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환으로 성모병원에 입원가료중 3월 5일 향년 85세로 타계한 고 황정수 신부는 1890년 3월 14일 충남 예산에서 태어났다. 그 후 28세인 19 18년에 서품, 지금에 이르기까지 반세기를 넘는 57년간 한국 천주교회 역사와 더불어 살아왔다. 고인은 그동안 출신교구 지역인 장호원 행주 흥천 예산 하우현 논산 평택본당의 주임신부를 지냈으며 서울 삼각지본당 주임신부로 있으면서부터 서울교구에서 일했다. 1961년부터는 사실상 은퇴해서 동자동수녀원과 가톨릭대학 신학부 영적 지도신부로 있었으며 1968년 정식으로 은퇴하여 서울주교관에서 거주했다.
대전교구장 황민성 주교의 백부이기도 한 고인은「고백 신부」꼬는「변두리 신부」로 불리어지기도 했다.
착실하고 꼼꼼한 성격으로 누구보다도 사제직을 충실히 실천한 그는 교회의 손길이 미처 뻗지못한 지역에 솔선하여 복음을 전파하는 사도였다.
그래서 주로 변두리지역에 새 본당을 신축하곤 하여「변두리 신부」가 됐는지도 모른다.
또한 그는 사제생활에서 제일 중요하면서도 어려운 고백성사를 천직으로 여겼다. 다른 신부들은 취미로 바둑이나 장기를 즐기곤 했으나 그의 취미는고백성사를 주는 일이었다.
특히 그를 찾는 신자들 중에는 말 못할 고민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간혹 냉담중인 군장성이라든가 창녀들도 끼어있었다. 그러나 고인의 따뜻한 손길로 인해 냉담상태에서 천주님의 품으로 되돌아온 신자가 상당수가 된다.
어느날 고인이 앓아누웠을 때 한 신부가 병문안을 갔을때다. 이야기 도중에 손님이 왔는데 고백성사보러 왔다니까 아픈 몸으로 벌떡 일어나 조용히 성사를 주었다. 『그처럼 사제직에 성실한 분이셨는데 … 』하며 임종국 신부(은퇴ㆍ서울 주교관)는 당시 황 신부의 성의를 회고한다.
사제직을 충실히 이행한다는 것은 일평생의 사제생활을 통해서 성사를 열심히 권장하고 베푸는 것이라고 한다면『이 점에 있어서 고인은 사제직을 백% 실행한 성스러운분』이라고 임 신부는 덧붙인다
고 황 신부의 장례미사는 노기남 황민성 지학순 주교의 공동 집전으로 거행됐으며 서울대교구 소속 신부들은 각자가 미사 3대씩을 봉헌하고 고인의 영혼을 위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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