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1. 모든 시대 인간들이 그들의 인생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데 이때 두 가지 의문이 마치 하느님의 목소리인양 강력하게 떠오릅니다.『우리는 어디서 오는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두 번째 질문이 최종 목적, 결정적 목표와 관계된다면 첫째 질문은 세계와 인간의 기원에 관계되며 둘째 것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인 질문입니다. 이런 이유 때문에 기원의 문제에 쏟는 비상한 관심에 감명을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것은 단순히 언제, 어떻게 우주가 정말 시작됐고 인간이 출현했는가를 알아내는 문제뿐 아니라 그 보다 오히려 그러한 기원의 의미, 그것이 우연에 의해 맹목적 목적에 의해 주재되는지, 아니면 하느님이라 불리는 지적이고 선한 초월적「존재」에 의해 주재되는 지를 알아내는 문제이기도 합니다.
사실 악이 세상 속에 존재하고 악을 체험하는 사람들은 악의 기원이 무엇이며 누가 악에 대해 책임이 있는지 그리고 악에서 해방될 희망이 조금이라도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시편저자는 창조사건 앞에서 감탄에 잠겨 이렇게 묻습니다.『인간이 무엇이기에 아니 잊으시나이까?』(8. 5)
인간은 세계의 지배자
2. 창조에 대한 질문은 단순한 사람이나 박식한 사람이나 모든 사람의 마음 속에 떠오릅니다. 과학과 성서의 관계가 항상 조화로웠던 것은 아니지만 근대과학의 뿌리는 창조에 대한ㆍ성서진리와 밀접히 연관됩니다. 사실 많은 과학자들이 크리스찬창조관을 존중하는 태도를 취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생물, 특히 인간의 진화에 관한 문제, 생성중의 우주 자체의 내재적 목적에 관한 문제와 같은, 결코 정당하게 제기합니다.
세계의 실재와 인간의 실재에 접근하는 여러 방법에 대해서 풍성한 대화의 가능성을 허락하는 분야가 이것입니다. 세계의 실재와 인간의 실재는 다른 것으로 인정되지만 가장 깊은 차원에서는 인간 편으로 수렴됩니다. 인간은 유일하며-성서 첫 폐지에서 말하듯이-「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따라서 지성적이고 지혜로운 세계의지배자로 창조되었습니다(창세기1. 27~28).
창조ㆍ반역ㆍ약속
3. 지금은 사라져버린 가장 오래된 종교에서부터 오늘날 현존하는 종교에 이르기까지 모든 종교들이 인간 조건의 깊은 신비에 대한 대답을 찾고 있다는 것을 우리 크리스찬들은 놀랍게 인정(마땅한 비판은 해야 하지만)합니다.『사람이란 무엇인가? 인생의 의의와 목적은 무엇인가? 선이 무엇이고 죄는 무엇인가? 고통의 원인과 목적은 무엇인가? …우리자신의 기원은 무엇이며 우리 여정의 종착역은 무엇인가?』(비 그리스도교에 관한선언1). 2차 바티칸 공의회의 비 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을 따라 우리는『가톨릭교회는 이들 종교에서 발견되는 옳고 성스러운 것은 아무것도 배척하지 않는다.』는 것을 재확인합니다.
왜냐하면『그들이 모든 사람을 비추는 참 진리를 반영하는 일도 드물지 않기』때문입니다(상동2). 다른 한편 우주의 기원, 역사 특히 인간의 기원에 관한 성서적ㆍ크리스찬적 관점-그것은 20세기가 넘도록 모든 백성들의 영적ㆍ윤리적ㆍ문화적 양성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 은 부정할 수 없으리만큼 너무나 두드러지고 영감을 불어넣어주고 독창적이어서 종합적으로나마 그것을 명백하게 말해주는 것은 사목자나 교리교사가 소홀히 할 수 없는 의무입니다.
계시는 창조신비 드러내
4. 진실로 그리스도 계시는 창조의 신비에 관한 비상한 풍요로움을 드러냅니다. 이것이 정말 하느님 사랑의 감동스러운 표징이며 절대로 무관심의 표징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인간의 기원과 미래의 운명과 같은 인간 실존의 해결 곤란한 문제들에 대해서 다양한 문화적 표현들에 맞춰 지속적이고 일관성 있는 설명을 마련해 주십니다.
그래서 성서는 무조건 제 1 창조기사와 제 2 창조기사로 시작하는데 거기에는 사물들, 생명, 인간의 기원, 하느님에게서 오는 모든 것의 기원(창세기1~2)이 이번에는 악마의 유혹을 받은 인간의 기원과 죄와 악의 기원에 대한 슬픈장(章)과 짜여져 있습니다(창세기3). 그러나 하느님은 자기의 피조물들을 버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은 희망의 불꽃이 악에서 해방된 새 창조의 미래를 향해 켜졌습니다(소위 첫 복음 창세기3,15:9,13 참고). 하느님의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활동, 인간의 반역, 이미 처음부터 하신 하느님의 새 세상에 대한 약속이라는 이세개의 실오라기들은 창조에 대한 크리스찬 신앙의 전체적 내용을 규정함으로써 구세사라는 천을 짜는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인 인간
5. 앞으로 창조에 대한 교리에서 본질적 원천으로서의 성서에 마땅한 할애를 하겠지만 먼저 공의회와 평상 교도권의 문헌들로써 그리고 수많은 신학자들과 크리스찬 사상가들의 흥미롭고 예리한 생각들 속에서 위대한 교회의 전통을 되새기는 것은 나의 과제입니다.
여러 단계를 포괄하는 여정으로서 창조에 대한 교리는 특히 우리가 사도신경 서두에『나는 믿나이다. 천지의 창조주하느님을』하고 고백할 때 이 놀라운 사실을 다룰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창조된 실재를 무에서 불러내심에 대해 생각하고 동시에 하느님의 전능과 그 전능의 힘으로 존재하는 우연적 세계의 놀라움을 탄복할 것입니다. 우리는 창조가 복된 성삼의 사랑의 작품이며 성삼의 영광의 계시라는 것을 인식할 것입니다. 이것은 창조된 사물들의 정당한 자율성을 부인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긍정하는 것입니다.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인간에게만 깊은 관심이 쏠립니다.「하느님의 모상」으로서의 그의 실재, 영적이고 육적인 존재의 실재, 인식과 자유의 주체인 인간에게 깊은 관심이 유보됩니다. 다른 주제들은 엄청난 창조사건, 특히 하느님의 세계지배, 그분의 전지(全知)와 섭리, 그리고 하느님의 충실한 사랑에 비춰볼 때 악과 고통의 수수께끼가 어떻게 만족스런 해결을 찾게 되는지를 탐구하는데 우리를 도와줄 것입니다.
6. 하느님께서 욥에게 당신의 신적 창조능력에 대해 말씀하신(욥기38~41)후 욥이 주님께 대답했습니다.『알았습니다. 당신께서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계획하신 일은 무엇이든지 이루십니다…. 당신께서 어떤 분이시라는 것을 소문으로 겨우 들었는데, 이제 저는 이 눈으로 당신을 뵈었습니다』(욥기42, 2~5).
우리의 창조에 대한 고찰이 우리로 하여금 하느님께서 세계와 인간을 창조하는 행위에서 당신의 강력한 사랑에 대한 최초의 보편적 증거를 우리구원의 역사에 대한 최초의 예언을 마련하셨다는 것을 발견하도록 이끌어 주기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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