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를 하루 같이 한국인을 위해 일해오던 변로이 신부가 지난 6일 선종했다.
변 신부는 1893년 7월 30일 미국 미시간주「엔콜빌」에서 9남매 중 한 사람으로 출생, 미국「신시내티」소재 마리아신학교에 재학 중 1921년 9월 메리놀회에 입회했다.
그 후 1925년 5월 31일 사제로 서품된 변 신부는 같은 해에 한국 평양교구로 전임되어 용유에서 한국어를 공부한 후 26년 신의주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했다. 신의주에서 10년간 사목활동을 한 변 신부는 또 평북 정주본당으로 전임했으나 그 당시 일경에 의해 6개월 반 동안 연금되어 제2차 대전 중 1942년에는 본국으로 강제 출국 당하기도 했다.
1946년 한국에 재입국한 변 신부는 명동성동에서 활동하던 중 평택본당으로 전입됐는데 6ㆍ25 동란 중 거제도 포로수용소 군종으로 봉사하다 동란 후 3년간 충북 옥천본당에서 주임으로 봉직했다.
그 후 2년간 부산 서대신동본당에서 사목한 변 신부는 인천교구로 가서 선종할 때까지 18년간 주님의 종으로 봉직해왔다.
그러다 59년 12월 부평2동본당 주임으로 부임 후 66년 12월 28일까지 사목한 변 신부는 본국 휴가와 심장병으로 잠시 쉰 후 67년 7월 2일부터 69년 11월 8일까지 백령도 보좌로 부임, 사목생활에 전념했으나 심장병 재발로 인해 다시 본국으로 가서 치료를 받았다. 귀국 후 용현동 보좌로서 76년 11월까지 활동한 변 신부는 마지막 임지였던 간석동에서 끝내 지병인 심장병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지난 12월 6일 선종했다.
일생 동안 온화하고 친절하며 근면한 사제요 선교사로서 생애를 보낸 변 신부의 여러 가지 특성 중 하나는 선명정신이었다. 장상에게 보내는 그의 편지 끝머리에는 항상「당신에게 순명하는 종」이라고 썼을 만큼 그의 일생은 그대로「순명의 일생」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만년에는 건강 상태가 좋지 않아 주위에서 은퇴하기를 권고했으나 사양하고 마지막까지 고백성사를 집행하며 설교와 병자방문 등으로 사제로서의 최선을 다했다.
한마디로 변 신부의 일생은 기도생활과 병고와 고통과 지칠 줄 모르는 열성으로 점철된, 주님께 대한 줄기찬 신앙으로 일관된 생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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