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인간의 삶과 죽음은 그 생애를 살다간 인간의 여러가지 회의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항상 그 자체로써 풍부한 의미의 완성된 전체로서 추상된다』독일의 유명한 법률가 안젤름 포이엘바하에 대하여 현재 법철학의 거장 구스타브 라드브루호가 드린 이 헌사를 그대로 한국의 법률가 김홍섭에게 드린다면 얼마나 자연스러울까? 「사도법관」「법의속의 진인」「무상을 넘어선 각자」등등 많은 찬사를 받으며 타계한지 어언 10년, 김홍섭의 이름은 더러는 망각의 세류에 씻기우기도 하고 자라난 새 세대에게는 생경한 인물이 된 듯도 하다. 이것이 바로 김홍섭 자신의「인생무상」의 테에마 였던가! 그러나 한국의 사법의 장래와 신앙의 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이들에게는 그의 이름이 날로 높이 추앙되고 있다. 인생 50의 짧은 생애를 조용히 살다간 한 법조인 한 가톨릭 평신도의 이름이 오늘의 한국상황에서 이처럼 진하게 추상되는 것은 왠 이유에서일까?
그것은 김홍섭의 삶과 죽음이 그 생애를 살다간 인간의 여러가지 회의와 절망에도 불구하고 그 자체로서 풍부한 의미의 완성된 전체로서 나타나기 때문이라 생각된다.
상업일에서 단신독학으로 법조계에 진출, 검사생활에서 회의를 느껴 변호사 판사 법철학 강사로 전전하면서 대법원 판사 고등법 원장에 이르는 각박한 직업윤리속에서도 영원한 사제직에의 동경을 종말론적으로 의식하던 인간적 갈등. 유년시절부터의 프로테스탄티즘 신앙생활에서 회의를 느끼고 불교에로 경도되다가 거기에도 안주하지 못하고 다시 가톨릭시즘의 포구에로 편력해온 구도적 고뇌. 사형대의 이슬로 사라질 대자들에게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어「무산에서 상생에로」이르는 구원의 논리를 설하던 종교적 깊이 … 이러한 여러가지 편린들이 전체로서 합하여 김홍섭의 법신학을 이루었던 것이다
「법과 종교」, 그의 만년의 일기장 한페이지에 메모된 이 두마디가 한국의 제한된 사랑속에서 전 생애를 바쳐 아름다운 법신학의 결정을 이루었다. 물론 배면에는 평소에 존경하던 괴에테의 인간성과 파스칼의 지혜, 슈바이처와 톨스토이의 윤리 링컨과 깐디의 인간애가 채색되어있지만 이 모든 색조들을 자신의 빛깔로 바꿀 수 있었던점에 그의 법신학의 독특성이 있는것이다. 참으로 그는 홈즈, 힐디에 비견할만한 명법관인 동시에 중국의 吳經態 일본의 田中耕太郞과 함께 동양의 가톨릭법률가로서 세계에 자랑할만한 신학지성이었다.
김홍섭의 법시학의 제일 기조는 그의 독특한 자연법론에 근거한다. 피난의 붓짐속에서도 바이볼과 천체망원경을 잊지않았던 그 의자연애호벽은 자기대로의 신비한 자연관에서부터 자연신학을 형성하여 자연에의 유추를 끌어낸다. 이 자연법에의 확신을 얻기까지 그는 법률가로서 얼마나한 불안과 절망에서 헤매었던가! 그러나 결국 그는『순리의 법을 법대로 다루었을 때 법관은 보람을 느낀다』고 스스로 고백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법신학의 두번째 특징은 끊임없는 인간애의 사상이었다. 법철학은 법의 이념을 일컬어 정의라 단정하지만, 법신학은 더나아가서 정의의 이념이 무엇인가를 묻는다. 숲을 지키는 자와 도벌하려 온 자, 돈을 빌려준 자와 갚아야 할 자가 모두 가족적 친근성속에 살기를 법신학자는 희구하는 것이 아닐까? 이런의미에서 법신학자 김홍섭에게 있어서 모름지기 인간존재의 모든 법은 에릭불프가 말한 저 선린(善隣)의 법이 되어야했던것이 아닐까? 판사의 신분도 사형수의 신분도 인간가족의 사랑의 연대를 끊을수는 없었다.
김홍섭의 법신학의 마지막 특징은 신의 법에 대한 겸손에 이른다. 많은 자연법론자들이 존재의 유비 신앙의 유비에 오르지 못하고 자연철학의 범주에 갇히우고 만다. 그러나 김홍섭에게는 변전하는 자연의 무상보다 영원한 신의 열락이 보다 생생한 리얼리티였다. 그러기에 재판석상에서 피고들에게 유죄를 선고하면서도『하느님이 보시기에는 어느편이 죄인인지 알 수 없으니 … 』라고 신심에의 여백을 마련해주기를 잊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법신학의 제기에도 불구하고 도도히 흐르는 오늘의 한국상황! 자연법 의식이란 아랑곳없는 조령모개의 실정법률의 범람, 인간의 존엄과 인간애의 윤리가 말살된 물질주의와 정치권력의 횡포, 신의 법에 대한 의경을 망각한 무신론적 세속주의의 대중문화, 이 모든것들이 김홍섭의 이름을 더욱 청청히 추상하게 만드는 것인가? 『참으로 이럴때에 그분이 계신다면 … 』한결 같은 공감의 추상속에서 무상의 세계에는 어언 10년이란 세륜이 지나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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