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부님, 어떤상황에서든지 원수를 용서해야만 됩니까?』
이때가 아마 독방에서 풀려나고 한 달 가량 되어서였다. 아마 이문제는 자신에게 있어서 가장 어려운 문제며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고통중에 번민해온 끝에 던지는 질문이었다. 자신의 사형이 바로 이 문제와 연결된만큼 그로서는 쉽게 답을 구할수 없는 괴로운 문제였다.
『물론 용서해야죠』
이 대답을 그가 모를리 없다. 평소에 그에게는 바로 이 대답이 그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리라고 생각은 했지만 그러나 갑자기 받은 질문에 당황하지 않을수 없었다. 나는 순간적으로 두가지 면으로 생각했다.
『용서해야 된다』고 무조건적 확신을 줄까? 아니면 우리는 용서할수 있도록 애써야 된다고 가르쳐볼까 하며 생각하다가 후자를 택하기로 했다.
『글쎄, 상황에 따라 어려운 경우가 많겠지』
내가 두번째 경우로 대답한 것은 내 나름대로 이유가 있다. 괴로워하는 사람일수록 내 문제를 당사자가 나만큼 깊이 생각하고 있는가에 예민한 반응을 갖는다. 그러다가 그러지 못하다고 판단하면 상대에게 불쾌감을 느끼고 이렇게 되면 대화는 단절되고 만다.
『그러나 아무도 해내지 못할 긴박한 상황에서 타인을 용서할때 사람들은 그를 훌륭하다고 말하지』
『그러나 고통이 너무 심해서 도저히 할 수 없는 경우도 있습니다』
『물론이지, 그렇지만 고통이 심하다는 것을 아니까 훌륭하다고 말하지. 고통도 모르는 사람이 쉽게 잊어버린다면 같은 행위라도 사람들은 바보라고 말하거든』
대략 이런얘기로 그의 질문을 받고 어느 책에서 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불란서 혁명때 귀족출신의 한 신부가 자기집 하인에게 부모와 재산을 빼았기고 이모 손에서 자라 신부가 되었다. 그는 신부가 되었지만 자지가문의 원수인 그를 증오하며 살았는데 어느날 우연히 병자성사에서 죽어가는 원수를 발견했지만 성사를 집행하고 죽어가는 그를위해 기도해 주었다는 이야기다.
73년 5월초였을게다. 그때 검은수단을 입고 그의 장례를 치루면서 땀을 흘리던 기억이 나고 같이 장례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혜화동성당 묘지인 포천산에서 송화가루를 따던 생각도 나니까.
그때 3일동안에 모두 사형집행이 11명 있었는데 일반적으로는 대개 2일에 7~8명인데 그날은 2일동안의 집행 8명이 끝나서 악몽같은 이들로 멍해있는데 내일도 심상치 않으니 집에서 대기하며 기다려 달란다.
그렇지 않아도 8명중에 방지거가 들지 않은 것이 이상하다고 혼자 생각하며 완전한 준비가 되지 않아서 아직 하느님의 섭리가 닿지 않았나 싶어 다행이라고 느끼고 있는데 느닷없이 내일 또 오란다. 이틀동안 그것도 하루 종일 사람죽는것만 더구나 산 목숨을 개달듯이 달아 죽이는 것은 다시 생각만 해도 소름끼치는 일인데 내일 다시 와야 된다고 할 때 사목이고 뭐고 정이 뚝 떨어진다. 그래도 정신을 가다듬어 그러면 내일은 누굴까 하며 두 사람을 생각해서 남은 성체를 영해주러 찾았다.
이때 바로 방지거를 찾았고 바로 이튿날이 그의 집행날이었다.
이튿날 연락을 받고 교도소로 갔다. 내가 방지거의 죽음을 예측한 것은 사형수가 소내에서 골칫거리가 되면 집행을 재촉하게 된다.
사형수들은 3심이 모두 끝나도 다시 재심을 3번까지 할 수 있어 오래있는 사형수는 4년, 빠르면 2년은 그곳 생활을 하게된다. 물론 특별한 예는있지만. 문세광이나 이수근 같은 예는 특별한 경우에 든다.
그러나 골칫거리는 재심3번을 다하기 전에 처형되기도 한다.
방지거는 3번의 재심도 다 했지만 그러나 좀 빠른 편이었다.
이때 그의 모습은 조용하고 퍽 온순했다.
마지막에 검사는 나와의 시간을 주어 그에게 총 고백을 보도록 권했다. 대개의 사형수들은 이때 차근히 성사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묻고 대답하는 형식으로 본다. 나는 방지거에게 친구에 대한 용서에 대해 확답을 듣고 싶었다.
『방지거, 네가 용서해 주어야 할 사람이 있지?』
『네』
『용서해 줘요. 예수님도 십자가에서 죽으시면서 지금 죽이고 있는 사람들을 용서하셨잖아?』
『………예, 용서하겠습니다』
나는 고맙다고 하며 그에게 성체성사와 견진성사를 주고 훌륭한 죽음을 바라보며 서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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