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 구상은 어머니 태중에서 벌써 천주교 신자로 세례를 받았으며 15세 소년때엔 수도원에 들어가 3년을 지내고 나온일이 있다. 그 뒤 50세가 넘은 오늘날까지 그는 늘 자신을 하느님의 포로인양 의식하며 지낸다.
여기서 포로라는 말을 쓰는 데엔 이유가 있다. 그는 종종 말하기를 신앙의 길에 있어서 자기는 부직승자가 되지 못하는 체질이라고 한다.
그는 근년에 연작시로서「밭일기」를 발표했는데 그안에서도 회의를 나타내고 있다.
내 영혼은 본시부터 눈멀어 태었는가?
날이면 날마다 전신의 눈앞을 죄다 밝히고
너 하늘을 쳐다 보지만
오오무명과 허무의 조우 …
그러나 과연 이 시인은 어둠과 허무속에서 좌절하고 마는것인가. 다른 한편으로 보면 또그렇지가 않다.
산정에 밀려올라가 붙은
판자집 창에
대구리에 군데군데 부스럼
딱지가 앉은 선머슴마냥 얼굴을 맞대고
나는 알아낸다.
저기 흐르는 푸른 강에
물고기가 놀듯이
여기 황토 굳은땅 속에
개미가 일하듯이
「나는 혼자서 알아낸다」1ㆍ2연>
이렇게 차라리 천진한 동안을 빌어 자연속의 생명들을 알아냄으로써 그는 존재의 세계를 스스로 알아내고 있기도 한 것이다.
이 시인의 관념적인 일면이 하느님이나 신앙의 문제를 놓고 이성적으로 회의하고 괴로와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신앙인들이 때때로 그와 같은 회의와 갈등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시인의 시를 보면 거기에는 감수성으로 캐어낸 생명감과 본성에서 우러난 사람으로써 풍성한 세계가 이루어져 있다.
먼저 그의「사랑」의 면을 보자. 시인 구상의 신변적 사정을 알아보면 그는 해방후 민족분단의 비극에서 크게 상처를 입었다. 해방 직후 북한에서 벗들과 함께낸 시집「웅향」이 사상적으로 단죄되어 망명을 하다시피 월남하였다. 그리고 6ㆍ25전쟁 중에는 대한민국에서 종군작가단에 참여하였다. 그러나 이 전란기간 중에<군가 한편 소위 이국시 한편 제대로 쓰지 못하고>「초토의 시」라는 한권의 시집을 써냈다. 「초토의 시」에서 이 시인은<하꼬방 유리딱지에 걸려 있는 해바라기 같은 애새끼들>로부터 시작하여 깜둥이 튀기아이 마음착한 창녀, 싸움터의 이른바 적군인 인민군 전사자, 이모든 인간형제들에 대해 오직 뜨겁게 사랑하는 마음만을 가지고 괴로와한다.
「초토의 시」8에서 그는 인민군 시체들을 모아<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히 파묻어 떼마저 입혀주고> 다음과 같이 애도했다. <이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돌아가야 할 고향땅은 30리면/가루막히고/이제는 오히려 너희의/풀지못한 원한이 나의/바램속에 깃들여 있도록>
전쟁의 시기에 걸쳐 이와 같이 형제애 또는 인류애의 정신만으로 현실을 시화한 작업은 아마도 이 시인을 떠나서 찾아보기 힘들것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작업은 철저히 구도적이고 기독교적인 정신위에서 이루어질수 있었다고 보게된다.
다음으로 연작시,「밭일기」는 이미 한국시단의 중진이 되어있는 그의 위치를 안정시키기에 족하리만큼 풍부한 삶을 담고있다. 그리고 이 삶은 자연 즉, 창조의 밭에서 생명과 존재를 캐냄으로써 이루어진 성과다.
내가 짐작하기론
밭의 연인은
논이다.
그들은 밤이면
곧잘 수런거리다가
벌레소리도 내고
개구리 소리도 내다가
낮에는 둘이 다
시치미를 뗀다. <밭 7>
이렇게 삶은 흙속에 친화되어 들어가있다. 또한 인생의 연륜과 우수같은 것도 그는 밭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뛰어나게 표현하고 있다.
은싸라기를 뿌린 아침밭에
이 또한 머리에 흰 서리를 인
사나이가 우두커니 서 있다.
때아닌 곳에 푸성귀 몇 포기
그의 철모르는 자식들처럼
한구석 푸르게 자라고 있다.
<「밭」17에서>
이미 서리나린 밭에 푸르게 몇 포기 자라고 있는 푸성귀를 철모르는 자식들에 비긴 것은, 우수를 감상이 되지않게 하였다. 오히려 뒤늦은 역사의 땅에서 미래를 전망하며 연민과 숙연을 느끼는 심상이 나타나고 있다.
「밭」은 도심의 일상에까지 투영된다.
러쉬ㆍ아워의 버스 안
수수가 빽빽이 서있다.
고독한 군상!
모두 피를 흘린다.
<「밭」15>
이 밖에 「밭」은 농부의 쟁기질로 숨구멍을 트고, 그 이랑에서<수수전 같은 소똥, 국화만두 같은 말똥, 조개탄 같은 돼지똥, 생굴 같은 닭똥>이렇게 온갖 똥들을 즐거이 받아들여 오히려 생명의 거름으로 삼는다. 이 같은 밭은 실로 창조와 평화의 땅이며 하느님의 일터이다.
누워 보는 하늘
높고 깊고 넓고 무한
<「밭」14>
이것이 시「밭일기」의 궁극의 정신일것 같다. 평화, 존재, 무한, 영원, 이런것들을 시에 담고싶은 크나큰 의욕울 보게된다. 자연을 소재로 하여 서정의 한계에 갇히지 않고 이처럼 창조적이고 존재론적인 시작업을 이룩한 것은 한국 시사에서 이채로운 업적이 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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