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가톨릭교회에서는 아직까지 이른바 구교우 특성이 존재한다. 그 특성에는 장점과 단점이있다. 장점으로는 신앙심과 순명의 겸허가 체질속에 정서화 되어있는 것이며 단점으로는 신앙을 의식하고 표현하는데 있어 안이하고 타성적이라는 것을 지적할 수 있을 것 같다.
홍윤숙 시집「타관의 햇살」에는 이 안이와 타성이 없다.
그가 이미 지난날에 펴낸 네 권의 시집에서보다 이번의「타관의 햇살」이 신앙의 밀도를 담고있다. 그러나 이번에도 그 표현양식에 있어서 살펴보면 다분히 우회적이고 동시에 자의식을 무르익히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시를 자연발생적 읊조림으로부터 지성적 의식으로 발전케한 근대 모더니즘의 시법에 가까운 것으로서, 성당안을 소재로 한「카인의 기침소리」를 포함하더라도 시집「타관의 햇살」에서 굳이 가톨릭시 또는 종교시를 강조해서 보아야 할 것인가 하는 데서부터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런 경우를 빌어 우리는 이른바「가톨릭 문학」의 정의문제를 둘러싼 몇 가닥의 갈등속에서 정돈의 실마리를 간략하게나마 모색해 불만하다고 생각된다.
대체 작품이 가톨릭적이려면 어떠해야 하는가. 「가톨릭적」이라는 것의 뜻이 무엇일까, 제2차「바티깐」공의회 결정사항중「비그리스도교에 관한 선언」은「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당신과 화해시키셨음」을 상기하면서 타종교 안에있는 옳고 성스러운 것과 지역사회의 문화적 가치를 거짓없이 존경한다고 하였다. 동시에 크리스찬들은 다만 그리스도교적 생활을 증거해 나가야 한다고 하였다.
또 현대의 탁월한 가톨릭 신학자 요셉 랏싱거는 말하기를『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들만이 구원을 얻기 때문에 그리스도 신자인 것은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인 것은 역사를 위해서 그리스도적 봉사가 의의를 지녔고 또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이와 같은 강령과 사상은 가톨릭을 페쇄적 편협성으로부터 구출해 준다. 그리고 이것은 가톨릭 문학을 한결 자유스럽게 해준다. 즉 교조주의적이고 도식적인 호교문학으로부터 벗어나 가톨릭 문학을 세상의 문학일 수 있게 해준다.
그러면 일반사회의 문학과 가톨릭문학의 구분점이 무엇이냐 하는 문제가 생길것이다. 필자의 견해로서는「나쁘지 않은 작품으로서 가톨릭 신자가 쓴 것」은 가톨릭 문학이라고 보고싶다. 원래 하느님을 닮아서 창조된 인류는 각자 안에 하느님 정신의 지체인 인간본성을 지니고 있으며 그 인간본성을 훌륭하게 형상화한 작품이면 넓은 의미에서 볼 때 가톨릭 문학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싶다. 원죄에 대한 인식마저도 현대신학은 그것이「격리된 개인의 생물적 유전이 아니고 역사에 전혀 감염되지 않은 원초의 완전한 상태에서 출발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으로 해석하고 있음에 따라 가톨릭의 보편주의적 사상은 더욱 촉진되어 있다. 이렇게 볼 때 가톨릭 문학은 작품의 근원이며 주체인 작자가 신자라는 요인을 제하고서는 일부로라도 가톨릭의 렛델을 빈번히 표면에 내붙이지 않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하게도 된다. 우연과 필연을 넘어서서 이러한 각도에 매우 접근되어 있는 것이 홍윤숙의 시세계이다.
홍윤숙의「타관의 햇살」은 한국문단에서 우수성이 평가되어 75년도 한국시인 협회상을 받은 작품이다. 이 시집 속에서 작자는「일상」과「시간」의 의미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는 남은 날을
한조각 구름이 되어 자유로이 흐르다.
해바라기 탐스런 꽃잎에 앉아
화려한 웃음소리 햇빛타는 소리를
잠잠히 듣고
잃어버린 시간의 유실물을 찾아
조용히 꽃잎을 뒤집어 보는
아룸다운 시간을 갖지 않았는가.
<「타관의 햇살」1에서 >
여기에는 이미 지나간 시간속의 손실을 아파하면서도 오늘의 삶을 은혜로움으로 감지하는 마음이 들어있다. 그러면서 또한「남은 날」을 의식하는 것이다.
삶의 남은 날에 대한 의식의 끊임없는 흐름이 이 시인으로 하여금 현세를 타관으로 느끼게 한다.
우리는 아직 객지에 있고 며칠이면 귀향의 저녁마차가
이 마을 어귀에 도착할 것이다<「타관의 햇살」6에서>
「자연의 과실이 땅으로 가는 것을 보면서」이 시인은 인간의 생명과 영성의 열매가 찾아갈 영원을 의식하고 있다. 이러한 일상의 의식속에서 이 시인은 은혜도 느끼지만 자주 우수와 실의를 드러내고있다.
아무도 웃지않는
쓸쓸한 아침식탁
싸움도 없는 미움과 이별 공허한 기도와
말씀들이 나날을 일식하는 물을 돌아
고독한 하오의 바다로 간다
하루의 낙시끝에 걸리는 실의
<「희망」에서 >
이 우수와 실의는「미래의 행복을 계약하는 얼마간 슬픈표정의 인인들과 함께」성당에 모여있을 때에도 좀처럼 잘 해소되지는 않는다.
시집 속「카인의 기침소리」1 ㆍ 2는「성스러움」과「신의 실재」가 일상의 감각과 회당의 장치에 좀처럼 친화되어 들어오지 않음으로 해서 발생하는 생소함과 어색함의 갈등을 드러내고 있다. 그것을 가리켜「카인의 기침소리」라 하여 또한 가책과 실의를 되풀이 하고있다.
본질과 영원의 세계를 들여다 봄에 있어서 생소하고 달화감을 느끼는 것은 이 시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다 우리들 세속의 인간들에게 있어서 어쩌면 이것은 범상한 감정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회의와 갈등을 극복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의 공통된 과제가 되기도 할 것이다. 이 점에 있어서 우리는 의식하고 알아내고 구하는 지향에서 한번 방향을 바꾸어 전체로부터 여겨지는 나, 원래 선사받은 삶임을 알도록 하자는 논리체계를 맛들여보는 노력도 요청되는것 같다.
시집「타관의 햇살」은 전제도 없고 해답도 없는 상태에서 인간의 적나라한 의식이 신과 영원에 친화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뇌를 풍성히 지니고 있는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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