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골고타」의 우도들이 모여있다. 2천년이 흐른 오늘이지만『주께서 왕이되어 오실때에 저를 꼭 기억하여 주십시오』하며 애절히 기도하던 그 우도의 기도가 오늘 또 다시 밀폐된 벽돌담의 감방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분명히 말해두지만 오늘 당신은 나와 함께 낙원에 들어가게 될것이요』여기 전국 교도소 지도신부들의 교도소 사목에 얽힌 얘기들을 연재한다.
버스에서 내려 서대문 현저동의 높다란 벽돌담집을 향해 걷고 있었다. 입구에는 여늬날처럼 수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면회하기 위해 자기의 순번을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교무과로 들어가는 구치소 문을 향해 비탈길을 걷고 있었다. 뒤에서 누군가가 나를 따라오는 듯한 빠른 걸음걸이를 느끼고 뒤를 돌아보았다.
『신부님 이시죠?』
『네, 그런데 누구시죠?』
30대의 한 젊은이였다.
나는 어느 신자가 내 복장에서 신부라는 것을 알아보고 가족 중의 어느 한 사람의 면회 부탁이나 하지 않을까 생각하며 탐탁하지 않게 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저는 구치소 안에서 신부님을 뵈어 알고 있습니다. 며칠 전까지 이곳 구치소 안에서 생활하다 나왔습니다. 오늘 사형수 김○○을 면회와서 접수해 놓고 기다리는 중입니다.
신부님, 제가 넉 달 동안 그 사람과 같이 생활했는데 그는 정말 진실된 사람입니다. 살릴 길이 있다면 꼭 살려 주십시요. 정말 잘못을 뉘우치고 있습니다. 아마 그는 이곳에서 나오면 진실되게 살 것 같습니다』
나는 그 사람의 표정에서 진실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그는 1970년 2월 5일 의정부 지방법원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70년말 나의 선임자 장 요셉신부님께「보니파시오」란 성세명으로 세례를 받았다. 나는 평소의 그를 잘 알고 있었다. 진지하게 고백성사를 보는 그의 모습에서 진실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고 내가 성체를 모시고 감방마다 돌아다닐 때면 의례히 그는 기구하며 나를 반갑게 맞이하곤 하였다.
하루는 전화가 걸려왔다. 사형수 김○○과 함께 4개월을 같은 감방에서 먹고자면서 그가 정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참되게 살고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다는 일전에 만난 그 젊은이의 전화였다. 또 자신은 프로테스탄 감리교회 신자지만 그렇게 신앙심으로 변할 수 있나 하는 것에 대해 크게 감동했고 자신은 작은 인쇄업을 하고있는데 한번쯤 그의 재판을 위해 변호사를 선정해서 돕고 싶다는 얘기였다. 후에 이 사람을 통해서 나는 그의 어린시절과 범죄경위에 대한 윤곽을 들을수가 있었다.
보니파시오는 1936년 4월 29일 경기도 파주군 임전면 임진리 64번지에서 가난한 농가의 맏아들로 태어났다. 철모를 때에 어머님을 여의고 부모의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한 시기에 가출하여 삭막한 사회에서 오직 그날 그날의 생을 영위하기에 급급했고 죄악이 무엇인지 모르며 주위에 흔한 친구들과 어울려 범죄를 일삼았다. 범죄의 세계는 모두가 그렇듯이 친구들간의 의리는 아주중요시된다. 그러나 특히 보니파시오의 경우에는 더했던성 싶다. 교도소 안에서 하루는 검방(삼방을 전부 수색하는 것)중에 보니파시오와 함께 미결수들이 사는 방에서 담배가 한갑 나왔다.
이때 보니파시오는 미결수들이 겁에 질려 쩔쩔매는 모습을 보자 모든 것은 자기의 잘못이니 자기를 벌해 달라고 나섰다. 사형수는 다른 미결수들 보다는 벌을 적게 받지만 다른 사람의 벌을 받는데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첫째 이런 사건이 나면 사형수는 방을 옮겨야 되므로 또다시 새로운 사람들을 사귀어야 되고 담당 교도관과도 새로 친해야 되므로 매우 큰 고충이 따르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그 안에서 자유롭게 다닐수가 없으므로 먼저 있던 방의 사람들을 만나 볼 수도 없고 요주의 인물로 낙인을 받기가 쉬운 때문이다. 그러나 보니파시오는 그곳에서 만 4년을 지내는 동안 교도관들에게도 의리가 있는 사람이라는 것이 알려진후, 의례 그런일이 있을때마다 숨겨진 사실들이 있으려니 하며 인정을 받기 시작했고 주위에서는 그를 동정하는 사람들이 늘어갔다.
사형선고를 받은 사건만해도 그렇다. 본래 보니파시오는 3인조 절도단의 두목격으로 친구로부터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는 마취제「크로루호룸」을 구입해 부하들에게 절도를 지시하고, 자신은 문산 술집에서 밤새 놀며 성공했다는 소식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나 아침에 경찰이 들여닥쳤고 공범들과 함께「강도치사죄」로 수감되었다. 일가족 모두가 마취제로 인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후에 안 일이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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