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떼잃은 목자로서 하루속히 양들곁에 돌아갈 날만을 학수고대하며 먼발치서 양 우리를 지켜보던 목자는 끝내 자기 양들을 만나지 못한채 눈을 감고 말았다. 고 요셉 민첸티 추기경-. 83년이란 인생의 긴 여정속에서 오직 양들의 안전과 자유를 수호하기 위해 시랑이들과 벌인 목자로서의 그의 끈질긴 사투는 생의 마침과 함께 결코 끝나지는 않으리라.
민첸티 추기경은 1892년 3월 29일 항가리 남서부지방에 위치한「체히-민첸티」란 작은 촌락에서 태어났다. 원래 이름은「펨」이었으나 나중에 출생지명을 따라 개명한 것 같다.
그 후「숌바텔리」에 있는 신학교에 입학, 1915년 6월 12일에 사제로 서품됐다. 이때는 바로 세계 제1차대전이 진행중이어서 교직에 종사했으며 전후에는 농촌본당을 옮겨다니며 목자로서의 기반을 다져갔다. 민첸티 추기경은 이를 적극 반대하고 나섰다. 결국 그는 체포되어 러시아군에 의해 석방될때까지 옥중생활을 해야만 했다.
그러나 러시아에 의한 석방도 잠시뿐이었다. 그는 또 다시 러시아군을 향해 공격의 화살을 겨냥했다. 그러던 중 1946년 2월 그가 추기경으로 임명되어「로마」에 가려할때 러시아 당국은 그의 여권을 지연시켰다. 이때 민첸티 추기경은 항가리 수상과 항가리 연합 통치위원회 미국측 대표였던 웰리암 S 키 장군에게 여권승인을 위한 중재를 요청 마침내 키 장군이 그들「로마」까지 모셨다.
이때부터「에즈테르곰」대교구장과 항가리 가톨릭 수좌로서의 민첸티 추기경은 러시아(후의 항가리 공산정부)를 반대하는 항거의 상징이며 동시 제1의 지도자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는 교회가 가진 거의 모든 소유물을 강탈한 토지개혁을 공격했으며 교육의 통제를 둘러싸고 정부와 투쟁을 벌인 한편「맑스주의」이론에 기초를 둔 새로운 사회건설에 끝없는 비판을 계속했다.
드디어 1948년 12월 26일 그는「반역죄ㆍ간첩활동ㆍ외화 암거래」등의 죄목으로 또 다시 체포됐다. 세계의 눈은 비록 민첸티 추기경이 위의 죄목을 자백했다 하더라도 그가 약물중독에 의한 허위자백을 했거나 혹은 세뇌공작을 받은 것으로 추측했다. 그는 여기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1971년 항가리를 떠나온 후 그는 자신의 자백이 경찰의 강제수단에 의한 것임을 지적했으나 그 방법은 말하지 않았다.
세계는 1956년의 항가리 의거로 그가 풀려나 즉시 반공산주의 선봉에 서서 세계를 향해 외치는 절규를 잠깐 들을수 있었다. 그는「부다페스트」에서의 기자회견에서 서방의 강대세력들에『이 잔혹한 상황에서 우리를 도와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원조의 손길은 아랑곳없고 대신 의거를 진압하기위해 10만의 러시아군이 항가리를 점령하고 말았다.
항가리 의거가 실패에 그치자 이때부터 그는 고국 항가리의 생명에 직접적인 역할은 할 수 없으나 강력한 저항의 심볼로서 미국대사관에 은신처를 마련했다.
민첸티 추기경을 구출하려는 수차에 걸친 세계와「바티깐」당국의 노력은 추기경 자신의 꺾이지않는 결단력 곧『항가리에서의 진정한 종교자유의 회복없이는 대사관 문을 나서지 않겠다』는 굳은결의로 좌절되곤 했다.
그러던중 70년대에 접어들면서 성청과 미국이 전통적인 반공산주의 노선을 변경하고 새로운 화해무드에 접어듬과 때를 같이하여 시대의 변화와 상관없이 자신의 결의를 바꿀수 없고 그곳에서 죽음을 맞이하겠다던 민첸티 추기경의 굳은의지도 그로 하여금 새로운 세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절감케했다.
결국 그는 71년 9월 28일 그토록 떠나지 않겠다던 조국 항가리와 수많은 양떼들을 남겨둔채「로마」에 도착했다. 그가 항가리를 떠나게 된 가장 큰 이유중의 하나는 바로 교황 바오로 6세의 애정어린 호소에 대한 순명이었다.
그것은 그가「바티깐」에서 교황을 뵙고『내 인생에 있어 가장 무거운 십자가가 될 성하의 말씀을 교회의 선과 하느님께 대한 봉사로 기꺼이 받아들이겠습니다』고 한 그의 대답에서 찾아볼수 있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