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로사는 시복 수속을 위한 교황청 조사록에서 그의 부친 장 요셉의 생애에 관하여 상당히 상세한 증언을 남겨놓았다. 장성진은 서울사람으로 한강변 서강에 살고 있으면서 와우산 밑에 있던 광흥회(이조때 관원의 녹봉에 관한 사무를 맡아 보던 관아)에서 일하며 살아나갔다. 그러나 미구에 상처한 그는 일자리마저 잃게되자 교우이던 그의 외숙모가 한때 그를 부양했다. 이어 재혼하였으나 다시 상처하였고 이래 약국에 취직하여 약방주인의 장사를 도왔다.
그의 성품은 양선하고 온화했던 반면에 곧고 강직하기도 했다. 본래 외교인 가정에서 태어나 나이 30여세의 중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성교 이야기를 듣고 예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돌연 천주강생의 신비에 관해 천주가 사람이 되었다느니 동정녀에게서 태어났다느니 하는 점에 의심이 생겨 끝내 풀지 못하자 점차 신앙의 취미를 잃고 냉담하게 되었다. 그리고는 다시 외인 친구와 상접하고 세속정신에 물들어 조만_신공마저 궐하였고 오로지 잘살고 돈벌 생각 밖에는 하지않았다.
이렇게 신앙의 유혹에 빠진 그를 회두시키려고 여러 교우들이 찾아가 권유해 보았으나 허사였다. 그런데 하루는 한 유식한 교우가 결국 그의 의심을 풀어주는데 성공하므로 성진은 완전히 회두했다. 이래 그는『내가 전에 냉당한 것은 전혀 세속을 사랑한 때문이다』고 하며 과거의 잘못을 깨닫고 다시 열심해지고 규구를 지키기 시작했다.
뿐더러 세상의 유혹을 일층 효과적으로 피하려는 뜻에서 요셉은 외인과의 접촉을 일체끊고 두문불출, 기아와 추위도 아랑곳없이 오로지 기도와 묵상에 종사했다. 집안 사람들은 빈궁으로 이 같이 고통받는 것을 걱정한 나머지『이전처럼 출입도 하고 몸도 좀 돌본다고 해서 무엇이 나쁘겠는가』고 외출을 권해 보았지만『나의 지난날의 죄가 오로지 의식을 풍족히 하려는 욕망에서 왔던 것이므로 포식난의하여 죄를 다시 짓느니 차라리 주님과 추위를 택하려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 세상 잠시 고로움에 견디어 냄으로써 사후 천국에 가서 영원한 복락을 누리면 이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니겠는가』고 변호하며 조금도 굽히려 들지 않았다. 이렇듯 그의 굳센 정개와 독실한 수계생활에 모두가 경탄해 마지않았다.
마침내 1838년 4월에 영세와 견진을 받았다. 기해년 박해 시초에 이미 잡힌 약간의 교우들의 불굴의 신앙에 감격하여 요셉은 돌연 자헌할 뜻이 간절해져서 대부를 찾아가 상의했다 그러나『주명을 기다릴 것이오 자기의 힘을 믿을것이 못된다』는 대부의 만류로 일단 중지하고 주명을 기다리기로 했다. 그 후 군난이 치성해질수록 흑형에 굴하지 않는 교우도 점점 많아지는 것을 목격 한그는 순교를 사모하는 마음이 날로 더해감을 억제하기 어려웠다.
4월 6일(5ㆍ18) 그의 소원이 성취되는 날이 왔다. 요셉의 딸 장 로사의 증언에 의하건데 로사의 시동생의 고발로 아버지가 포졸들에게 잡히게 되었다는 것인데 과연 며칠후 로사 자신이 아버지 집으로 달려가 하녀로부터 아버지가 잡히던 당시의 정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포졸이 달려들었을때엔 마침 요셉이 염병을 앓고 있었으므로 포졸들이 그를 가마에 태워 끌고가려 했다. 그러나『나 같은 죄인이 감히 교군을 타가 가다니』하며 결국 가마를 마다하고 스스로 걸어가는 겸손의 모범을 보였다. 옛날 그와 친하던 외국친구들이 걸어서 포졸들을 따라가는 요셉을 보고 쫓아가며『자네가 이렇게 될줄이야 누가 생각했겠는가』이렇게 그 경상을 슬퍼하고 세상복락으로 꼬였고 포졸들 역시 만단으로 유인했다. 요셉의 성품의 아름다움과 그의 생명을 아깝게 여긴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나 요셉은 표졸을 향하여 천지만물을 만드신 대주 계시므로 사람들은 마땅히 그분을 공경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은 우리를 생양보존하시고 천당 지옥으로 선악을 상벌할 것이므로 어찌 내가 잠시 생명을 사랑하여 영원대사를 그르칠 수 있겠는가』고 대답했다.
포졸들은 거의 한나절 동안이나 그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이 같이 괴롭혔으나 요셉의 대답은 항시 분명하고 추호도 허약의 빛이 보이지 않았다. 부득이 포청에 가두었다.
옥에서 밤새토록 형벌받기를 고대했으나 날이 새기까지 아무 기별이 없자 요셉은 궁금하고 답답하여 큰소리로『죽어 마땅한 사람을 잡아다가 고문도 하지않고 내버려두는 법이 있는가』하고 여러번 외쳤으나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감방 밖으로 나와 더욱 큰소리로 외치니 때마침 지나던 포청의 종사관이 그 소리를 듣고 하인더러 그 연고를 물었다. 『병자가 열로 인해 헛소리를 하는 것입니다』라는 하인의 대답에 요셉이『병에서가 아니오. 진정에서입니다』고 대꾸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다시금 감방에 가두어 버렸다.
얼마 후에 포장이 불러 문초하였다. 이때 요셉은 도리를 강론하여 형벌을 용감히 이겨냈다. 만단으로 괴롭힌 다음 치도곤 20도를 때렸다. 형리의 온갖 술책도 혹독한 고문도 종시 그의 뜻을 굽히지는 못했다. 감옥으로 돌아와서 즉시 절명했다. 때는 4월 24일(6ㆍ5)이오 나이는 54세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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