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눈을 커다랗게 떴다.
『뻔하지 안그래? 너는 아직 남자를 경험해보지 못해서 그런걸 알게 뭐냐』그녀는 뭐가 뭔지 알 수 없어졌다.
『어머니 하여간 저는 토마스를 한번 더 만나보겠어요.』
『넌 속도없이 사내를 찾아서 이집 저집 기웃거릴꺼냐』
『명구를 시켜서 불러대면 될꺼예요』『명구가 네 심부름 하려고 우리집엘 다니냐』
『어머니 단 한번만』
그녀는 애원했다.
어머니는 자기의 미혼시절을 일례로 들수밖에 없어졌다.
『젬마야 어머니가 아버지를 만날때 어떡했는지 얘기할까? 』그녀는 듣고싶지 않았다. 어머니는 딸이 듣든 말든
『너의 아버지는 그 당시 명서기였어. 나의 맘에 들게뭐니 서로가 안면 뒷면도 없었단 말이야. 그런데 하루는 물을 길어오는데 마루에 장정같은사람이 앉아서 할아버지와 얘기를 나누고 있는거야. 내가 물동이를 이고 들어가자 냉큼 달려나와서 물동이를 내려주고 덥석 껴안지 않겠니 그리고는 청혼을 하러온 아무게요 하고 자기소개를 했어. 내가 거절할 수 있었겠니?』
그녀는 자기도 모르게 한숨이 흘러나왔다. 토마스보다는 김 계장이 적극적으로 접근해 오긴 하지만 어쩜 토마스는 그 모양일까 싶었다.
『젬마야, 여자가 남자한테 반하는건 아무짝에도 못쓰는거야. 가정불화란게 어디서 시작되는지 알어, 남자는 바람을 좀 피워도 가정은 흔들리지않아 그런데 여자가 바람을 피울때는 끝장나는 거야』
어머니는 친목계에서 제법 많이 들었던 모양이다. 계의 성격이란게 친목에 있긴해도 생활의 대화가 주 요지였다.
이 친목계는 매달 한번씩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열었다.
『어머니는 바람피울줄 모르세요?』
그녀는 퉁명스럽게 물었다.
『내가 바람 피웠다간 네 아버지께 맞아죽게』
그녀는 피씩 웃음이 나왔다. 어머니는 딸이 호전되었다 싶어서 처음 얘기로 돌아갔다.
『젬마야』
그녀는 가슴이 찔끔해졌다. 어머님이 이렇게 부드럽게 나오는게 십중팔구 짐작이 간다.
『또 김 계장 얘긴가요?』
어머니는 딸을 어린애처럼 꼭 껴안는다. 작전치고는 그럴듯하다.
『훌륭한 사위를 맞게 해다오. 김 계장이란 분을 말이야』
그녀는 어머니를 뿌리쳤다.
『가서 주무세요. 저는 피곤해요』
『이 애가!』
어머니는 빽 소리를 지른다.
옆방에서 아버지의 으르릉대는 기침소리가 난다.
그녀는 전신에 찬바람이 일었다.
『김 계장한테 시집갈테니까 그만가서 주무세요』
그녀는 어머님께 쏘아부쳤다.
『옳지, 그래야 내 딸이지』
어머니는 비로소 마음이 놓인다는듯 자리에서 일어선다. 그녀는 세상만사가 미워졌다. 공심판이라도 내렸으면 시원할것 같다. 도대체 부모님도 믿을 수가 없는 이 세상.
그녀는 이불을 둘러썼다. 토마스도 미워질 수 밖에 없다. 그 머저리같은 자식 어머니는 잘자라는 말을 남기고 옆방으로 갔다.
그녀는 엉뚱하게도 자살이라는 용기가 퍼뜩 떠올랐다. 옛날의 모든 열녀나 효녀들은 막다른 골목에 부딪히면 최고수단으로 죽음을 택했잖은가. 그녀는 자살 자살하고 무수히 뇌까려봤다. 그러나 결론은 교회의 가르침에 직립되고 만다. 자살은 하느님의 것을 탈취하는 것이라고. 때문에 교회법에 위배되는 것은 물론 공식적인 장례도 치뤄주지 않는다. 그것이 두려워서일까. 차라리 그것보다는 아버지의 위신을 생각해서라고 보는게 났겠지.
결굴 자살도 용납되지 않는것이다. 그렇다면 수녀원에 들어갈까.
그녀는 수녀님들의 해맑은 얼굴이 떠올랐다. 그 얼굴들 중에 꼭 한사람이 초점에 걸렸다.
바로 데레사 수녀님이었다. 2년쯤 전에 친했던 주임수녀님이 하필 이럴때는 생각난다.
그러니까 그해, 수녀원에 잠시 들어가서 처녀들이면 한번쯤 가져보는 수녀가 되고싶은 마음을 털어놓았다. 말벗이 되어준 데레사 수녀님은
『하느님의 소명없이는 안될꺼예요.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지원해오지만 한 달이나 두 달쯤 되면 마치 구멍뚫린 그릇에 물부어 둔 것처럼 새어버리고 없어요. 젬마씨가 수녀가 되고 싶으면 꼭 한가지 길은 있어요. 그것은 여러사람을 구하기 위한 희생 그것이예요』
그녀는 또 한숨이 풀려나왔다.
우선 자신의 처지가 위급해서 수녀원을 생각해보는 한갖 현실도피. 그녀는 수녀원도 해당되지 않는 사람이었다.
그만 김 계장한테 시집가 버릴까? 아 성모님 어떻게 해야 하나요. 그녀는 머리가 갈라지도록 생각해봤다. 일생을 결정짓는 이 순간에 참여한 오직 한 사람은 자기였다.
그녀는 마침내 한가지 묘안을 생각해냈다. 토마스를 차지하기 위해서는 이 길밖에 없을 것 같았다. 그녀는 책상 서랍을 열어 종이와 펜을 꺼냈다. 그리고는 이렇게 적었다. 「토마스씨 저를 구해주세요. 부모님께서 아주 교활한 남자한테 저를 맡기려고 해요. 저에겐 충분한 돈이 있으니까 토마스씨와의 생활비는 걱정하지 않아도 될꺼예요. 이 글을 읽는 즉시 가방을 하나 준비하셔서 저의 방 창문 밑으로 저번처럼 와주셔요. 자세한 얘기는 만나서 하겠어요. 당신을 원하는 젬마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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