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의 번영과 교회발전을 위해 지칠줄 모르는 인내로 심혈을 쏟아온 교황 바오로 6세가 21일로 등극 12돌을 맞았다. 78세란 고령에도 아랑곳 없이 갖은 긴장과 쟁투가 모든 전통을 뒤흔드는 역사의 흐름속에서 교황은 양 어께에 밀어닥치는 거센물결을 조심스레 헤치며 오늘에 이르렀다.
과거 어느때보다 급박한 세계정세속에서 제2차「바티깐」공의회 이후의 복잡한 교회를 이끌어온 교황의 재임 12년은「종들 중의 종」으로서 힘겹고 고통스런 나날이었으리라. 교황으로서 가진 첫 공식성명을 통해 바오로 6세는 핵시대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필요와 열망에 부응키 위해 선임자 요한 23세의「현대 적응책」을 충실히 수행할것을 다짐했다. 교황의 이 같은 정책은 벽두부터 교회 내부에서 많은 비난과 공격을 받았으나 바오로 6세는 자기나름대로 선임자가 시작한 일을 계속 굳게 다져왔다. 교황으로서의 재임 12년동안 바오로 6세는 세계와 교회를 위해 수많은 업적과 공헌을 남겼다. 역대 교황들 가운데 바오로 6세는 교황이「바티깐의 포로」라는 전통을 깨트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사도 성베드로 이래 처음으로 성지를 방문했으며 대서양을 건너 미국 남미 아프리카 극동 등지를 순방한 첫 교황이기도 했다. 세계 어느곳을 가든 바오로 6세의 최대 관심사는 세계의 평화와 인류의 발전 그것이었다.
1965년 10월 5일 UN본부를 방문한 교황은『전쟁은 종식돼야 한다. 또 다시 전쟁이 일어나서는 안된다』고 전세계에 호소하고 분쟁지역들의 조속한 화해를 재삼 촉구했다.
교황은 또 정의와 형제애에 입각한 평화만이 인류와 세계를 위한 진정한 평화임을 환기시키고 자신이 친히 가난과 질병과 무지로 억눌린 수천만 무력자의 대변인으로 발벗고 나섰다.
1967년 3월 발표한 자의교서「제 민족의 발전」을 통해 바오로 6세는 자유방임적 자본주의와 무신론적 물질주의가 둘 다 세상에 악을 증가시킨다고 경고하면서 강대국들의 약소국과 개발도상국들에 대한 원조와 공동발전을 수차 요청했다.
특히 교회의 사명이 이데올로기를 달리하는 공산주의자들을 배척할수 없다는 신념에서 바오로 6세는 공산국가들에도 과감히 문호를 개방했다. 1964년 8월 6일 교황 등극후 처음으로 발표한 회칙「하느님의 교회」에서 바오로 6세는 바로 이를 천명했다. 교황의 이 같은 노력은 헛되지않아 1971년 3월 공산국가 원수로서는 최초로 유고의 티토 대통령이 교황을 방문했으며 그 후 소련의 포드고르니 체코의 초세스 쿠수상 등이 교황과 한자리에 앉아 세계평화를 위한 대화를 나누기에 이르렀다. 공산국가들과의 문호개방은 그 후 계속 진전돼 오늘에 와서는 거의 모든 공산국들과 성청과의 외교관계가 활발히 진행되는 큰성과를 가져왔다.
바오로 6세의 치적 가운데 빼놓을수 없는것은「로마ㆍ꾸리아」(교회 중앙행정기구)를 국제화시켜 과거「로마」일방적 통치형태에서 각 지방 교회에 통치권의 범위를 확대시켰으며 이태리 충신 성직자들의 독무대가 돼왔던 성청요직에 비이태리인들을 대거 등용시킨 점이라 하겠다.
이와 곁들여 타교파간의 관계 개선 내지는 교회 일치를 위한 바오로 6세의 노력은 과거 어느 교황과도 비교할수 없으리만치 독보적인 위치를 굳혔다 하겠다.
1964년「예루살렘」성지순례와 때를 같이하여 이뤄졌던 고 아테나고라스 1세 총대주교와의 양교분리후 9백여년만의 해우를 선두로 이듬해엔 전세계 성공회 지도자인 램지 대주교와 만나 양교간의 우의를 두텁게하고 상호일치를 모색키 위한 국제신학위원회를 구성, 현재 괄목할만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이어 70년 5월에는 전 아르메니아 수좌 총대주교 카톨리코스 바즈켄 1세와「시스틴」경당서 평화의 인사를 교환함으로써 1천5백년간의 단절의 벽을 허물었으며 73년 5월에는 콥트정교회암바 세누다 3세가 교황과 15세기만의 역사적 상봉을 이룸으로써 십수세기간의 단절에 종지부를 찍기도 했다.
바오로 6세는 무엇보다「바티깐」공의회 이후의 복잡하고 다소 질서가 문란한 과도기적 교회를 이끌어오면서 수많은 비난과 참기 어려운 고통을 당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이나 교리ㆍ전례 등 예를 들면 회칙「사제독신」이나 알약을 포함한 모든 인공피임법이 신법에 위배됨을 재확인한 회칙「인간의 생명」등이 발표됐을때 바오로 6세는 교황의 무류성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을 받을만큼 무거운 십자가에 채찍까지 맞아야만 했다.
결코 화려하고 찬란한 황제가 아닌「종들 중의 종」으로서 바오로 6세는 등극 12돌을 맞은것이다.
어떻게 보면 바오로 6세는 역대 교황들 가운데 특히 운이 많은 교황인지도 모른다. 비록 선임자 요한 24세가 소집하긴 했으나 그 뒤를 이어받아 바오로 6세는 약 1세기에 한번 열릴까 하는 공의회와 매 25년에 한번 맞는 성년을 몸소 주도하고 반포했다.
뿐만아니라 교황은 정의와 평화를 갈망하는 세계 인류의 추앙받는 지도자로 군림하기에 이르렀다.
그런 반면 교회 일각에서는 오래전부터 바오로 6세의 은퇴설이 꾸준히 나돌고 있다. 그것은 바로 78세란 고령으로 인한 그의 건강도 문제이려니와 교황에 부과된 직무가 너무나 중차대하다는데도 그 원인이 있는것으로 풀이된다.
어쨌든 이세상을 복음화하여 모든 인류 가족을 하느님께로 인도해야 할 교황의 십자가는 어느때보다 더욱 무거운 것임엔 틀림이 없을듯하다.
바오로 6세가 짊어진 십자가의 무게를 다소나마 덜어드리기 위해 기도와 희생이 뒤따라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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