새길 필요가 있다. 『형제 여러분,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호소합니다. 여러분은 모두 갈라지지 말고 서로 일치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의 생각과 뜻을 같이하여 굳게 단합하십시오』또한 에페소스 4장에서 말씀하신 일치에 대한 호소도 기억하자. 『주님을 위해서 일하다가 갇힌 나는 여러분에게 권고합니다.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불러주셨으니 그 불러주신 목적에 합당하게 살아 가십시오. 겸손과 온유와 인내를 다하며 서로 사랑을 가지고 서로 너그럽게 대하십시오. 성령께서 평화의 줄로 여러분을 묶어 하나가 되게 묶어주신 것을 그대로 보존하도록 노력하십시오. 그리스도의 몸도 하나이며 성령도 희망도 하나입니다. 주님도 한분이시고 믿음도 하나이고 세례도 하나이며 만민의 아버지이신 하느님도 한분이십니다. … 인간의 간교한 꾐수와 속임수로써 사람들을 잘못에 빠뜨리는 교설의 풍랑에 흔들리거나 이리저리 밀려다니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도리어 우리는 사랑 가운데서 진리대로 살면서 여러면에서 자라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한몸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교회는 이와 같이 하여 사랑으로 자체를 완성해 나가는 것입니다』
이상을 통하여 주님께서 교회 일치를 원하셨음을 똑똑히 알수 있다. 『서로 사랑하시오. 내가 당신들을 사랑한 것처럼 다른 사람도 사랑하시오』라고 하신 바로 그 사랑이 교회의 특징이며 참교회를 뜻하는 표가 된다고 결론지을 수 있겠다. 서로 사랑하지 않고 일치하지 않을 때 우리는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없다. 또한 주님 뜻대로 교회가 서로 사랑하면 일치된 교회가 될 것은 분명한 일이다. 그런데 우리 교회는 과연 일치된 교회인가? 사랑의 교회인가?
개신교의 역사를 한번 생각해보자.
지금으로부터 약 4백여년 전에 발생한 종교개혁이 역사의 흐름을 타고 우리에게 주는 피해는 너무나 대단한것이다. 16세기 유럽에서 생겼던 하나의 실수가 오늘날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준 것에 대해 근본적으로 고치려고 노력해야만 교회일치의 문제가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당시 루터가 가톨릭에 처음 실망한 것은「로마」에 여행갔을 때이다.
그때「로마」교회는 나쁜인상을 주었고 쇄신할 필요성을 지니고 있었다. 여기서 루터가 반항한 것은 당연한 일이고 마땅한 용기의 소치였다. 루터의 주장이 무리가 아닐정도로 가톨릭의 잘못이 컸다고 인정했어야만 했다. 가톨릭의 일부가 부패했다는 것을 지금엔 부인못할 사실인 것이다. 최근에는 가톨릭이 제2차「바티깐」공의회에서 밝힌바와 같이 잘못을 화해하고 쇄신하려는 분위기에 충만해있다. 당시 교황이신 요한 23세께서 가톨릭의 잘못을 인정하고 개신교에 용서를 청했다. 종교개혁 이전이나 그 당시나 그 이후에도 줄곳 가톨릭은 개신교와 일치하지 못한데 책임이 많은것이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들(구교ㆍ신교)이 다툰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다. 이제는 우리 서로가 주님의 말씀과 정신대로 복음을 실천할 때인 것이다. 과거 10년간 구교와 신교사이에 대화가 있었고 대화가 깊어져 가고 있는 것은 반가운 사실이다. 그 실례로 1971년 부활절을 맞아「공동번역 신약성서」가 나왔고 금년에는「공동번역 구약성서」가 나올 예정이다.
특히 최근에 사회문제와 관련되어 같은 입장에서 걱정하고 같이 나서면서 신구교가 많이 가까와졌고 화해하게 된 것을 피부로 느낄수 있다. 인류 역사를 살펴보아도 사람들이 서로 할 일 없이 보고만 있으면 다투게 마련이다. 이처럼 교회도 매사에 맞서지 말고 공동작업을 통해 서로 이해하면 자연히 해결책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주님께서는 일치된 교회를 원하신다. 앞으로 교회가 더 일치된 교회가 되도록 안배해 주실 것이지만 그날이 오기를 가만히 기다려서는 안된다. 우리가 잘못한 것을 갚기위해서도 천주교가 앞장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천구교 신자는 좀 더 넓은 아량을 배우고 또 실천해야 한다. 그런데 일치니 아량이니 말로만 떠들지 말고 우리 실생활 속에서 우선적으로 일치를 실천해야 한다. 주님의 뜻을 잘 받들기 위해서는 각자가 구체적으로 의견 일치를 보아야겠지만 그보다 차원높은 신앙의 일치를 더욱 도모해야 될것이다.
저 넘어 골짜기에서 무르익은 밀과 포도알들이 거두어져 한 빵과 한 포도주가 된듯이 주님, 이 땅의 별가지 민족도시 마을로 흩어진 주님의 교회를 하나가 되게 하시며 거룩하게 하시며 오직 주님의 한사랑안에 머물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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