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양이 뭣 때문에 군청에 다녀야겠습니까, 저는 항상 이양이 걱정되었습니다. 손발이 시리지는 않을까 감기에 걸리지는 않을까 출퇴근길에 피로하지는 않을까 하고 말입니다. 이양 아버님 제발 이양을 더 고생시키지 마십시오. 제가 이양을 위하는 마음이 어느정도라는것 쯤은 더 안들으셔도 짐작하실 겁니다.』
아버지는 두눈을 껌뻑이면서 김계장의 얘기를 떠올렸다가 다시 처음자세로 돌아왔다.
『젬마야, 너는 아버지를 위해주고 싶잖느냐? 이런 각박한 세상에서 고생하고 살아갈 아버지를 말이다. 앞으로는 가구사업도 재미가 없어져 벌써 읍내에 세 군데나 더 생겨나지 않았느냐. 너는 시집가 버리면 그만이겠지만 동생들을 생각해봐』
그녀는 자리를 피해버리고 싶었다. 아버지의 얘기라는게 이토록 괴로움을 자아내게 할 줄이야.
『아버지, 저는 그만 물러가겠어요』
『안돼!』
아버지의 노한 음성이 귓전을 후빈다.
『대답을 좀 하란 말이다』
무슨 대답을 할 수 있을까. 강제결혼은 교회법에도 금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아버지는 딸에게 강제결혼을 시킬텐가.
『물론 너는 아버지를 교회와 연관시켜서 생각하고도 싶을꺼야. 그렇지만 그건 오산이다. 교회는 사람을 위해서 있는거야. 사람이 없으면 교회가 무슨 필요가 있어. 그리고 너는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는다면 아버지의 자식이 아닌거야』
그녀는 참을 수 없었다. 왈칵 울음이 복받쳤다. 그녀는 이렇게 말하고 자기방으로 가버렸다.
『김계장한테 시집가겠어요.』
친목계를 마친 어머님이 아버지의 얘기를 대충 듣고 딸의 방으로 돌아왔다.
시간은 자정이 가까워져 있었다.
그녀는 숨죽여 울고 있었으며 가슴아픔은 이루 말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어머니는 딸의 곁으로 다가갔다.
『젬마야 누워자니?』
그녀는 어머님한테 호소하고 싶어졌다. 어머님만은 이해해 주시리라.
『어머니 왜 이제오세요. 좀 일찍 오셨으면 이런 일은 없을것 아녀요.』
어머니는 금시초문이란듯
『으응 그래 좀 전에 무슨 일이라도 있었느냐?』
『예, 아버님이 절더러 김계장한테 시집가야 한다고 얼마나 윽박질렀는지 아세요?』
그녀는 다시 울먹였다.
어머니는 딸을 품에 안았다.
『그래서 시집가겠다고 했니?』
이미 어머님도 아버님과 기를 맞춘 모양이다. 그녀는 이것을 깨닫자 소름이 끼쳤다. 재빨리 어머님의 품에서 떨어져 나왔다.
『잘들 해보세요. 어머님도 별수없이 아버지를 편드시는군요』
어머니는 황급히 부인한다.
『너 왜 그런 섭섭한 소릴하느냐. 토마스가 좋으면 토마스한테 시집가면 될 것 아냐?』
그녀는 이 말을 믿고 싶었다. 그렇지만 토마스는 떠나버렸다. 토마스를 한번 더 만나볼까.
『어머니 그 말씀 정말이죠?』
그녀는 어머니 품에 다시 안겨들었다
어머니는 우선 딸의 말을 들어주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암 내가 언제 거짓말을 했니. 토마스는 장래가 유망한 사람이야』
그녀는 기뻤다. 어머니의 젖가슴에 손을 넣으며
『어머니 토마스는 시를 써요. 그리고 성실해요』하고 자랑처럼 얘기했다. 어머니는 시가 사람 살리는 것은 아니라고 알고있다. 그리고 토마스가 성실한 이유는 그네집이 가난하기 때문이라고 알고있다. 그런대도 딸은 토마스를 좋게 평가하고 있는것이다.
『그래 너는 토마스에게 너의 마음을 얘기해봤니?』
그녀는 낮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랐다. 간접으로 토마스에게 접근해봤을뿐 직접적인 얘기는 못해왔잖은가. 토마스는 순진하기 때문에 직접적인 것이 아니고는 성사가 없으리라.
『어머니, 용기가 안나서 얘기는 못해봤어요. 토마스도 마찬가지일 꺼예요』
『토마스가 너를 좋아하는게 분명하냐?』
『분명해요. 지난 여름에 장미꽃을 꺾어오기도 했는걸요』
『그러면 왜 토마스는 우리집을 그만뒀니?』
그녀도 그럴듯한 이유는 한가지밖에 없는것 같다.
『지난번에 아버님이 토마스를 몹시 꾸짖었어요. 토마스는 그때 나가게끔 되었지만 제가 말렸어요』
『오늘은 왜 말리지못했니?』
『그건 … 』
그녀는 그만 할말이 없어졌다. 토마스를 방에 끌어들인 얘기를 해야할까.
『어머니』
『무슨 짬이 있은게로구나』
『사실은 … 』어머니는 바짝 신중해진다.
『모조리 얘기해봐』
『토마스와 방에서 … 』
『이 애가!』
어머니는 얘기도 끝까지 듣지않고 흠찔 놀란다.
그녀는 침착하게 낮의 일들을 얘기했다. 다 듣고 난 어머니는
『알만하구나. 토마스는 너를 좋아하지 않는거야. 만약 방에서 무슨 일이라도 벌렸으면 너만 망신당할뻔했지』
그녀는 어머님의 말이 일리가 있는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토마스는 순진해서 그랬던 거예요』
하고 주석을 부쳤다.
『넌 진짜 순진하구나. 남자가 그토록 여자한테 손 한번 안대는데도 너는 순진 순진할테냐』
『그럼 어머니는 토마스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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