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 바울라-그녀는 퍽으나 여성스러운 점이 많았다. 가끔씩 나에게 빗이라든가 핀같은 것을 갖다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워낙 교도소에는 수감자들의 우발적인 자살행위를 금하기 위해 쇠붙이로 된 물건이나 약 종류는 투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쓸쓸히 감방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이 무언가 허전한 느낌이 든다고 말하는 그녀의 어린애같이 소박한 점을 애틋하게 여겨 나는 가끔씩 몰래 그녀가 원하는 것을 주곤 했다. 이것이 위법행위인 것을 물론 나는 알고 있었다. 그래서 될수 있는 한 빗이나 핀을 쇠붙이가 아닌 풀라스틱으로 구해서 전해주면 정 바울라는 어린애같이 좋아하곤 했다. 약같은 것도 다량을 주면 위험해서 금하고 있음을 알고 한알씩 손에다 쥐어주곤 했다.
그녀는 내가 교도소에 갔을때 가끔씩 묵주를 갖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나는 특별히 여자사형수가 한명임을 감안해서 될수 있으면 예쁜 것을 골라서 갖다주었다. 그랬더니 신부님이 주신 것이라며 소중히 간직하고 자기가 갖고있던 묵주는 다른 이에게 주면서 전교를 하기도 했다. 그런 정 바울라의 모습을 볼 때 그녀가 사형수로서 얼마나 세상 살아가는 것에 보람을 느끼고 싶어하는지를 환히 보고있는것 같았다.
정 바울라와 얽힌 이야기 하나를 할까한다. 「꼬마 짚신」(마메조리)이라 하면 대략 나이가 지긋한 사람이면 대부분 무슨말인지 알것이다. 이것은 우리나라가 왜 정치하에 있을때 사형수들이 짚으로 짜서 일반에 비싸게 팔곤 하던 것이다.
이 꼬마 짚신을 어린애 못낳는 여자가 갖고 다니면 아기도 낳고 사업이 안되던 사람도 사업이 잘된다고 당시 사람들은 믿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는 어떤 여자분이 내게 꼬마 짚신을 좀 구해달라고 간청해왔다. 우연히도 마침 정 바울라가 며칠전 종이에 싼「꼬마 짚신」을 내게 주면서 죽을 날이 얼마 안남아서 신부님께 선물 하려고 만든것이라고 말해서 받아두었던 터였다. 참으로 우연이다 생각하면서 부탁해온 부인에게 주었는데 그 후 세월이 한참 지난 뒤에 들려온 말에 의하면 그 부인이 어린애를 낳았다고 한다. 그때는 이미 정 바울라는 고인이 된 후였는데 나는 이 소식을 듣고 어린애 같이 선량하고 마음이 고왔던 그녀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기도 했다. 교도소 사형수들은 자매결연을 맺고 절친하게 지내는 신자를 갖고 있었는데 정 바울라에게도 친한 신자들이 있었다. 그런데 죽기 바로 전 주일에 신자들하고 만났는데 예부터 죽는것은 하나도 무섭지 않다고 말해온 그녀가『살고싶다』며 애원했다는 말을 들었다. 사형집행일이 결정되지도 않았는데 그녀는 이미 자기가 죽을 날이 왔다는 것을 예감했던 모양이었다. 사형수들은 죽을때가 되면 자연히 스스로 알게된다. 그것은 수감기간이 길어지면 어느정도쯤 지나 자기 차례가 올것이라고 추측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이 나에게 그녀를 살리는 방법을 모색해 보자고 제의해왔다. 정 바울라는 워낙 성세받을때부터 우리가 무척 애를 먹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그만큼 우리에게는 애착이 가는 사형수였다. 성품이 천성적으로 너무나 순박했던 그녀는 혼자 열심히 살기만 하면 된다고 단순히 생각했기 때문에 마음이 악한 사람을 입교시키는 것보다 더욱 어려웠던 것이다. 그런 바울라를 구하기에는 이미 때가 늦었다. 포기했던 항소를 다시 신청해보려고 사방으로 노력해 보았지만 벌써 항소기한이 3년이나 지난뒤였다.
막상 죽음 앞에서『더 살고싶다』고 애원하는 그녀에게 죽음준비를 잘하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던 심정은 언제나처럼 안타까울 뿐이었다. (계속)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