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날 아침일찍 가구점에서 통고가 왔다. 명구가 찾아온 것이다.
눈도 그치고 하늘엔 청명한 햇살조차 퍼지고 있었다. 『형, 주인님께서 공장에 빨리 나오래요』
나는 메시지를 듣는 기분이었다. 사실상 회장님 집이 나의 유일한 직장이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꺼림칙했다.
김군이 맘에 걸렸다.
『명구야, 김군 요즘 잘 나오더냐?
『저번에 하루 결근하고 계속 잘 나와요』
아마 그날이겠지 여겨졌다.
『김군에게서 아무얘기 없더냐?
『있었어요. 주인님께 박형이 몸을 다쳐서 며칠 쉬게 될거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주인이 뭐라던?』
『자식이 마술가마를 시원찮게 만들더니 벌을 받은게로군, 했어요』
『그 외에 딴말은 없든?』
이 물음엔 상관없이
『주인집 누나가 군청 일을 그만뒀어요』
나는 재빨리 물었다.
『왜?』
『시집을 가게 될거예요. 김형이 우리에게 얘기해줬어요』
아뿔사!
올 것이 온 것이다. 나는 영문 모르게 가슴이 뛰었다.
급히 작업복을 챙겨입고 눈장화를 신었다. 명구는 뭐가 즐거운지 눈뭉치를 만들어든다. 그것을 남의 지붕 너머로 던졌다.
나는 걸음을 재촉했다. 명구가 따라오고 있다.
젬마가 시집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 자꾸만 맘에 걸린다.
나는 언젠가 이런 생각을 했던적이 있었다. 만약 젬마와 결혼하게 되면 가구점을 얻게되리라는 생각. 나의 장래를 위해서도 얼마나 다행스러우랴 싶었다. 회장님 집의 가계는 나의 노동력으로써 꾸려나가면 되리라 싶었다. 어차피 회장님은 딸을 시집보내야 할꺼고 시집을 보내도 자기 집 가계를 고려해서 보낼 테니까.
그런데 나는 한번도 그런 얘길 못해봤다. 도무지 용기가 안났던 것이다.
명구가 갑자기 소리쳤다.
『형 저길 좀 봐요!』
나는 가리키는 쪽을 돌아봤다.
명구가 낄낄 웃는다.
눈 위에서 두 마리의 개가 엉덩이를 맞붙히고 있었다.
나는 그걸보자 퍼뜩 결혼이라는 대명사가 떠올랐다. 젬마가 시집을 가게된다는 사실도 떠올랐다. 그러자 나는 눈뭉치를 말아들었다. 젬마를 데려갈 신랑이 꼭 김군같이 연상된 순간 나는 몸집 큰 개를 겨누어 힘껏 던졌다.
개는 외마디를 질렀다.
달아나려고 껑충거리는 숫캐, 그러자 암캐도 같이 이끌렸다.
나는 묘한 현상을 깨달았다.
그렇다.
젬마를 빼앗겨서는 안되겠다.
나는 더욱 재빨리 걸었다.
명구가 뒤에서 허겁지겁 따라온다. 가구점이 눈앞에 가까워졌다.
나는 가구점에 다달으게되자 마술가마의 생각이 또 떠올랐다.
회장님이 책망을 하시지는 않을테지 아, 어쩜 나는 이다지도-
가구점에 들어서자 명구가 먼저 안으로 뛰어간다. 명구는 무슨 대견한 일을 해낸듯 소리질렀다.
『박형을 데려왔어요』
공장의 직공들이 모두 나왔다. 나와 인사를 나누기 위해서였다.
나는 겸연쩍어 졌다.
회장님이 나왔다. 나는 꾸벅 절을 했다.
『토마스, 몸을 다쳤다면서?』
회장님의 목소리가 의외로 부드러웠다. 마술가마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을것 같았다. 얘기한다 해도 변명밖에는 더 늘어놓을게 없는 나였다.
『네, 제가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김군은 일칸에서 나오지 않고있었다. 그는 잔뜩 조바심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그를 보기가 여간 민망스럽지 않을테니까
『어떻게 다쳤으면 보름동안이나 쉬는거냐. 그동안 일꺼리가 많이 밀렸었어』
나는 곧잘하는 말을 했다.
『한 이틀 바짝 후딱거리면 되겠지요』
직공들이 일칸으로 들어갔다. 일꺼리가 밀렸다는 주인의 말을 듣고는 그럴수밖에 없는것이다.
회장님은 직공들이 모두 들어가고 나자
『토마스, 오늘은 가벼운 일을 좀 해』하고는 딸을 불렀다.
『젬마야, 나 사제관에 신부님을 만나러 가니까 그렇게 알아둬』
그녀는 방에서
『알았어요』하고 대답한다.
회장님은 밖으로 성큼성큼 걸어나갔다. 잠시후 사제관 응접실에서 신부님과 회장님은 이런 얘길 나누었다.
『신부님 내 딸이 요즘 도무지 말을 안해요. 토마스를 호되게 꾸짖고 난 이후부터 아마 그러리라 생각됩니다. 부모로서 이런걸 예사로 보아 넘길수도 없고해서 신부님의 조력을 좀 바라겠어요』
『네? 젬마가 그래요? 그 애 군청일을 그만뒀다고 하더니 …』
『네? 그 군청에 산업계장이란 작자가 꼴보기 싫어서 못나가겠다고 한 며칠 투덜대더니 사표를 낸 모양입니다』
『그 산업계장이란 사람을 회장님 한 번 만나보셨어요?』
『네 그 자를 다방에 불러내어서 얘기를 좀했는데 나무랄만한 일은 못되었습니다. 인물도 그럴듯하게 생긴 노총각이었어요. 그 자의 얘기로는 내 딸과 결혼을 하고싶어서 그랬답니다』
『그래서 회장님은 뭐라고 하셨어요?』
『내 딸이 원하지 않는줄 알면서 왜 그렇게 귀찮게 굴었느냐고 좀 따졌지요. 그러니까 그 자는 자기집의 가문이며 재산이니 하고 거창하게 늘어놓으면서 제발 사위로 삼아달라고 애원을 하지 않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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