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대문 구치소의 사형수들과 인연을 맺게 된 지도 5년째 접어들었다. 세상에서 버림받았고 끝내는 죽음을 선고 받은 이들에게 희망할 것이란 아무 것도 없다. 그렇다고 이들을 그냥 죽어가도록 아무런 가치도 없이 세상에 살았던 흔적마저 없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 교회에서는 이 방면의 사목을 위해 담당신부를 파견하고 이들의 사목을 후원하는 후원회까지 생기게 되었다.
내게 이 일을 맡으라는 어른의 본부가 처음 내렸을 때 좀 당황했다. 왜냐하면 너무나 생소한 방면이고 내 나이가 나이인 만큼 체력이 딸려 감당할 수 있을까 걱정이 되었고 또 무엇보다도 절망 속에 있는 그들에게 희망과 영원한 삶을 심어주기에는 내 힘이 너무나 미약함을 알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전능하신 분의 힘을 믿기로 하고 용감하게 이 길에 들어섰다. 73년 10월 10일, 서울구치소에 나간 첫날이었다. 교도소가 세워진 지 오래 된 곳이어서 건물은 낡고 우중충하며 이곳저곳에서 악취가 났다. 수감되어 있는 사람들도 상당히 많은 듯했다. 우선 늘 접촉해야 될 그곳 교무과 직원들과의 인사 소개를 받았다.
첫날 바로 수정수를 만났다. 두 손은 쇠고랑에 채워져 있고 안색도 좋지 않았으나 첫 대면하는 나를 명랑한 표정으로 맞아주었다.
나는 그를 바로 쳐다보기에 미안스럽기도 하고 불쌍한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주저하고만 있을 수 없어 수정수와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예상과는 달리 친밀하게 굴고 고분고분했다.
이런 사형수와는 인간적인 교류가 큰 비중을 차지하게 되어 될수록 따뜻한 마음으로 일상적인 얘기부터 시작하게 된다. 그러면 대부분의 수정수들은 그의 마음을 열게 되고 자신이 걸어온 길이라든가 어떻게 해서 범죄하게 되었는가를 아무런 꾸밈도 없이 털어놓는다.
이렇게 첫 대면 이래로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에는 어김없이 서대문 구치소에 가서 신자·예비신자 단체 교리와 미사, 고백성사 등의 준비를 해주고 수정수들과의 접견으로 하루를 보내곤 한다. 그러나 여기도 제한된 시간이 있고 또 특수 지역이라 여러 가지로 제약을 받는다. 그래도 교무과에 계신 분들의 각별한 호의로 많은 편의가 제공되고, 담당 교도관들의 아낌없는 협조로 큰 성과를 올리고 있다.
대개 1년에 두 번 영세식이 있게 되는데 첫해는 경험이 없어서 그냥 맹숭하게 신부님만 모시고 영세 예식을 치루었으나 이후부터는 영세식 때 수련원 수녀들을 동원해서 미사 성가를 부르고 소박한 예식이나마 더 기쁘게 이날을 맞이하게끔 마음을 쓰고 있다.
실상 1주에 이틀이기는 하나, 처음엔 서대문과 영등포 구치소 두 곳으로 다니며 교리를 가르친다는 게 너무나 고달프고 여러 번 앓기도 해서 영등포는 아쉬운 마음을 남긴 채 이제는 서대문 구치소에서 사형수 면접만 주로 하고 있다. 나른한 몸으로 집으로 돌아오면서도 여간 흐뭇한 게 아니다. (계속)
◇일선 전교사들의 투고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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