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의 내면적 구조- 흔히 신학에서 업적을 통한 계시와 말씀을 통한 계시를 구별하는데, 세상의 창조 사업은 업적을 통한 계시라 부르고, 아브라함에서 시작해서 그리스도에게서 절정에 달한 계시를 말씀을 통한 계시라 부른다. 스콜라 신학 용어에 따르면 전자는 자연적 계시, 후지는 초자연적 계시라 부른다.
초자연적 계시를 위한 출발점으로서 인간의 자연적 하느님 체험이 전제되며 인간도 자기의 본성상 저절로 하느님께 대한 체험과 깨달음을 자기 안에 포함하게 되어 있다. 하느님께 개방된 인간의 초월적 성격으로 인해 인간은 자기의 하느님 체험 이상으로 까지 인도된다. 그래서 신적 계시는 언제나 신적 주도권과 인간적 응답의 종합이다.
인간의 응답이 없는 신적 계시는 의미가 없다. 신적 계시라는 것은 인간적 언어들과 이미지들 안에 하느님의 육화가 일어났음을 의미하며, 구체적으로는 어느 한 시대의 문화 및 그 시대의 역사적ㆍ정치적 제도의 제약을 받게 되고, 그러한 한 계속에 일어난 하느님의 육화인 하느님계시의 내용도 그자체로는 불변하는 것이지만, 끊임없이 다른 언어들과 이미지들 안에 옮겨놓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계시는 언제나 모든 이를 향해서 개방돼있고 보편성을 띄고 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대자연에서 또 대자연을 통하여 이루어진 신적 자기계시를 다음과 같이 결론짓고 있다.『하느님은 이세상안에서 인식될 수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세상의 표면만 바라볼 뿐 아니라, 그 심층까지 꿰뚫어 보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거기서는 그 심층의 신비가 드러나고 있으므로, 세상과는 전혀 다른 그것, 즉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하느님은 대자연을 통해서 뿐 아니라 역사의 진행과정 안에서도 당신을 계시하고 있다(계시 2). 제 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신적 계시란 하느님의 당신에 대한 진술, 즉 하느님께 관한 가르침 및 진리라고 해석할 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성취하시는 진술, 즉 하느님이 당신을 가리 우고 있는 그 장막을 우리 인간을 위해서 걷어치우는 당신의 말씀이나 행동으로 해석 하고 있다.
이와 같이 신적 계시 사건과 자연적 창조 질서 상으로만 이루어진 역사적 사건과의 차이는 그 사건을 해석하는 하느님 말씀의 유무에 달려 있다. 역사적사건들이 자체로서 계시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며 이러한 사건들에 관한 단순한 담화가 계시를 구성하는 것은 아니다.
하느님의 해석하는 말씀 즉 예언적 해석에 의해 신적계시가 되고 예언자란 하느님을 대변하는 자이며 지금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의 의미를 전해주는 사람이다.
또한 업적을 통한 계시는 필연적으로 말씀을 통한 계시와 연결되며 성서 안에서도 말씀이 주된 역할을 하고 있다. 하느님은 이 말씀을 통해 당신의 구원사업을 시작하고 끝 마친다. 구약의 사제세계문헌에 의하면 하느님은 당신말씀은 이 세상을 완성하여 끝마치신다(묵시록22, 20) 아브라함과 모세에게는 부르며 인도하는 말씀으로, 예언자들에게는 약속을 새롭게 일깨우는 정화하는 말씀으로,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는 「사람이 되신」 위격적 말씀으로 나타나셨다.
말씀의 계시의 완성이신 예수 그리스도- 요한에 의하면 예수님은 당신의 위격자체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며(요한1, 14) 그분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지극히 사랑하시기 때문에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주신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요한3, 16), 그분을 보는 이는 하느님아버지를 보게 되는(요한14, 8~9)바로 그분이시다.
이와 같이 예수께 있어서 하느님의 말씀과 그분위격의 동일성을 통해서 예수는 계시자임과 동시에 계시된 자로서 주체와 객체(내용)가 하나를 이루시는 분이시다. 그러므로 부활한 예수 안에서 하느님의 자아전달과 인간의 하느님수용이 절대 극치에 이르렀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최종적이며 결정적이며 보편적의미가 있는 하느님의 자기계시이며 일반 및 특별구세사의 절대적 완성이다.
따라서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모든 사람들의 구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며, 이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구원될 수 없다.
또한 예수 안에 성취된 하느님의 자기계시도 그 전에 성서 안에서 그분을 증언하던 모든 계시들의 실현이며 완성이다.
예수는 당신이 계시자요 구원의 전달자라는 주장 때문에 단순히 모세 율법을 해석하는 랍비와는 달랐고 그는 예언자를 능가하는 인물이었다. 예수는 하느님 안에 하실 수 있는 죄의 용서를 베푸셨으며(마르2, 5), 그는 계시자요 구원의 중개자이다.
예수는 하느님의 계시를 전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다기보다는, 예수자신이 계시 자체가 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분이다. 예수는 하나의 사건이며 그분은 자신에 대하여 자기가 말하는 예언적 해석을 하고 있다.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 사귐의 극치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은 인간과 통교하면서, 어떤 종류의 사실을 이야기할 뿐 아니라, 하느님 자신의 살아있는 존재를 전한다. 계시가 무엇보다도 하나의 사건이지만 그것은 언어를 매개로 표현되어야 한다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말씀 사건은 말씀이 사람이 되신 사건으로서, 십자가와 부활과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는 창조 질서와 구원질서 둘 다의 핵심이며 절정이요 완성으로 이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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