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울라가 사형 집형된 것은 작년 성탄 3일후인 12월 28일 이었다.
12월에 들면서 나는 서울대교구 내에 있는 9개의 교도소와 구치소들을 방문키 위해 교도소 후원회원들과 함께 모금운동을 벌이려던 참이라 성탄전에 혹시 못만날 것 같아 일찍 찾아보았다.
평상시 바울라는 푸른 죄수복을 입지않고 으례 흰치마저고리로 나를 맞곤 하였다.
바울라는 한 서너벌 치마저고리를 가지고 있었는데 한 벌은 어떤 신자가 입으라고 넣어주었고 또 한 벌은 KAL 여자 탁구선수들이 넣어주었고 혹가다 재판에서 무죄나 집행유예로 나가는 같은방 사람들이 준 몇 벌의 한복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은 왠일인지 푸른죄수복으로 나왔다.
『왜 치마저고리 안입고 나오셨오?』
『빨아서 두었어요』
바울라는 조금 웃는듯 대답했다.
나는 별 생각없이 대답을 들으며 한벌뿐은 아닐텐데 하고 성체를 영해주었다.
여사(女舍)에는 10년 이상이나 전교를 해온 김 요한나 교사가있다. 바울라가 바로 요한나씨에게 교리를 배웠고 그의 주선으로 신자들과 자매관계를 맺으며 그곳 생활을 해온 터였으므로 항상 그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여사를 나오면서 요한나는 요사이 바울라가 이상해졌다는 것이다.
며칠전에 가지고 있던 옷을 전부 간첩 사형수인 여자에게 다 주었다는것이다. 이 간첩 사형수는 바울라보다 약 일년 늦게 이곳에 들어왔지만 교리는 물론 교회단체에서 찾아주는 위로파티(파티라야 우습게 사과ㆍ과자ㆍ콜라ㆍ노래 등이지만)에도 거부하는 전형적 공산주의자였다. 그래도 바울라는 자기와 같은 처지여서 먹을것도 남겨두었다가 주었고 입을 것도 여유가 있으면 나누어 주곤 했었다.
그녀가 그렇게 공산주의에 철저했지만 그러나 바울라는 끝까지 그녀를 우정과 신앙으로 설득시켜 보려했다.
바울라는 사형수이기 때문에 어느 여자 수감자도 하지 못하는 말을 경우있게 잘 건의하여 여교도관들로부터 골머리(?)를 앓게했는데 요사이 갑자기 조용해졌다는 것이다.
바울라를 마지막 만난것은 12월 26일 그러니까 집행되기 이틀전이었다.
바로 26일 이날도 집행이 있었고 더욱이 그 간첩 사형수가 의외로 먼저 처형되고 말았던 것이다.
나는 바울라가 크게 심적으로 타격을 받아 동요되지나 않을까 걱정하며 만났는데 생각보다는 조용했다. 오히려 딴때보다 비장한 각오로 이기려는 모습을 볼수 있었다.
나는 한편으로는 안심하며 내일 죽어갈 바울라를 혼자 마음 아프게 바라보았다. 내일 죽는다는 것을 지금 이 자리에서 안다면 어떻게 될까?
이튿날 네 명이 집행되었는데 바울라는 마지막 차례였다.
사형집행이 일년이면 서너 차례 있지만 여자는 드문편이므로 다른때보다 좀 많은 교도관이 입회를 했다.
지금도 그날 바울라의 모습은 가끔 내 시야에 그려지곤 한다.
『바울라씨, 잘 준비하오. 오늘 괴로움을 이기면 반드시 성모님이 도와주실거요』
『신부님, 저는 벌써부터 이 세상을 살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서 항소도 포기했던 거예요』이빨이 서로 마주쳐 더듬거리며 말을 했다. 그래도 바울라는 자신이 떨고있다는 것을 의식했던지
『그러나 나도 사람입니다. 떨리는 것은 어쩔수 없죠』
나는 마지막까지 솔직한 구태여 태연한척 하던 많은 사형수에게서 느끼지 못한 그 무엇을 느끼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바울라는 곧 사형대에 섰다. 검사는 그에 대한 인증심문을 끝내고 나에게 시간을 주었다.
바울라는 조용히 견진성사를 받고 성체를 영했다. 언제나 평상시처럼 성체를 모셨지만 다른것이있다면 소리를 내어 울던 그녀가 오늘은 아무소리없이 눈물만 주르르 흘리며 조용히 죽음을 기다렸다.
지금 그녀의 묘지는 세종로 천주교회 묘지에 다른 사형수들보다는 조금떨어져 외로이 묻혀있고 KAL 여자 탁구선수들이 세워준 비석만이 오늘도 외롭게 바울라를 대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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