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귀중하게 여길것. 특히 연구를 위한 시간을 귀중하게 생각할것. 우선 1년의 계획과 강의의 계획을 세울 것. 점차로 다른것들에 대해서도』사제로서 성실히 살려고 생활의 지침으로 삼았던 요한 23세의 이 말씀은 많은 시간이 지난 오늘 시간이 귀중하기 보다 그가 차지했던 생애가 귀중했기에 그 시간이 귀중하게 여겨질 정도로 그는 한 생애를 꽉 채워가며 살았다.
1958년 10월 18일 열두번째의 투표끝에 고대하던 새 교황이 탄생하였다. 삐오 12세께서 서거하시고 17일째 되는날 연사흘째「바티깐」궁전의 도서관옆「시스띤」경당에 임시로 뽑아올린 연동을 바라보는 세계의 눈들은 초조와 긴장의 연속이었다. 당시 51명의 추기경들은 새 교황을 선출하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모여들었다. 다만 항가리의 민첸티 추기경과「아그람」의 스테피나크 추기경은 공산치하에서 출국을 못해 참석지 못하고 미국「디트로이트」의 무우니 추기경은「로마」에 와서 선거전에 갑자기 서거했다.
교황 선거법에 의해서 절대비밀이 보장되는 이 투표가 어떻게 진행되었는가는 참석한 추기경들만이 알 수 있는 일이라 항간에서 떠도는 풍문들과는 전혀 다른 양상이라 추측된다. 열두번째의 투표후 당선된 새 교황은 농부의 아들 안젤로 쥬셉뻬 롱깔리였다. 사도 베드로의 후계자로 262대째의「볼 수 있는」교회의 으뜸이다. 롱깔리 교황은 북이태리「벨라모」군의 작은마을「솟또일몬떼」에서 1881년 11월 25일 열세명의 형제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죠반니 밧띠스타는 소박하고 평범한 신앙심이 돈독한 농부였다. 대체로 북이태리 사람들이 그렇듯이 죠반니 밧띠스따 역시 인정이 많고 감정이 풍부한 사람이었다. 자기 아들들을 전부 농부로 만들려는 마음에서 공부는 별로 시키지 않았다. 그러나 어린 안젤로는 국민학교 3학년을 마치자 아버지의 명을 따라 낮에는 열심한 꼬마농부로 밭일을 도우고 밤이면 남몰래 공부를 하는 기특한 어린이였다. 집안식구가 전부 잠에 골아 떨어졌을때 홀로 헛간에 가서 희미한 촛불을 켜놓고 책을 읽었다. 그의 아버지의 말대로 농부의 아들이 공부를 계속한다는 것은 오리혀 사치에 속했다. 사람의 손이 있는데로 필요했던 농가에서는 어린손이라도 도움이 되었던것이다. 그의 동생 사베리오는 그때를 회상하면서 이렇게말한다. 『물론 일도 열심히 했지만 형은 일보다 공부에 더 많은 열성을 보였지요. 밤이면 밤마다 혼자 촛불을 들고 헛간에 가서 책읽는 것을 봤지요』『안젤로가 교황이 되다니 … 』산간동리인「솟또 일몬떼」에서 라디오로 소식을 전해듣고 집안식구는 어느누구 하나 입을 여는 사람이 없었다. 다만 동생 사베리오만이 조용히 눈물짓고 있었다. 1892년 11월「벨가모」교구 신학교에 입학한후 1901년「로마」대신학교로 옮겨가서 1904년 8월 10일 사제가 되었다. 그로부터 영원한「갈바리아」길은 시작되었고 죽는 그시간까지 기도와 봉사로 점철된 그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한점 부끄러움 없는 생활이었다.
필자는 다행히도 삐오 12세 요한 23세 현 바오로 6세 세 분의 교황을 알현해봤고 가장 오랜시간을 요한 23세와 이야기해봤다. 그의 인간미 흐르는 인상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이미 너무나 잘 알려져 있지만 그가 남긴 숨은 에피소드는 모르는 사람이 많다. 교황으로 등극하자 대관식 미사때 행한 설교는 그의 사람됨을 잘 나타내고 있다. 그 한 구절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교황은 동시에 정치가이며 외교관이며 과학의 권위이며 사회생활의 조직가이며 어떠한 인간관계에도 예외없이 편견을 갖지말고 대처해야 한다고들 말합니다.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은 정도를 벗어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모든 점에서 진리에 맞는다고 할 수 없는 교황의 이상적인 모습을 만들어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새 교황은 우선 몸소 좋은 목자의 참다운 모습을 구현하고자 생각합니다. … 나의 중심적 생각은 최대의 희생까지도 각오하고 있는 좋은 목자로서 가져야할 열의입니다. 좋은 목자는 그 양을 위해 자기목숨을 버린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 그대로 착한 목자가 되는 것입니다』그는 죽는 순간까지 교회 일치를 위해 기도하라고 권했다.
필자의 기억으로, 교황이 위독하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임종하시기까지 연 3일 밤낮「바티깐」광장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맨 땅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다.
『인자한 우리의 목자가 1년이라도 더 살아 주었으면』하는 것이 신자들의 기도의 목적이었다. 그러나 그는 끝내 가셨다. 교황으로서의 생애는 4년 수개월에 불과했지만 그는 너무나 많은 것을 남기고 가셨다. 알려지지 않은 그의 생애의 단편들을 소개하고자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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