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사형되던 해인 재의 수요일에 성회를 가지고 가서 이마에 발라주어 그는 익숙하게 무릎을 꿇고 경건한 예전에 참례하듯 재를 받던 그 모습은 영 잊을 수가 없다.
한 번은 시내 각 본당 주보를 모아다가 주었더니 너무나 좋아하며 실상은 소내에서 읽을 성서가 부족하여 교회에 대하여 알고 싶어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고 또 다른 형제들에게 줄 수도 없다고 했다.
그래서 담당에게 허락을 받아 각 본당 신부님과 수녀님들에게 책을 요청하는 편지를 내었더니 여러 곳에서 책을 보내주어 형제들을 주님께로 이끄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
요한은 학력은 초등학교 밖에 나오지 못했지만 지원병으로 미 해군에 입대하여 외국에도 여러 곳에 다녀오고 하여 식견이 넓어 내가 보기에는 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사람 같았다. 말도 조리있게 잘했고 글도 잘 썼다. 그가 내게 보내온 편지와 수기를 모아 보배 같이 아끼며 수녀들에게 읽히고 있던 중 어느 신부님이 빌려가셔서 몽땅 잃어버리셨다니 참으로 아깝고 아쉬운 마음 떠나지 않는다.
그가 죽기 얼마 전 하루는『수녀 할머님께 자신의 죄상을 말씀드리고 싶지만 영혼 상태는 모래사장에 비가 계속 내려 맑고 깨끗해지는 모양인데 죄상을 논하려면 그때 심정으로 돌아가야 되기에 이를 말씀드리지 못합니다』하며 4년 전 어느날 신문에 중낭교 사건을 좀 아실 것이라고 했다.
그리곤 유언이라며 자기에겐 아들 3형제가 있는데 맏아들은 자기 대를 잇게 하고 둘째는 신부가 되도록 이끌어주시면 좋겠고, 끝의 아이는 어떤 분이 데려다 기른다고 했다.
그가 집행되어 장례를 치른 후 일러주던 곳을 찾아가 보았더니 노부모가 손자 둘만 데리고 살고 있었다. 가족들과 의논한 후 둘째 아이를 인천 해성육아원 외국인 수녀에게 맡겼더니 열심한 미국인에게 양자로 보내어 지금은 행복하게 살고 있을 것이다.
사형수들의 집행은 대개가 비밀히 행해져서 그날을 모르기가 일쑤다.
혹시 눈치를 챈다 해도 집행하기 한두 시간 전에 불과하다. 그런데 박요한은 자신의 사형일을 알기나 한 듯 미리미리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재의 수요일에 재까지 받고 유언을 하며 내일 자신이 하느님께 가는 날이라고 만반의 준비를 했다. 목요일까지 하고 깨끗한 옷을 입고 두 끼나 단식하며 기구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닌게 아니라 곧 요한을 형장으로 데려가기 위해 옥 문을 열었다. 요한은 벌써부터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나섰다. 20여명의 교도관들이 마지막 작별의 슬픔을 나타내니 오히려 요한은 이분들에게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다고 하며 감사의 대화기도까지 해주고 걸어나가니 상하 방에 있는 동료들은 흐느껴 울며 문을 열고 내다보았다.
요한은『슬퍼하지들 마시고, 이후 천당에서 만납시다』는 인사를 하고 태연히 마치 주님이 부르시는 초대연에 가듯 했다.
요한은 형장에서 마지막 고백성사와 성체를 영한 후 고요한 얼굴을 지닌 채 교수되었다.
한 인간이 세상에 나서 살다가 간 길을 더듬으면 극히 불행한 일생이었다고 말할지 모르겠으나 그로 인해 뿌려진 사랑과 평화는, 그 향취는 오늘까지도 계속 풍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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