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년 7월 교도소를 맡고 처음 서대문 구치소로 찾아가 교무과 직원들과 인사를 나누고 사형수들을 찾아 둘러보았다.
대부분의 사형수들은 매우 반가워하면서 선임 장요셉 신부님이 군종으로 떠나신 후 약 두달가량의 공백기간 동안의 모든 얘기를 들려주었다.
그런데 한곳을 가던중 신자 교도관인 김 안드레아씨가 이번에는 아주 힘든 사형수 한사람이 있다고 귀띰을 하면서 데려갔다.
지금 기억으로 확실히는 모르겠고 다만 담당교도관이 아주 잘 보이는 방이었다. 도착하자 나는 문을 열어 달래서 방으로 들어갔다. 지금은 사형수들을 만나고 방에 들어가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지만 그때는 용기를 낸다는 마음을 가지고 들어가 앉으며 말을 걸었다.
『신자시라죠? 나는 장 신부님 후임으로 온 여 신부라고 합니다』『네, 방지거입니다. 저의 집안은 구교 집안이고요 저는 태중 교우입니다』
나는 좀 놀랬다. 대부분의 사형수는 교도소에 들어와 영세를 받고 신자가 되었는데 태중교우라니 더구나 이 신자가 문제의 사형수라니 걱정스러웠다.
방지거는 20여세 되어 보이는 아주 잘생긴 청년인데 의외로 많은 문제점을 가지고 있었다.
교도소 측의 말을 들어면 벌써 몇 차례나 탈옥을 기도했다가 들키곤 했다는 것이다. 또 같은방의 수감자들과 매우 사이가 안좋은 것 같았다. 더구나 나에게 더 큰 문제는 벌써 몇 달 동안 신앙을 거부해 왔다는 것이다.
그 방에서 얘기를 나누는 중에 고향은 경기도 송탄이고 그곳에는 부모님들도 계시며 집안은 다 열심한 신자들이지만 자기에게는 모두가 냉대를 해왔다는 것이다. 교도소에 들어온 후 몇 차례 어머님이 면회를 오신 모양인데 오실때마다 면회를 거부했더니 이제는 오시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그곳에는 성체를 모셔야 할 신자들이 거의 70여 명이나 되어 더 시간을 가질 수 없어 고백성사를 받고 성체를 모시겠느냐고 물으니 아직 성사볼 준비가 안되었으니 다음 주에나 보겠다고 대답을 한다.
그래서 다음주로 약속을 하고 그곳을 나왔다.
다음주가 되자, 나는 그가 쉽게 성사를 볼까 하는 우려를 가지고 그의 방을 찾았다.
『방지거, 성사 볼 준비 됐소?』하며 그의 방을 들여다보며 말을 걸었다.
『아직 준비 안됐는데요』
『조금이라도 생각했으면 오늘 봅시다. 시작하기가 어렵지, 일단 보면 시원하고 괜찮아요』
『신부님, 한주일만 더 생각해 보겠습니다』
할 수 없이 돌아서며 다음에는 하루를 잡아서 문제가 있는 사형수들만 개별적으로 불러서 만나 보리라 생각하고, 성체도 모시지 않고 다음에는 교회실에서 불러냈다. 몇 사형수를 만나본 후 방지거 차례가 되니까 김 안드레아 교도관은 그대로 오면서 방지거나 아파서 못나온다고 하며 거절하더라는 것이다.
이때 만난 한 간첩 사형수는 나에게 이런 말을 했다.
『교회에서 아담 원조가 지은 죄를 FELIX CULPA (복된 죄)라고 하죠』
『네』하며 나는 무슨 말을 하려나 하며 주의를 집중시켰다.
『저도 그렇습니다. 제가 오늘 여기 들어오지 않았다면 누가 나에게 하느님 얘기를 백번을 한들 귀가 열렸겠습니까? 나는 비록 국가를 거역하는 큰 죄를 지었지만 오늘 하느님과 천주교를 알았기에 내 잘못에 대해 감사드립니다』
이 사형수는 정말 후에 『하느님, 만세』를 외치며 집행되었다. 지금도 이 부모는 일본에서 조총련 간부로 활약한다고 한다.
나는 이때 이런 생각을 했다. 왜 어려서부터 신앙교육을 받았을 방지거는 신앙을 거부해야 하며 뒤늦게 하느님을 찾는 이 간첩 사형수는(아마 이 요셉?) 자기 아버지의 사상까지 버리면서 신앙을 가질 수 있었을까 하며 그의 용감한 집행을 보면서도 방지거에 대한 생각으로 마음을 어지럽히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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