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1년
3월 18일 플랑시 공사에게 대구의 로베르 신부를 추방한 사실과 그 상황에 대한 보고서를 보내고 배상을 요청했다.
3월 16일 로베르 신부를 제물포로 보내서 르비엘 신부를 도와 여러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고 특히 교구의 토지문서를 재검토케 하다.
3월 21일 독판이 나를 찾아와서 이미 전라감사로 임명된 민정식 경상도이 감사의 해임을 요구하지 말도록 프랑스 공사에게 중재해 줄 것을 요청하다.(주①)
4월 7일 신부들이 피정을 위해 도착했다. 신학교 신부들과 지방 신부들의 원의에 따라 용산에 신학교를 건축하기로 결정하다. 이미 정지작업이 시작되었다.
5월 6일 예수 성심께 봉헌된 용산신학교의 정초식. 서울의 모든 신부들이 이 예식에 참석하다.
5월 17일 성신강림첨례. 종현(현(現)명동대성당)에서 견진성사 집전
6월 11일 가마를 타고 갓등이 (현(現)경기도 화성군 봉담면 왕림리)로 떠나다. 우리는 노들과 시흥을 통과하여 저녁 때 산 밑 마을에 이르렀다. 두세 신부가 말을 타고 우리를 동행했다.
6월 12일 질식할 정도인 (옹색한)산 밑 공소에서 미사와 견진성사. 갓등이로 떠남. 성대한 환영을 받다.
6월 13일 신부들이 견진자를 준비시키는 동안 나는 동의가 없어 무효라고 주장하는 방안당과 고씨 딸과의 결혼 건을 조사했다.
6월 15일 갓등이를 떠나 윗뜸이(현(現)안양시 안양4동 근처 교우촌)로 향하다. 저녁 때 잠시 수리산 마을을 방문하다. 횃불을 들고 옹기촌으로 돌아오다.
6월 16일 견진성사를 주고 서울로 떠나다. 여기까지 우리를 동반한 알릭스 신부는 서울까지 가기를 원하다. 우리가 용산신학교 건축을 위해 고용했던 중국인신자 왕 베드로가 사망하다. 콜랭 드 플랑시씨가 이임인사와 그의 후임 로쉐씨를 소개하기위해 우리를 찾아왔다.
7월 문밖 교유들을 위해 남대문과 서대문 밖 약현에 위치한 대지를 매입하다. 부역을 자원한 교우들이 두세 신부 지도하에 정지작업을 하고 있다.
8월 5일 다시 긴 장마시기. 올해도 예외는 아니다. 문 밖의 새준본당의 대지 이웃에 사는 사람이 궁해서 그의 집 일부를 허물었다. 우리는 돌을 사고기와도 대부분 매입했다. 매매계약은 철도를 맡은 청부인과 같이했다. 그런데 소유주가 누구인가? 이 집은 아주 오래되어서 (4백년 이상 된 집이라고 한다)서씨 가족의 공동 소유인 것 같고 사실 그는 그 일부를 주장하게 되었다. 서 판서는 우리를 거스려 아무것도 할 수 없자 청 부인을 체포하려했다. 우리는 그를 석방시켰으나 다시 잡혔고 로쉐씨의 협조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별로 성공하지 못했다. 그는 구입한 건축자재 값의 상당부분을 서 판서에게 지불함으로써 점차 자유를 획득하고 있다.
※①로베르 신부에게 자세한 보고를 들은 뮤뗄 주교를 프랑스공사를 통해 당시 경상감사이런 민정식의 파직 및 6개조항의 수습방안을 제시했다. 그 중 민정식의 파직 요구만을 제외하고는 교회 측에서 제시한 내용에 약간의 수정만하여 그대로 시행됐다. 그 결과 대구근교 죽전(竹田)에 거쳐하던 로베르 신부는 공공연하게 대구시내에 정확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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