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해 4월 나는 성모님의 특별하신 보살핌이 없었더라면 길거리에 내쫓긴 실업자가 될 뻔했었다.
그때 몇 주 일전 나는 직장으로부터 해고통고를 받았었다.
이유는 직장 사람들이 직장부근에 사는 나보다 젊고 임금이 싼 일꾼들을 발견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때 근 1년 반 동안 매일같이 약 50km나 떨어진 직장을 열심히 다녔고 2시간 30분씩 주는 점심시간에 조차 휴식소에서 쉬지 않고 일을 했었다.
다행히 몸도 건강해 다른 문제점이 없었음에도 아이들이 한창 성장해가고 있어 생활비가 점점 많이 드는 중요한 때에 실업자가 되게 됐던 것이다.
더욱이 해고통고는 얼마 전 프랑크 푸르트 접경지역에서 돌아오는 길에 내 차가 사고를 당해 50만원의 피해를 입고 나서 부득이 크레디트카드로 새 차를 월부구입하고 나서 내게 닥쳤던 것이다.
우리집 식구들은 차 값도 지불해야하고 생활비가 늘어나는 시기에 직장을 잃게돼 절망적인 분위기가 됐다.
나는 신문광고에 직장을 구하는 광고를 써내고 구인광고를 찾기 시작했으며 그 무렵부터 온 식구들도 다 열심히 기도를 했다.
그러나 아직 성모님은 우리식구들의 기도에 대해 아무런 응답을 주시지 않았다.
자꾸 날짜는 지나갔다. 나는 아는 친척집도 찾아가보고 친구 집에도 둘러봤으며 우리가족 걱정을 많이 해주는 수녀님에게도 찾아가곤 했다.
때로는 소개소사무실에도 일자리를 부탁해봤지만 아무도 사무실에 같이 들어와서 일 하자고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제 더 이상 시간을 보낼 수도 없어 어느 금요일 밤 나는 X라는 사람에게 찾아가 급료가 낮은 일자리지만, 토요일 오후부터 일하겠다고 약속신청서를 써주고 돌아와야 했다.
약속한 토요일아침 나는 직장으로 갔다.
공장은 우리 집에서 약 5km 떨어져 있었다.
나는 공장 주인이라는 Y씨가 제시하는 적은 급료액수에 대해서도「좋다」고 대답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었다.
그런데도 그 젊은 사장은 좀 더 생각해봐야겠다며 꼬리를 빼고는 저녁 늦게 전화로 최종적으로 결정해주겠다고 말했다.
나는 오후 5시 30분까지 초조하게 기다렸다. 그러나 전화는 오지 않았다.
나는 장남과 함께 우리가 늘 다니던 성당엘 갔다
거기서 부자가 함께 말 없이 묵주기도를 바쳤다.
밤늦게까지 기도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둘째아들이 저녁 8시 30분쯤 Y씨란 분이 전화를 해왔다고 말해줬다.
이제 모든 일이 제대로 돼가는구나. 이튿날 아침 11시 나는 Y씨의 사무실로 갔다.
Y씨는 서류 등을 내놓고 기재사항을 가르쳐주며 같이 일해보자고 격려해줬다.
나는 집으로 돌아와 제일 먼저 그 처럼 어렵게 안 풀려나가던 취직문제가 해결되게 해주신 성모님의 도움에 감사하고는 아는 친척집에도 전화를 해서 기쁜 소식을 알렸다.
-성모님은 우리가족에게는 「빵의 어머니」셨음을 보여주신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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