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러서 차근히 설득해보려던 계획이 깨지자 나는 장기전을 펴기로 마음먹었다. 매주 그의 방을 두들기며 그의 기분까지 읽으며『성사보겠느냐?』또는 자꾸 성사 얘기를 꺼내면 그나마 만나기도 싫다고 할까봐 어떤때는 일부러 성사에 대한 말을 안하고『건강이 좋으냐?』『잘 지내는가?』하는 말만 하고는 그대로 지나치곤 했다.
주 방지거는 신자들과의 자매결연도 거절을 해오고 있는 괴팍한 성격이었다.
자매결연이란 열심한 신자들이 둘 혹은 셋씩 짝이되어 매주 정기적으로 사형수를 찾아보며 교리도 가르치고 또는 그들과 대화를 나누며 가족보다 가깝게 지내는 조직을 말한다.
어떤 사형수들은 그 안에서 자매들이 찾아주는 낙으로 산다. 어쩌다 한 주일만 빠지면『왜 못 오셨느냐』또는 못 올까 걱정하며『꼭 나와달라』는 엽서가 날아오고 있다. 일반적으로 사형수들은 성세받을 준비가 미비하다 하더라도 조금은 특혜처럼 빨리주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이들이 바로 이 자매결연을 통해 점점 깊은 신앙을 받아들이고 있다. 이 자매들은 주로 레지오 단원들로서 현재는 명동성당 아현동성당 세종로성당 불광동성당의 신자들이다. 이 자매결연이 혹 가다 상대가 젊은 아가씨인 경우에는 문제가 되는수도 있었다고 한다.
한 사형수가 펜팔로 친구를 사귀다 이 아가씨는 후에 매주 한번씩 찾아보는 정성을 내게 되었고 사형수는 정말 한주일에 한번 이 아가씨를 보지 못하면 몸살이 날 정도가 되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사형수는 자신의 운명이 저주스러워 탈옥을 기도했고 실패하자 이제는 그 아가씨까지 보지 못하게 되어 비관속에서 살다 집행때도 주위사람들에게 애를 많이 먹였다는 얘기이다. 이 아가씨는 신자가 아니고 단순히 사회계통으로 사형수를 찾아주던 자매결연자라고 한다. 현재는 착실히 그들의 누님 어머님 노릇을 하며 교도소 교무과 직원들로부터 칭찬받는 부녀들이 되어주고 있다.
사형수들 중 신앙을 넣어주려 할 때 가장 힘든 사람들은 이북에서 넘어온 간첩들이다. 이들은 애초부터 자매결연을 시키려해도 지레 겁을먹고 거부하여 어렵고, 또 시작을 해도 뒤에 혹시나 뭐가 있지않을까 하여 순수하게 자매결연을 하지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지거는 무슨 이유인지 자매결연을 거부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느날이었다. 그의 방을 지나며 그를 찾으니 그래도 일어나 창살로 내다보며 말을 주고받던 그가 그날은 아예 들어누워 있었다. 나는 교도관에게 방을 열어달래 그의 몸을 만져보았다. 열이 대단했다. 같은방 사람들 말에 의하면 약은 먹었지만 벌써 며칠째란다. 그런데 마침 밖에서 교도소 의사 한 분이 지나가는 것을 보고 그에게 쫓아가 특별히 보살펴 달라고 부탁을했다. 의사는 곧 그를 진찰하기 시작했다. 나는 성체도 뫼시고 있기에 계속 그곳에 있기만 할 수 없어 다시 부탁을 하고 그곳을 떠났다. 그 다음주였다. 다시 그를 찾았을때 그는 다시 건강을 되찾고 완연히 반가워하는 얼굴로 나를 맞았다.
나는 의례 그래 왔듯이 성사말이 목까지 올라왔지만 참았다.
『이제 다 나았니?』이제 나는 그에게 말을 낮추어 할 수 있는 정도까지 되어 있었다.
『네, 주사도 맞고 아마 좋은 약인가 봐요. 신부님 오셨던 후로 매일 와주셔서 어제부터 괜찮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몸조리 잘해요』하며 하고싶은 말을 남기고 떠나려 했다.
『신부님 고백성사 보겠습니다』
『고맙구먼. 준비 다 돼있니?』
『잘은 못했지만 오늘 오시면 꼭 보려고 했어요』
나는 그에게 성사를 주던 중 모든 의문이 풀렸다. 왜 그가 신앙을 거부해왔고 왜 그가 다른 사람과 만나는 것까지 또 어머니의 애절한 면회까지 거절했는지를.
그러던중 또 한가지 큰일이 터졌다. 한 두달 되었을까. 교도소에 도착하니 김 안드레아 교도관은 방지거가 독방에 갇혔다고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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