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기사년 새 아침이 조용히 밝았읍니다. 온누리가 다소곳이 머리 숙여 창조주께 감사와 찬미를 읊조리는 새날 첫 아침입니다.
일찌기 시편작가가 노래했듯이 하늘도 땅도、 모든 날짐승과 땅에 발붙여 사는 온갖 생물들도 그리고 물과 땅 속에 사는 피조물들과 심지어 모든 무생물들까지도 창조주께 감사의 찬가를 올리는 그런 상서로운 새 아침입니다.
새해의 첫 새벽이 열리면 우리는 으례히 새 날을 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지난 날의 잘못을 용서 청하며 새로운 소망을 말씀드리게 됩니다. 본지는 이 지면을 빌어 애독자 제위와 함께 한국교회와 우리나라와 교회언론 발전을 위해 저희의 소망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한국교회를 위해 기도합니다. 하느님 아버지、 선교 3세기의 초창기를 살고있는 우리 한국교회는 1987년말 현재 2백30만 명의 교세를 확보했읍니다. 이 숫자는 전체국민의 5%가 조금 넘는 수치입니다. 당신이 보시기에 이 숫자는 많은 것인지、 적당한 것인지 아니면 너무 적다고 보시는지요?
어쨌든 이 가운데 당신 계명을 따라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숫자는 절반이 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그렇다면 성사생활을 하지 않고있는 백만이 넘는 신자는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읍니까? 저희가 들어 알기로는 그들이 냉담 중에 있거나 행방불명 됐거나 또는 다른 종교로 넘어갔다고 하는데…
지난해 노길명 교수의 신흥종교 연재와 강의를 들어보면 국내에는 4백여 개의 신흥종교가 전국에 산재해있고 그 교단의 고참들 중에는 천주교인 출신이 상당히 많다고 합니다. 다른 교단에 가서 출세한 셈이지요. 또 오랫동안 「여호와의 증인」에 몸담았다가 지난해 천주교로 돌아온 최백용 박사의 증언에 따르면 그쪽 신도 70~80%가 천주교 신자 출신이라고 합니다. 이 얼마나 놀랍고 충격적인 사실입니까?
더더욱 놀라운 일은 신흥종교들의 포교의 대상이 천주교 신자라는 겁니다. 천주교 신자들이 신흥종교인들 한테는 「고양이 앞의 쥐」 신세가 된 셈입니다.
하느님、 당신이 보시기에는 천주교인들이 아무한테나 잡혀먹혀도 상관이 없읍니까? 당신의 옛 이름을 빌려쓰거나 당신 아드님의 이름을 내건 간판을 보시고 묵인해주시는 겁니까?
만일 당신 뜻이 그렇지 않으시면、 더 이상 먹히지 않게 그 방법과 대책을 가르쳐 주셔야 하지 않겠읍니까?
그리고 수많은 냉담자와 행방불명자들이 아직도 교회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어떻게 타개해야 되겠는지요?
혹시 그 탓이 교회지도층의 구태의연한 사고방식이나 시대에 맞지않는 제도나 관습 등에 있다면 하루속히 시정해야 하겠지요? 물론 냉담ㆍ행불자들의 책임도 언젠가 문책하시겠지요?
그리고 하느님、 이 좁은 땅덩이에서 교구끼리、 본당끼리、 지역끼리 벽을 쌓거나 패를 가르는 일이 절대로 있어서는 안 되겠지요? 일치와 사랑의 모델인 당신을 섬기고 당신의 몸과 피를 쪼개어 나누어먹는 한 식구끼리 말입니다. 그리고 많이 가진 쪽이 적게 가졌거나 가진 것이 없는 쪽에 나누어주어야 함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겠지요?
그래서 새해에는 한국교회가 당신 모습따라 새롭게 태어나 10월 서울서 열리는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나눔과 사랑과 활력이 넘치는 교회되게 이끌어 주십시요.
