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 매실주 한 잔 더드세요』
아버지는 못 이긴척 한 컵 더 마셨다. 농이 차츰 오르는 모양이다. 눈 가장자리가 붉으스레 해졌다. 이럴때 어머님이 들어오시면 오죽 좋으랴 싶다. 아버지는 어머님께 기를 못썼다.
『젬마는 잘 알아둬라. 토마스의 속사정을 내가 좀 케봤는데 아주 형편없어. 완전히 발가숭이 집안이란 말야. 내 짐작컨대 족보도 없는 집안 같더라. 그런 집에 무슨 살림이 이뤄질 수 있겠느냐. 토마스 그 자식은 괜히 교회를 등에 업고 넙죽거리지만 누가 그걸 모를줄 알아』그녀는 문득 생각났다. 토마스가 점심시간에 가만이 십자가만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그녀는 그날 토마스가 잠시 일칸을 비운 틈에 삶은 감자를 좀 갖다놓았다. 토마스는 그것을 몹시 맛있게 먹어치우는 것이었다.
『아버니 토마스의 집안이 그렇게도 형편 없었어요?』
그녀는 아버지의 말에 이끌려 드는척 했다.
아버지는 수선을 떨기 시작한다.
『그러니까 내가 토마스를 너와 맺어주고 싶지 않는거야. 젊은놈들은 아직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모른단 말야. 계집애만 보면 무슨 부잣집 귀공자처럼 돈깨나 써지만 그 돈의 출처는 뻔한거야. 토마스는 별수 있는줄 알어 그 자식도 내가 월급을 봐주지 않는다면 비렁뱅이가 되는거야. 넌 도대체 토마스의 어디가 좋다고 그러지?』
그녀는 명확하게 내세워 얘기할 수는 없었다. 만약 자애로운 아버지였다면 단번에 토마스의 장점들을 얘기했으리라. 그리고 토마스의 단점은 그녀 자신이 옹호해주면 되는것이다.
『아버지 알고 싶으세요?』
아버지는 또 술을 흘짝 마신다. 술은 주전자에서 샘솟듯 생겨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술이 떨어지면 또 뜨러가야 한다. 아버지는 술을 시작했다 하면 밤새도록 마셔대야 직성이 풀리는 술태백이다. 이런 아버지와 살아오면서 어머님은 얼마나 애가 탔을까. 세상 남자가 모두 이 모양이라면 시집갈 하등의 이유가 없을 것 같다.
그녀는 일단 토마스의 장점부터 늘어 놓았다.
『아버지 토마스는 무슨 일이든 잘해내요. 그리고 토마스는 일의 귀천을 가리지 않아요. 또한 토마스는 시를 쓰고 또한 순진 … 』
『그만해!』
아버지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손바닥이 날라오지 않은 것만도 천만다행이었다.
『네가 줏어대는 토마스의 장점들은 현실에 맞지않는 거야. 사람은 남들이 우러러 볼만한 일을 해낼 때 비로소 출세라는걸 하게돼. 토마스처럼 직공살이나하는 꼴에 시나 쓰고 하는 놈들은 평생가야 비렁뱅이야. 그런데 너는 인물이 남만 못해서 그런 놈에게 일생을 바쳐? 너는 지체높은 집안에 시집가고도 남을 인물이란 말야. 토마스 따위에게 너를 주다니 천부당 만부당한 일이지 아예 그런 비렁뱅이 자식은 생각에서 제거해 버려』
아버지의 소리가 날카로왔다. 그녀는 더이상 입을 열어서는 안되었다. 어떤 얘기도 하고싶지 않았다. 이대로 돌이 되어버렸으면 싶었다.
『왜 아버지의 말이 듣기싫나? 하긴 그럴지도 모르지 약은 입에 쓰다고 했으니까』
가당치도 않는 문구를 줏어댄다. 어째 약이 쓰지 달텐가.
아버지는 계속 늘어놓는다.
『젬마야, 나는 너를 지체높은 집에 시집보내야겠다. 우리 집안의 혈통을 위해서도 말이야』
김 계장이란 노총각이 아버지의 머리속에 떠올랐다. 중앙청에서 사무차관을 지내고 있다고 하는 그의 숙부.
『내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겠나 젬마야, 김 계장이라고했지? 그 자를 나는 만나봤어 비록 신자는 아니었지만 굉장한 가문이었어. 그런 집안에 젬마는 시집가고 싶지 않느냐?』
그녀는 아버지를 흘깃 쳐다보고는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그녀도 김 계장으로부터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어온 얘기였다. 비단 그녀에게만 들려준 얘기는 아니었다. 군청에 근무하는 모든 사람들에게도 그랬다. 그래서 군수까지도 김 계장이라면 함부로 대하지를 못했다. 그녀는 김 계장에게 호되게 쏘아 부친적도 있었다. 사무차관이면 당신이 사무차관이냐고.
『어서 말을 해봐. 김 계장이란 사람은 이 지방에 그리 흔치않아, 그리고 그 사람은 년말안에 결혼을 해야한다고 그랬어.』
연말까진 아직 보름은 남았다. 적어도 열흘안에 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김 계장이란 자는 다른 처녀를 맞을것이라고 했다.
아버지는 다방에서 나눈 그자의 얘기가 떠올랐다.
김 계장이란 자가 담배를 권하면서
『이양 아버지 저는 이양이 아니라도 좋은 사람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제가 이양을 아내로 맞고싶은 이유는 이양이 다른 어떤 처녀들보다도 현모양처다운 데가 있어서 그럽니다. 물론 이양은 본의에서 거절을 하고 있지는 않겠지만 하여간 연말안에는 제 입장으로 봐서 결혼을 해야합니다. 서른이 넘으면 결혼이 불가피하다는 것을 저는 말하고 있는 겁니다.』
담배를 받아서 입에 물자 라이터를 켜주있다. 그리고는 또 늘어놓았다.
『저는 이양의 아버지에 대해서도 잘 압니다. 과거에 면장을 지내셨다고 하셨죠? 제가 이양과 결혼만 하게되면 숙부님께 말씀드려서 좋은 직책을 하나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저의 숙부님은 인사계통에도 유력한 분이십니다. 제가 머잖은날 군수가 되리라는 것도 이미 말씀드리는 겁니다』
그자의 얘기들은 전부 가슴을 찌르르 하게 했다.
얘기는 거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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