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들이 적당히 대답을 했다. 그녀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얘들아? 며칠후가 아니야 여덟시 후에는 시집간거야』
그녀는 동생들이 무척 귀엽게 생각되었다. 이 일이 성취되면 동생들에게 커다란 선물을 안겨줄 생각이었다.
다시 어머님의 목소리가 들렸다.
『여보 애가 몹시 수심에 잠긴 모양이죠? 간밤에 꾸짖지는 않았나요?』
아버지의 투박한 목소리가 뒤이었다.
『그만한 나이에 그런걸 이해못할라구. 다 저 좋게 해줄려고 그런거지』
그녀는 귀를 기울이고 있다가 쳇소리를 내었다.
동생들은 모두 학교에 가버린 모양이다. 책가방을 마루에 덜컥거리다가 마침내는 조용해졌다.
이제 옆방에는 두사람만이 남았다. 목소리도 은밀해졌다.
『애가 마음 변하기 전에 일을 서둘러요. 군청에 전화를 걸면 되는게 아녀요』
『나도 그럴 생각이오. 점심시간쯤이나 해서 불러내야지』
『여보, 이번엔 다방같은델 갈 것 없이 집으로 불러들여요. 애와 맞선을 보이고 혼사날만 정해버리면 그만 아녀요』
『하여간 그것은 알아서 할테니까 당신은 애를 잘 구슬러요』
『이미 애는 맘먹고 있을꺼예요. 내게도 김 계장한테 시집가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녀는 바짝 귀를 곤두세우고 모조리 캐들었다. 부모님이 의외로 일을 일찍 서두를 줄이야 참으로 간밤에 이같은 계획을 세우지 않았다면 속절없이 함정에 빠질뻔했던 것이다. 그녀는 가슴밖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불었다. 옆방에서는 얘기가 더 계속되었으나 너무 적은 소리라서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들어봤자 그 말이 그 말인 것이다.
시계는 드디어 여덟시를 손짓했다.
그녀는 다시한번 성모님께 기도를 했다. 만약 상본이 성모님의 실체였다면 속이타서 못 듣고 있을 지경으로 그녀는 간절히 기도를 했던 것이다. 그녀는 기도를 끝내자 창가에 다가앉았다. 커튼을 한켠으로 조금 제치고 창밖을 내다보기 시작했다.
직공들 중에 명구가 제일 먼저 출근했다. 이날도 명구는 제일 먼저 출근하리라. 일찍 잠을 깬 새는 행복을 물어온다고 했다. 명구는 행복을 안겨다 줄것인가.
그녀의 눈에 진열실의 잘 정돈된 가구들이 이날은 더욱 돋보였다. 명구는 공장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가구의 먼지를 털었다. 이날도 그러리라.
「젬마」
그녀는 느닷없이 문이 들컹하는 바람에 하마트면 비명을 지를뻔했다.
아버님이 부르고 있었다.
『네 아버지』
그녀는 문고리가 풀릴까봐 얼른 발소리를 죽여 다가가서 문고리를 꼭 눌렀다.
『문을 잠갔느냐?』
『저어 속옷을 좀 … 』
『아, 알겠어. 오늘 오전중으로 손님이 찾아올테니까 집 소제 좀 잘해. 그리고 너도 목욕을 좀 하고 와』
제법 위엄스럽게 시켰다.
그녀는 더욱 부드러운 목소리를 내었다.
『네, 잘 알겠어요. 아버지.』
딸의 목소리가 의외로 고분고분하므로
『오늘은 아버지가 젬마의 시키는 일을 좀 해주마』
하고 기분좋게 말한다.
그녀는 번개같이 한 묘안이 떠올랐다.
『아버지』
『응』
『저어 부탁 하나 들어주시겠어요?』
『암 들어주마』
『결혼생활이란 신간서적을 한 권 사주시겠어요?』
『허허 자식도』
아버지는 대단히 흐뭇하게 말한다.
그녀는 더욱 부채질을 했다.
『저는 그 책을 보지 않으면 그분한테 바보취급 당할꺼예요. 결혼생활에 대한 모든 … 』
아버지는 더 들을 필요없다는 듯.
『알겠다. 내 지금 당장 사주마』
그녀는 재빨리
『아직 그 책이 읍내 서점에는 없을텐데 언제 들어올지 … 』
역시 더 말 안 들어도 알겠다는 듯
『L시에 가면 당장 구할 수 있을꺼야 넌 아무 염려말고 시킨대로나 잘해』
『감사해요 아버지』
『오냐 오냐』
아버지는 쇠뿔도 단김에 빼렸다는 식으로 옆방에 들어갔다.
『여보, 나 L시에 좀 다녀올테니까 직공들 나오면 일 좀 잘 시켜요』
어머니는 다 듣고 있었으므로
『어쩜 애가 하루밤 사이에 효녀가 되잖겠어요』하고 수선을 떤다.
그녀는 속으로 통쾌해서 죽을 지경이었다. 아버지는 외출복 차림을 하고는
『외투를 좀 내주오』어머님께 시켰다. 그녀는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모든 공든 탑들이 연쇄반응을 일으켜서 와그르르 소리를 내었다.
그녀는 성모님을 불렀다.
『외투를 입을 필요있겠어요. 오늘은 날이 따뜻하다고 일기예보에서 그랬어요』
어머님이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들 그녀는 산송장이 되었을 것이다.
『음 그까짓 잠깐 다녀올꺼니까』
아버지는 뚜벅뚜벅 발소리를 내고 밖으로 나갔다. 아직 안심 놓을 수는 없었다.
나머지 한사람의 적.
어머님은 딸을 대신해서 집소제를 할 모양이다. 벌써 마당에 비질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녀는 다시 머리를 움켰다.
이때 흥얼흥얼 콧노래가 들려왔다. 바로 명구의 출근이었다.
그녀는 반사적으로 몸을 날려서 창가로 다가갔다. 그리고는 소리 안나게 창문을 열었다. 그녀는 목을 창밖으로 쭉빼고 명구가 가까이 오도록 기다렸다. 가슴속에서는 다듬이질 소리가 열겹 스무겹으로 나고있다.
그녀는 연신 마른침을 삼켰다. 어머님이 제발 진열실 쪽으로 나오지 말아야 할텐데 아휴 어머님 제발.
명구가 도시락을 겨드랑이에 낀채 출입문으로 들어서고 있다. 그는 오늘 매우 기분이 좋은가보다. 연신 싱글벙글 하며 요즘 한창 유행하는 가사를 흥얼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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