다음에는 우리나라를 위해 기도합니다. 아버지 하느님、 88서울올림픽은 정말 성공적이었지요. 우리 국민의 저력과 단결된 힘을 세계만방에 유감없이 보여준 쾌거 중의 쾌거였다고 봅니다.
올림픽의 성공으로 우리나라는 몇 해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공산국가들과의 문호개방에 급진전을 보이고 있읍니다. 그중에서도 소련과 중국이 우리와 거래를 시작하면서부터 폐쇄일변도를 고집해온 북한이 서서히 열리고 있읍니다. 공산국가들과의 관계개선은 우리 교회에도 큰 희망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읍니다.
그런데 문제는、 5공 청산과 자유민주주의의 정착입니다. 세월이 참으로 달라지고 좋아지는 기분이듭니다. 유사이래 처음 청문회라는걸 가져본지라 인기 끈 사람들도 있지만 그 병폐와 부작용도 적지 않았읍니다.
청문회는 해를 넘기면서까지 아직도 끝나지 않았고 5공의 책임자였던 전두환씨와 그 핵심 및 주변인물들에 대한 처리문제도 그대로 남아 있읍니다.
하느님、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우리나라가 진정으로 자유와 정의와 인권이 존중되는 자유민주주의를 펼쳐 국민 모두가 평안히 잘 살고 국가가 발전하려면 5공 청산은 어떻게 해야 가장 잘하는 것이겠읍니까?
모두 예외없이 법대로 처리하는 것이 옳은 일이겠지요? 그중에서도 한 사람、 대통령을 지낸 전씨 처리문제가 제일 골치아픈 일입니다. 그 사람은 이미 패가망신 당했고 스스로 위리안치 됐으며、7년간 단임한 모범과 그외 몇몇 잘한 일들도 있으니 이제 그만 문제삼지 않는 것이 어떻겠느냐고요?
글쎄요.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들도 적지않은데 또 청문회에 불려와 죄상을 날날이 밝혀야 한다는 사람들도 없지 않으니 어떡합니까? 이럴때 우리국민과 정치하는 사람들에게 솔로몬의 지혜를 좀 빌려주시면 안 되겠읍니까?
어쨌든 하느님、 새해에는 5공 청산이 하루속히 매듭지어져 다시는 이 땅에서 군사독재가 발붙이지 못하게 해 주시고 화염병과 최루탄이 제발 이제는 그만 이 땅을 오염시키지 말게 해주십시요.
이제 끝으로 교회언론을 위해 기도드립니다.
하느님、 앞서 지적한대로 오늘날의 우리 교회가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면、 그 책임은 주교님들부터 신부님들 그리고 평신자 전원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것이겠지요? 물론 직책에 따라 책임의 경중은 차이가 있지 않겠읍니까?
그중에서도 교회를 수호하고 선도하며 때로는 사랑의 채찍을 아끼지 말았어야 할 교회언론들이 제 구실을 못다한 책임이 크다고 말씀하시겠지요?
특히나 금년 4월로 창간 62주년이 되는 본지가 나이값도 제대로 하지 못했다고 크게 야단치시겠지요? 당신의 꾸중은 달게 받겠읍니다만、 저희도 할 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닙니다.
세월이 좋아져 언론민주화니、 자유화니해서 우후죽순처럼 신문사들이 생겨나면서 우리 기자 여러 명이 타 신문사로 발탁돼 갔으니 저희들의 고충도 헤아려 주실만 하지 않습니까? 그렇다고 마냥 쭈그리고 앉아 신세타령만 하고 있지는 않겠읍니다. 다시 기운을 내고 마음을 가다듬어 어렵고 힘겨운 속에서도 분골쇄신 하겠읍니다. 제발 더 이상 저희들의 남은 힘과 용기만은 빼앗기지 않게 지켜주시고、 당신의 이름을 걸고、 당신의 사업을 하려는 저희들에게 축복을 보너스까지 합쳐 듬뿍 내려주십시요.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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