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징어가 돈을 먹고 살지 않으니 세상에서 제일 깨끗하다고 하더라도 별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심지어 오징어가 살아있는 거라고 한대도 좋다고 형화는 생각했다.
그런데 형화는 문득 쓰레기통 속에 틀어박혀 있는 엽서 조각을 보며 오징어와 꼭 같다는 것을 느꼈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모두 죽어 있으니까.
수신인이 죽었기 때문에 엽서마저 쓰레기통에 들어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들은 모두 어떻게 죽어갔을까?
(죽는 거와 내가 무슨 상관이람)
형화는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아직까지의 자신과 죽음과의 관계로부터 훌쩍 벗어나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벌써 그것을 입증하듯이 형화는 죽어간 엽서들을 물끄러미 보고 있는 것이다.
그들도 오징어처럼 둘둘 말려지며 죽어갔을까!
경민의 누나처럼 철판 위에 누웠다가 마지막으로 벌떡 일어나 앉으며 죽어갔을까 혹은 김 부장 어머니의 갓난아이처럼 차고 굳은 물체로 식어 갔을까.
무엇보다도 형화에게 의문스러운 것은 사람이 물체가 된다는 일이었다.
물체는 마찬가지의 물체이건만 살아있는 자의 육신과 죽어있는 자의 육신이 너무도 판이한 것이 경이로울 정도로 의문스러웠다.
살아있는 사람의 몸은 마치 싱싱한 한 그루의 나무와 같아서 해마다 부쩍부쩍 자라나고 잎을 번성시키며 또 어느 땐가는 열매를 맺어 나무로서의 결실을 맺는다.
형화의 몸도 마찬가지였다.
보드라운 살결과 유연한 몸마디를 그리고 요모조모 우리가 살아가기 위해 편리하고 아름답게 만들어진 눈ㆍ코ㆍ입 기쁠 때는 기쁨을 표시할 수 있는 몸이며 슬플 때는 슬픔을 내뱉는 것이 몸인 것이다.
악수를 할 때 손을 내밀고 반가움에 겨울 때 껴안기도 하며 그를 부를 때 손짓을 한다. 모두가 살아있는 몸의 모습이다.
그런데 죽음은 왜 저 휴지통 속 엽서 나부랭이 아니면 경민이가 던지고 간 오징어의 모습인 것인가.
오징어는 약간의 살을 부풀리며 길게 뜯기어 사람의 입 속에 씹혀 들어가면 그만인 것이다.
돈이 아닌 깨끗한 물 그리고 부류(浮流)하는 플랑크톤을 먹고 살아가는 일생을 살아도 일단 죽어지면 햇빛에 말려지기 마련인 것이다.
그리고 더구나 인간의 돈에 의해 사고 팔려지며 그리고 맛있다는 것 때문에 씹혀져야 하는 물체로서의 생애가 남아있는 것이다.
사람이 죽으면 그의 몸은 물론 그의 물건이나 소지품마저도 죽음을 당하듯 뿔뿔이 헤어지든지 소각을 당하든지 이리저리 배회하게 된다. 그리고 그의 이름자를 찾던 엽서는 쓰레기통에 처박힌다.
형화는 연필을 늘리며 일을 하고 있던 자신의 몸을 돌이켜보았다.
그리고 자가용에 걸쳐 있는 옷들과 핸드백 속에 들어있는 화장품이며 소지품들을 생각해 보았다.
그것들도 언젠가는 오징어나 엽서처럼 물체가 되어가는 날이 있겠지.
살아있는 자신이 물체가 된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는 일이다.
그리고 형화는 슬픔조차도 느꼈다.
왜 우리가 물체로 귀결되어지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왜 죽어질 것이 지금 살고 있는 것인지.
예사로운 일이 아니고.
왜냐하면 형화뿐만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의 문제까지 연결되기 때문이다.
죽으면 모두가 물체라는 한 모양으로 통일되듯이 이에 반하여 살아있다는 것은 물체가 아닌 것으로 한 모양인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형화는 이쑤시개를 끝내고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김 부장도 자신과 같은 모양이라는 것이 놀라웠다.
그리고 자가용의 하얀 시트에 붉은 피를 묻히고 시내를 돌고 있을 이경민도 같은 모양이 분명하다는 일이 마음에 안 들기도 했고 놀랍기도 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길거리를 스쳐 지나는 수없이 많은 낯선 사람들도 서울 운동장을 메우는 일들뿐인 팬들의 모습들도 또 시장바닥의 시끄러운 인파들도 한 모양인 것이 놀랍고 당황스러워졌다.
그렇다면 모두란 무엇이란 말인가. 세상의 모든 사물과 사람들이란 무엇인가.
그리고 그 안에 살아있는 우리 인간들의 움직임 사랑과 미움 기쁨과 슬픔 아름다움과 추함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 그리고 물과 플랑크톤 돈과 인간들의 온갖 의미는 무엇인가.
이것들이 결국 살아있다는 하나의 전제로서 모두 한 모양으로 귀결되어질 것인가. 아니면 그 이상의 또 무엇이 있는가.
평화는 머리가 어지러웁다는 것을 느끼면서도 아직까지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한 어떤 깊은 희열을 조심스레 접하면서 이 여러 가지 제기된 질문을 생각해보기 시작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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