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르디인 신부가 추기경으로 서품되던 날 교황 바오로께서는 그에게『당신은 언제까지나 까르디인입니다. 결코 변해서는 아니됩니다. 이제 당신은 보다 더한 권위를 가지게 되었습니다만 동일한 책임을 지니고 있는 것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는 결코 변한 것이 없었다. 언제나 소박한 검은수단을 걸치고 있었으며 그의 은발은 이제 승선한 선원의 짧은머리 그것이었다. 그는「풀레미쉬」농부의 건장한 체격의 소유자이었으며 그의 얼굴은 강직한 성품을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었다.
『나의 지나간 생애를 돌이켜 볼 때 나는 낙관적인 견해를 가지게됩니다. 나는 이제 84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점점 더 젊어지고 있습니다』라고 까르디인 추기경은 그의 서품 60주년 축하식에서 술회하였다.
『나는 오히려 내가 서품받던 날보다 더욱 젊어짐을 느낍니다. 비결요? 단지 나는 내가 해야 될 일이 있다는 신념때문입니다』라고 말을 이었다.
까르디인에게 있어서 사도직의 비결이란 모든 인간 형제의 유익을 추구하는데 있었다. 『과거에 우리는 단지 그가 가톨릭 신자였기 때문에 어떤 이를 도와주는 경향이 있었습니다만 이제 우리는 그가 무신론자이건 또 그가 무슨 종교였던 무슨주의를 신봉하고 있든 관계치 않습니다. 우리는 단지 그가 도움을 필요로 하기 때문에 돕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변화시킵니다』
까르디인은 결코 구령(救靈)에 대하여 언급하지 않았다. 『나는 결코 영혼을 본 일이 없습니다. 나는 영혼에 어떤 영향도 줄 수가 없습니다』라고 공공연히 말하였다.
『나는 인간의 눈과 귀를 통해 어떤 인간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뿐입니다. 나는 영혼을 접촉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소년, 어떤 남자, 어떤 여자를 만날뿐입니다. 나는 그들에게 그들 자신의 존엄성을 보여주고자 할 따름입니다. 그들이 이 존엄성을 깨닫도록 돕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들에게 그들 자신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부여해주고자 할뿐입니다. 내가 JOC운동을 시작했고 또 JOC운동에 몸담고 있었던 까닭도 바로 이때문이었습니다』오늘날 이 운동은 1백30여개국에 존재하는 국제운동이 되었다. 이 운동의 국제조직은 전 세계에 수백만 회원과 함께 청년 노동자의교육 및 양성운동으로서 유네스코 국제노동기구(ILO) 경제사회 이사회에서 자문의 자격을 보유하고 있는것이다.
이 운동은 이미 가톨릭 노동자만의 운동이 아닌 것이다. 초기에 특수환경 가톨릭 운동의 이념을 이유로 하여 많은 의심과 공격을 면하지 못하였으나 그의 신앙이요 철학이요 그의 체험이었던 이 운동은 서민노동자들 안에서 형성된 무수한 노동청년들의 사고와 행동에 의한 대중적 실체인 것이다. 참으로 모든이가 참여하는 운동인것이다. 이 운동은 새로운 형식의 복음전파 즉「노동자들의 노동자들에 의한」형식의 활동하는 사도직을 시작한것이다.
무엇보다도 비참하고 반노예화 된 노동자들에게 인간의 존엄성과 구원을 부여해준 까르디인 추기경의 업적은 영원히 추모될 것이다. 그는 노동자의 아버지요 참으로 평신도의 추기경이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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