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1월 1일(목요일)성탄절처럼 갑판위에서 창미사를 봉헌한다. 함장이 우리에게 「도미네 살보스 팍노스」(Domine Salvos fac nos)를 노래하라고 하므로 우리는 기꺼이 수락했다. 동방이교 신자인한 러시아 판사가 그의 부인과 딸과 같이 미사에 참여하며 기쁨의 누물을 흘렸다. 얼마나 깊고 감격을 주는 신앙인가!
1월2일 콜롬보에 도착. 우리는 육지에서 미사를 지낸 다음에 봉쟝대주교댁에서 만찬을 하러가기 위해 대성당에서 다시 만났다. 착한목자회 수녀들과 마리아의 프란치스꼬회 수녀들을 방문하다. 새벽3시경 다시 떠나기위해 배에 오르다.
1월 11일 저녁5시 피낭에 도착, 그리아르신부등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차로 신학교까지 가다. 저녁식사후 연극과 상품 배부가 있었다.
1월 24일 토요일 저녁에 사이공에 도착. 르메 신부가 부두까지 우리를 마중나왔고 또 우리를 환대해주었다.
1월 29일 홍콩도착.
1월 31일 아주 춥고 바람도 견디기 어려울 정도다. 배안에는 불을 피웠으나 모두들 고생이다. 식욕도 잃고 설사도하다.
2월 9일 중국의 정월 초하루, 즉 구정이다.
2월 14일 요동이 심하고 또 배멀미.
2월 15일 주일 아침에 나가사키에 도착하다. 온화하고 상쾌한 날씨.
2월 19일 일어나니 대마도에 도착해 있었다. 3시에 부산에 도착하다. 죠조신부가 우리를 배로절영도(주①)로 데리고 갔다
2월 21일 오늘은 블랑주교의 기일(주②)이다. 그런데 미사도 미사도 지낼수 없다니! 새벽2시에 제물포에 도착하다.
2월 22일 (주일)날이 새자 코스트ㆍ두세ㆍ알릭스ㆍ르 비엘신부들이 많은 교우들을 동반하고 우리를마중나왔다. 말할 수없는 기쁨! 미사와 점심. 라포르트씨 집에서 저녁 식사. 호텔로 가서 살라벨라와 그의 누이를 방문하다.
2월 23일 가마를 타고 서울로 떠나다. 4시경 한강에 도착, 강 맞은쪽에서 마중나온 교우들로 가득차있었다. 모두들 열광! 5시경에 서울에 입성. 나는 남대문에서부터 새집을 보았는데, 그쪽으로 가는것같았다. 이어 곧 주교댁을 알아보았고, 「순교자들의 꽃을 피우라」(뮤뗄주교의 사목표어)고 새겨진것을 보았다. 프와넬ㆍ리우빌ㆍ빌렘ㆍ우도신부들과 학생들, 수녀들과 보육원 원아들이 기다리고있었다. 마당에는 신자와 외교인의 무리로 만원이었다.
2월 25일 외교사절들과 주요한 거류민들을 방문하다.
3월 6일 프랑스 공사 콜랭 드 플랑시와 같이 독판(督辨)민족묵을 방문. 친절한 회담. 요즈음 신자들은 그들의 새 주교의부임을 연회로 축하하려했고, 그래서 선물상을 차리고 축사를 했다. 그들을 식당에서 만나야했는데 먼저 남자들을 만나고. 다음 여자들을 만났다.
3월 7일 대구에서 추방된 로베르신부(주③)가 뜻밖에 서울에 도착했다.
※주①지금의 영도. 부산지역 본당설립을 위해 1890년 6월 죠조 신부가 임시본당을 설립했었다. ②블랑주교는 1890년 2월 21일 병으로 한국에서 사망, 따라서 1891년 2월 21일은 1주기가 되는 것이다. ③1891년 정월경 로베르신부와 그의 통역및 마부들은 대구에서 블한당들에게 폭행을 당했다. 이에 신부는 경상감사에게 항의를 했으나 도리어 로베르 신부는 대구경외로 추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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