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의 사고는 바로 김 교수가 기중기에 깔린 사진이었다.
한강 다리 위에서 그 많은 차들과 사람들이 뽕빵대거나 웅성거렸던 일이 문득 형화에게 예사롭지가 않게 되살아났다.
그 일 때문에 회사를 지각해 김 부장에게 수모를 당한 일, 한강 다리에서 이경민을 만나 오늘 하루를 휘몰아친 일 또 최 상무와 함께 차를 타고 회사까지 닿았던 일들 모두가 아침의 사고가 아니었던들 전혀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 분명하다.
김 부장은 형화에게 사표를 쓸 것까지 권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 사고가 김 교수의 죽음이었다니 형화는 방금 라디오에서 흘러나온 소식에 큰 충격을 받은 것이다.
김 교수는 형화에게 막연하나마 가장 가깝게 느껴지는 스승이었다.
그는 언제나 깨어있는 것이 곧 살아있는 것이라고 역설했었다.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는 것은 다른 어떤 것을 위해서도 아니고 태어났다는 그 원초적인 숙명에 충실한 데 있다고 항상 말했었다.
이러한 말들이 옳다고 생각하긴 했으나 그것은 형화에게 옳다기보다는 옳아야 하는 당위로서 어떤 먼 곳의 메아리처럼 들려왔을 뿐이다.
형화가 김 교수를 좋아했던 이유는 확실히 이해할 수는 없으나 어딘지 그럴 듯한 주장 그리고 그것보다도 더 강렬하게 김 교수의 몸가짐이나 태도에서 오는 분위기가 완전히 그를 흠모하다시피 이끈 것이다.
그러니 형화의 김 교수에 대한 존경은 막연하고 불확실한 것일 수밖에 없는 노릇이었다.
김 교수는 항상 검은 베레모를 쓰고 다녔으며 옷차림은 검소하다기보다는 허술하다는 편이 더 어울렸다.
그리고 그는 또 기계적인 것을 경멸했다. 될 수 있으면 모든 것을 자기 손으로 해결하려 했고 될 수 있으면 사람 냄새를 풍기려고 노력했다.
심지어는 자동차까지도 싫어했다.
그래서 그는 흑석동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한강 다리를 건너 학교까지 달렸다.
시간이 많이 걸린다고 좀 불편해하긴 했으나 어차피 사람 살아가는 것이 시간 잡아먹는 일이 아니냐고 말하면서 웃어 넘기곤 했다.
-검은 베레모 같은 모자를 쓴…조금은 특색이 있어서 얼핏 주의 깊게 보았었거든…그런 남자가 자전거를 타고 가더니….
형화는 아침 최 상무의 말을 기억하지 않을 수 없었다.
-워낙 복잡한 때여서 늘어선 차들 사이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채 그 사이를 조심스럽게 달리고 있었을 꺼야.
형화는 왜 최 상무에게서 김 교수에 대한 사건이 설명되어지는지 까닭을 알 수 없었다. 아무런 상관없는 사람이 그의 마지막 모습을 전달해 주었던 것이다.
-내가 신문을 읽고 있다가 문득 그 사람 걱정이 돼서 다시 쳐다보았더니 자전거가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 기중기 앞으로 사라지는 것이었어.… 그런데 바로 뒤에 끼익 하는 소리와 쿵 하며 무언가 나가떨어지는 소리가 나더니 그만 사고가 났지 무어야.
형화는 순간 자기가 기중기에 깔리기라도 한 듯 소름이 돋았다.
-사람은 그래서 많이 다쳤나요?
-다쳐? 박살이 났더군.
박살이 났더군, 이 말을 기억한 것이 후회스러웠다.
그의 베레모도 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리고 그의 얼굴도 박살이 났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입은?
입이 박살이 나면 이제 어떻게 그의 말을 듣나. 깨어있는 것이 곧 살아있는 것이라던 그의 말을 이제 어딜 가서 듣나.
형화는 비로소 슬픔을 느꼈다.
그리고는 급히 전화통을 찾았다.
사무실은 그 사이에 거의 비어져 있었다.
-여보세요.
지치고 갈라지는 노부인의 목소리가 수화기에서 흘러나왔다.
-사모님 저 조형화예요.
-응 조양이야.
그러더니 그녀는 울음을 참지 못한 채 흑흑거리는 것이었다.
-사모님 어찌 된 일이에요.
이미 얼마큼을 울었는지 몹시 지친 울음소리가 계속되었다.
-사모님 지금 찾아가 뵙겠어요.
-쓸데없는 노릇이니 그만 둬요.
설합에서 유서를 발견했는데 화장을 해 달라더군. 오늘 밤으로 화장해 버릴 작정이야 쿠루룩 쿨럭.
그녀는 울음 소리를 내다 못해 이상한 신음 소리까지를 곁들였다.
형화는 더 이상 말을 계속할 수도 없고 자신의 능력으로는 무어라 위로할 말도 없고 해서 그만 수화기를 조용히 내려놓고 말았다.
거리는 어느새 어둠이 깃들기 시작했다.
형화는 슬픔 고통 속에서 거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죽음이 결코 그렇게 먼 이야기가 아닌 것을 안 까닭이다.
그리고 살아있는 몸이 딱딱한 물체가 되어 간다는 사실이 금방이라도 형화를 한 가치의 딱딱한 나무토막으로 변하게 할 것 같아 두려웠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메우고 있었다. 그리고 차들은 여전히 헤드라이트를 켜고 밤거리를 질주했다.
아앗, 형화는 별안간 이경민을 기억했다.
한강 다리에서 피 묻은 사람을 실어 날랐다는 이경민이 생각났다.
-나 같은 놈팽이 녀석이 할 짓이 있어.
그런 짓꺼리나 해보는 거지, 그 녀석을 실어 날랐지.
-그래서 그 사람은 어찌 되었어요.
-어찌 되긴, 시체 안치실로 직행했지, 오징어야, 오징어, 이히힛.
그렇다. 경민은 더 잘 알고 있을 것이다. 경민에게 전화를 걸자.
형화는 공중전화통을 찾아 밤거리를 헤매기 시작했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