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 낯선 땅에 온지 어언 50년. 일제 탄압 8ㆍ15 6ㆍ25 등 온갖 역사적 고난을 우리와 함께 하면서 선교활동을 펴온 기후고 신부(75HUGH CRAIGㆍ奇厚根)가 지난 5월 31일 임지인 충북 장호원 본당에서 사제서품 50주년을 맞는 금경축 축하식을 가졌다.
1899년 미국「미네소타」주에서 출생「뉴욕」메리놀 대신학교를 마친후「워싱턴」가톨릭대학서 신학사 학위를 받고 1925년에 서품된 기 신부는 그해 10월에 평안남도 영유읍 온산본당으로 부임되면서 이 땅에 발을 딛게 되었고 이젠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되었다.
『6ㆍ25 동란때 거제도와 부산 포로수용소에서 군목으로 있을 때의 일은 잊을수가 없다』며 기 후고 신부는 지난 날들을 회상한다. 당시 포로수용소에 수용된 사람은 17만명이었다. 이들 속에서의 전교활동의 결실로 신부 2명과 수녀 1명이 탄생한 것은 말할 수 없는 기쁨이었다고 말한다. 요즘은 가끔 길거리를 지나갈때 모르는 사람이 인사하며 수용소 시절을 회상하여 반가워 하기도 한다고 말한다. 이때부터 약 5년간 군복무를 하면서 이룩해 놓은 업적이 있다면『교리 통신제도를 시작한 것』이라고 흐뭇해한다. 군인들이란 이곳저곳에서 국토방위 임무를 수행하느라고 한군데 모아놓고 교리를 가르칠 수가 없는 어려움이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엽서를 통한 교리교육을 했는데 그 결과가 좋았을 뿐더러 현재 CCK에서 이것을 이어받아 10만명의 예비자를 대상으로 대부분을 영세시키게 되었다며 만족한 표정을 짓는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언어장애』였다고 말하는 기 신부의 한국발음은 아직도 서툰편.
옛날에는 한국말을 잘 못한다고「양코백이」「서양마귀」라고 놀리기도 했다고 한다.
『요즘은 조용한 사제관에서 집필을 하는것이 낙이예요』라고 말하는 기 신부는 현재 성경에 관한 책을 쓰고 있고 60여 종의 교리문답 등을 한국어로 번역하거나 직접 쓰기도 한다. 지난날 인천 등지에서 임지가 바뀔때마다 책을 한권씩 썼다는 기 후고 신부는『교우들이 성경을 읽음으로써 영혼이 살찌게 된다』는 생각을 한 후로 성경을 중심으로 집필을 시작하게 되었다고 설명한다.
『내가 50년동안 수고를 아끼지 않은 것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뜻이 내 힘보다 더 위대했기 때문입니다』라고 기 후고 신부는 겸손해 했다. 처음 한국에 왔을때 사람들이 업신 여기는 것을 예수의 수난을 본받아 인내해 왔더니 이제는 외인들까지도 높이 공경하게 되었다며 흐뭇한 표정을 짓기도한다. 새로 한국에 들어오는 선교사들에게『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본받아 남에게 진리를 전할때 천주교 신부들은 외인에게도 존경받을 있어야 할 것』이라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가장 많이 본 기사
기획연재물
- 길 위의 목자 양업, 다시 부치는 편지최양업 신부가 생전에 쓴 각종 서한을 중심으로 그가 길 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사목 현장에서 겪은 사건들과 관련 성지를 돌아본다.
- 다시 돌아가도 이 길을한국교회 원로 주교들이 풀어가는 삶과 신앙 이야기
- 김도현 신부의 과학으로 하느님 알기양자물리학, 빅뱅 우주론, 네트워크 과학 등 현대 과학의 핵심 내용을 적용해 신앙을 이야기.
- 정희완 신부의 신학서원어렵게만 느껴지는 신학을 가톨릭문화와 신학연구소 소장 정희완 신부가 쉽게 풀이
- 우리 곁의 교회 박물관 산책서울대교구 성미술 담당 정웅모 에밀리오 신부가 전국 각 교구의 박물관을 직접 찾아가 깊이 잇는 글과 다양한 사진으로 전하는 이야기
- 전례와 상식으로 풀어보는 교회음악성 베네딕도 수도회 왜관수도원의 교회음악 전문가 이장규 아타나시오 신부와 교회음악의 세계로 들어가 봅니다.
- 홍성남 신부의 톡 쏘는 영성명쾌하고 논리적인 글을 통해 올바른 신앙생활에 도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