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놀회 변 로이 신부(82ㆍ미국인 ROY PETIPREN)가 외국인으로서 드물게 한국에서 서제서품 50주년(금경축)을 맞아 21일 오전 11시 인천 답동성당에서 동료사제 신자들의 축하를 받았다.
1925년 5월 21일 미국「뉴욕」시 메리놀 대신학교를 마치고 사제로 서품, 그 해 12월 일제하에 신음하는 한국에 와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던(42년~48년) 6년간을 제외하곤 44년간 이 땅에서 고락을 같이 한 메리놀회와 한국교회의 산 증인(證人)인 변 신부는『여생을 복음전파에 바치고 한국에 뼈를 묻는 것이 소망』이라고 감회어린 표정을 지었다.
이날 금경축에는 인천 교구장 나길모 주교, 김수환 추기경, 노기남 대주교, 지학순, 김남수 주교도 참석 반세기에 걸친 그의 폭넓은 활동을 회고했다.
미국「디트로이트」에서 2남 6녀 중 둘째로 태어난 변 신부가 동양선교에 열을 쏟던 메리놀 회원으로 첫 사목활동을 편 곳은 평안북도 신의주.
이후 그는 평북 정주ㆍ의천ㆍ경기도 평택ㆍ부평ㆍ백령도ㆍ충북 옥천ㆍ부산 등 한반도 구석구석을 누비며 손수 세웠거나 마무리 한 성당만도 10여개 소에 이른다.
1923년 한국에 진출한 메리놀회 제2진으로 같이 온 동료사제 가운데 파 야고보 주교(청주) 기 후고 신부(충북 장호원)만이 한국에 있을뿐 대부분 귀국해 은퇴했거나 세상을 떠났다.
48년 다시 돌아와 평택에서 6ㆍ25사변을 맞은 변 신부는 동란중 2년3개월간 군종신부로 부산 거제도ㆍ논산 광주 등지의 포로수용소를 맡아 1천14명에게 영세를 주었고 피난지 부산에서 고생하는 신자들의 일자리를 마련하느라『너무 피곤해』6개월간 병상에 눕기까지 했다고 회상한다.
이때 많은 신학생과 신자들이 그의 도움을 입어 어려운 고비를 넘긴 일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재입국후 2년간 서울 명동에 자리잡고 있으면서 월남 피난민 구호활동을 벌이는 한편 미군 연락편을 통해 평양교구에 선교자금을 보내고 신자들의 재산을 남하시키는 중계역할을 맡아하기도 했다.
그의 생애를 통해 아직도 잊지 못하는 곳은 첫 사목지였던 신의주.
10년간 정들었던 이곳을『생전에 통일만 된다면 제일 먼저 달려가고 싶다』고 했다. 『다시 50년 전으로 돌아간대도 꼭 같이 살고싶다』는 변 신부는 그때만 해도『좋은 선생이 없어서』제대로 한국말을 익히지 못한 것이 제일 후회된다면서 요새 젊은 외국신부들을 만나면 무엇보다 한국어 열심히 배우라는 충고를 잊지않는다고.
경기도 부평본당 주임을 마지막으로 10년 전부터 은퇴생활을 해오고 있는 변 신부는 4년전부터 인천 용현동본당에 거주하면서 성사도 주고 때로는 가까운 곳에 신자방문도 하는「보좌신부」역이 매우 행복하다고 말한다.
지난 반세기의 한국역사가 그러했듯이 파란의 50년을 이 땅에서 보낸 노 사제가 그 생애를 통해 터득한「사제의 길」 그것은『가난하게 사는것』임을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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