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년 8월 어느날, 오랜만에 테니스를 하려고 신학교에 갔었다. 막 첫게임을 시작하려는데 급한 전화라며 받으란다. 『여기 서대문 구치소인데요. 신부님 급한 일이 생겼습니다. 곧 좀 와주십시오』
항상 이런 내용의 전화면 사형집행이 있는날이다. 서둘러 사형집행을 위해 준비를 해가지고 교도소에 도착했다. 오늘 모두 네 사람의 집행이 있다고 한다. 항상 집행때면 급하게 불러대지만 검사의 도착이 늦어 기다리기가 일쑤다. 이날도 한시간가량 기다리다 사형 집행장으로 나갔다. 사형 집행은 교도관들도 꺼리고 서로 안하려고 한다. 그래서 집행은 언제나 아침에 알려주고 보통은 윤번제로 한다. 왜냐하면 미리 알게 되면 결근이나 혹은 다른 핑계로 인한 혼란을 막기위해서다.
집행은 5명의 교도관이 맡아하지만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서 20여 명까지도 응원을 나선다. 집행이 있는 날은 사형장까지의 길목과 요소요소의 외곽까지 교도관이 배치되며 기절수들은 그날의 분위기로 집행이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게된다. 인원배치가 끝나면 사형수를 데리러 보안과 직원들이 간다.
보통은『면회왔다』든가『의무실 가자』며 끌어내지만 오히려 사형수 쪽에서 그러지말고 인사나하게 해달라는 것이 보통이다. 사형수들은 자신의 집행이 다가오면 가지고 있던 책 옷 담요 등을 동료 죄수들에게 나누어준다. 어떤 사형수는 간밤 꿈이 이상했다고 하며 주위 사형수들이나 교도관들에게 미리 인사를 해두기도 한다.
그런데 사형수들의 직감이 종종 적중하여 사람의 직감력에 무서움을 느끼게한다. 하루는 어떤 사형수가 자신은 3월을 살지 못한다고 입버릇처럼 말하기에 그럴리가 있느냐고 (때가 2월말경이었으므로)가볍게 일축한 일이 있는데 공교롭게도 2월 마지막날 28일에 처형당한 일이 있었다.
또 가족들도 그런 경우가 있었다. 지난 성탄때였는데 그때도 사형집행이 있어 교도소에 갔었다. 어느 신자 사형수의 아버지 되는 분을 만났는데 자식의 원이 아버지의 성세받는 것을 보는 것이라 어제 성세를 받고 자식을 보러왔노라고 하기에 고맙다고 면회를 주선하고 오후집행때 보니 바로 그 아들 사형수가 처형되는 것을 보았던 일도 있었다.
나는 교무과에 도착하여 오늘 보니파시오도 처형된다는 것을 알았다.
잠시후 보니파시오는 교도관들 틈으로 흰바지 저고리에 수갑을 차고 포승에 묶여 창백하게 걸어나왔다. 나는 창백이라는 말을 많이 써왔지만 집행때와 같은 창백은 본 일이 없다. 얼마나 창백한가 하면 입술의 색깔이 얼굴색과 같을만큼 핏기가 하나도 없는 그야말로 글자 그대로의 창백이다.
그래도 보니파시오는 그 얼굴에서 애써 웃음을 띠우며『신부님, 걱정하지 마십시요. 잘 준비되어 있습니다』고 말하면서 무겁게 집행장으로 들어갔다.
인정심문이 끝나고 검사는 오늘 사형집행을 하게 되었다고 말하며 유언을 묻는다.
보니파시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저는 사람을 죽였으니 오늘받는 벌은 달게 받겠습니다. 다만 그간 아버님께 자식된 도리를 드리지 못했던것이 한이되고 후회가 될뿐입니다.
아버님 건강하시라고 전해주시고 동생은 이제 제 대신 모든 자식된 도리를 해 줄 것을 부탁드린다고 전해주십시요』아주 담담하게 또 조금도 억울한 것이 없는것처럼 죽을때 오히려 모든 이를 놀라게 했다. 일반적으로 형벌이 무거웠다고들 한마디쯤은 변명을 하거나 어떤이는 검사나 모인 교도관들에게 욕을하고 거칠게 죽는게 일반적이지만 이럴때 모든 이는 역시 신앙의 힘이 아니고는 자신들이 교도의 임무를 할수 없다는 것을 자인한다. 쓸쓸히 이곳을 떠나는 내게 교무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실컷 잘못을 저지를때는 나라돈으로 먹여주다가 진심으로 뉘우치고 새 사람이 되었을 때 사형을 집행해야 된다니 좀 높은 분들이 와서 보아야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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