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이 휘날리는 11월은 위령성월이다. 여름에 푸르렀던 나뭇잎이 땅에 떨어지듯이 사람도 한 번은 죽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죽음을 묵상하기에 가장 알맞은 계절에 교회는 위령성월을 지내도록 마련하고 이미 죽은 형제자매들을 기억하고 기도와 희생으로 그들을 도와주도록 권장하고 있다. 철학자 플라톤은「파이돈」에서『철학은 죽음에 대한 준비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철학은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 것일까? 철학은 죽음의 연습이다.
우리는 언제나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사생관(死生觀)의 확립은 인간이 바로 살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정신적 무기이다. 인생을 허망하게 살지 않기 위해서 죽음에 관한 명상이 필요하다. 고난의 폭풍 속에 떳떳이 서고, 불의의 파도 속에 떠내려가지 않으려면 죽음에 대한 각오가 필요하다. 모든 비겁 온갖 변절 갖은 불충실 일체의 허위가 죽음에 대한 마음의 자세가 서지 못한 데서 유래한다. 인생의 불안은 어디서 오는가? 생(生)의 공포에서 온다. 공포는 어디서 오는가? 사생관이 서지 못한 데서 온다. 인생을 정말 행복하게 살려면 죽음에 대한 각오를 가져야 한다. 나의 삶을 반석 같은 기초에 세우고 고뇌 앞에 용감하며 시련 앞에 굴하지 않으려면 투철한 사생관의 확립이 요구된다.
철학은 죽는 준비를 하는 학문이다. 다채로운 학문 체재 중에는 죽음의 연습을 하는 철학 같은 학문도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생을 생답게 살기 위해서 죽음의 연습이 필요하다. 인생을 바로 살기 위하여 죽음을 준비해야 하는 것이다.
죽음의 신은 공평하다. 부귀빈천을 막론하고 예외 없이 우리를 찾아온다. 시작이 있으면 마지막이 있듯이 생(生)이 있으면 반드시 사(死)가 있다. 물론 사람에 따라서 목숨의 수요장단(壽夭長短)이 있다. 백세의 긴 수명을 누리는 이도 있고 어린 목숨으로 요절하는 이도 있다. 왜 사람에 따라서 수명의 장단이 있을까? 그것은 알 수 없는 인생의 부조리다. 인간의 지혜로는 합리적인 이유와 해석을 부여할 수 없다. 그야말로 운명이다. 중국인은 인간의 수명은 사생유명(死生有命)이라 하였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은 천명(天命)에 달렸다 했고 희랍인들은 인간의 수명은 운명의 세 여신「모이라」가 인간의 수명을 주관한다 하였다.「클로토」「라케시스」「아트로포스」세 여신의 주관에 있다 하였다. 운명은 곧 부조리요 수수께끼이다. 사람의 생명에 수요장단이 있다는 점에서는 불평등하지만 죽음의 신은 모든 인간에게 예외 없이 찾아온다는 점에서 지극히 공평한 신이다.
죽음은 바람처럼 홀연히 우리를 찾아온다. 아무 예고도 없이 우리의 생명의 문을 검은 손으로 두드린다. 청천벽력 같이 우리를 엄습해온다. 여기에 죽음의 무서움이 있다.
내일을 모르고 어둠 속에 살아가는 것이 사람이다. 죽음은 언제든지 무시로 우리를 찾아오기 때문에 우리는 죽음에 대한 준비와 각오가 필요하다. 언제 오더라도 태연자약하게 맞이할 마음의 태세가 있어야 한다. 죽음은 확실히 오되 언제 올지 모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게는 좀처럼 아니 올 것 같은 생각을 갖는다. 세상에는 영원히 살 것처럼 살아가는 사람이 부지기수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이로움에는 빠르고 삶에 골몰하면서도 죽음에 대한 마음의 준비는 까많게 잊어버리고 살아간다.
마치 죽음은 자기와 관계가 없는 것처럼….
대부분의 사람이 인생의 여러 가지 준비에 주야로 골몰하면서도 자기의 죽음에 대해서만은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살아간다. 잘 산 자가 잘 죽을 수 있듯이 죽을 준비가 되어 있는 자만이 인생을 잘 살 수 있다. 어떻게 사느냐가 중요한 문제인 거와 마찬가지로 어떻게 죽느냐가 또한 인생의 중요한 문제다.
『우리는 낳자마자 죽기 시작하고 있다. 종말은 시작과 결부되어 있다.』 이 말은 에누리 없는 진리다.
산다고 하는 것은 곧 죽어가고 있는 것이다. 하루하루 우리는 죽음에 접근한다. 사(死)는 생(生)의 종장이요, 생의「오메가」는 죽음이다. 준비가 있으면 걱정이 없다. 죽음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죽음이 나의 문을 두드릴 때 내 생명이 충만한 그릇을 손을 벌리는 죽음에게 내어놓을 수 있어야겠다.
죽음의 검은 손이 우리의 생명의 문을 냉혹히 두드릴 때, 어지러운 꼴을 하지 않고 범연하게 나설 만한 마음의 자세를 평소부터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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