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욕이야기가 나왔으니 교도소 사정을 조금 이야기하고 지나가자. 교도소 안에 대략 7~8명이 함께 들어있는 방을 그곳에서도 방이라 부른다. 각 방마다 화장실은 달려있다. 그런데 목욕탕은 30여방 사람들의 공동사용으로 되어있다. 그러면 아침세면 시간을 한시간으로 잡아도 2평정도의 세면실을 20명씩이 3분간에 세면을 끝내야 한다는 계산이 된다. 사실 들은 얘기로도 3분 정도라고 한다. 우리 같으면 치약짜다가 그만둘 시간이지만 그러나 이시간에도 머리를 감는 친구들이 있다고 한다. 우선 순서를 기다리는 시간에 식수로 들어온 물을 남겨 머리에 바르고 비누칠을 해서 물에 감기만 하면 되도록 준비작업을 해놓는다.
또 치솔질도 방안에서 다 해놓고 기다리다 번개같이 머리까지 감는다고 한다. 그러나 보니파시오는 성체를 모시기 위해 반드시 목욕까지 하고 반듯하게 앉아서 기구하며 몇시간이고 기다리다 성체를 영하곤 했다.
한번은 성체를 영해주고 몇마디 말을 나누고 다른 방으로 가려는데 무언가 할 얘기가 있는듯 하여 무엇이냐고 물었다.
그는 꽤 망설였던지 꼬기꼬기 접은 5백원권 10장을 주면서 고향 아버님이 편찮으신데 좀 보내 달라는 것이었다.
교도소 안에서 현찰은 절대 사용할 수도 가지고 있을 수도 없다. 순간적으로 망설여 졌지만 이만한 것은 다 알만한 사람이고 여러모로 생각해보고서 나에게 부탁하는 것이라고 느껴져 쾌히 승낙했다.
죄송하다는 말과 괜찮다는 말을 주고 받으며 그곳을 떠날때 범칙(犯則)을 하고 있다는 생각보다는 왠지 가슴속에 뿌듯함을 느끼면서 꼭 해야만 할 일을 다하고 있는 기분이 들었다.
후에 본인은 모르게 소내의 절차를 밟아 문산에 계신 그의 아버님께 보내드렸다.
한번은 교도소 사정으로 감방으로 돌아다닐 수가 없어 교도소안에 교회실(재소자들의 신앙문제로 상담 또는 한 두 사람을 상대로 종교의식을 할 수 있는 조그마한 방)로 불러 만난일이 있었다. 영성체가 끝나고 간단한 기구를 한 후 그는 갑자기 이런 말을 꺼냈다.
『신부님, 저는 요며칠처럼 괴로워 본 적이 없고 또 제 자신 이렇게 저주스러워 본 적이 없습니다』
『왜 갑자기 그런말을 하오?』나는 놀라며 이렇게 물었다.
『실은 제 동생이 이곳으로 들어왔습니다. 저 때문이죠. 제가 동생을 타일러 봤죠. 허지만 제게 타이를 힘이 어디 있습니까? 제가 이렇게 된 것을 항상 괴로워 해왔죠. 하지만 요사이처럼 정말 뼈아프게 괴로워 한 적은 없습니다』
나는 얼마전에 그 동생이라는 사람을 본 일이 있다. 말쑥하게 차린 신사 한 사람이 찾아와 자기소개를 하며 김 보니파시오 동생이라고 한다. 자신은 모 학원 영어강사라기에 반갑게 맞으며 형에 대한 얘기로 한참 재미있게 시간을 보낸후 헤어졌다. 그런데 며칠후였다. 갑자기 찾아와 급한일로 그리 많지 않은 돈을 빌려 달라기에 빌려준 일이 있었다. 그런후 며칠이 지나도 다시 찾아오지 않기에 기다리다 그만 그 일을 잊어버리고 있었다. 지금 하고있는 얘기를 들으며 생각나는 것이 한가지 더 있었다. 동생이라는 분이 첫번 방문한 후 보니파시오를 만나 동생의 방문에 대해 소식 전하니까, 그는 대뜸『그 녀석이 신부님께 왔었습니까?』하며 되묻던 그의 모습이었다. 그런 후로 한달이 될까 말까 보니파시오의 최후의 날이 왔다. 그때 그의 동생은 바로 그곳에서 재판을 기다리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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